[소설] 가족관계서가 갱신되었습니다

06. 내가 살아있다는 것은, 비밀이야(1)

by 제인


엄마, 제가 살아있다는 것은 비밀이에요. 모두 죽은 세상에서 혼자만 살아있다는 것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 모르실 거예요. 저는 빛을 피해 다니고 있어요. 그림자라는 게, 살아 있을 땐 신경도 안 쓰였거든요. 그런데 이제 살아있다는 것을 들킬까 봐 어두운 곳으로만 다녀요. 아, 어두운 곳도 조심해야 해요. 어두운 곳엔 늘 가로등이 있더라고요. 짙은 어둠 속에서 ‘나는 죽은 자다, 나는 죽은 자’ 그렇게 곱씹고 있자면, 진짜 죽은 사람이 된 것 같기도 해요. 이건 정말 진지하게 말씀드리는 건데 저도 죽으면 이곳에서 인정받을 수 있을까요? 죽은 자의 얼굴은 투명하고 아름다워요. 투명한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심장에서 뿜어져 나오는 혈액의 흐름도 볼 수 있어요. 심장의 두꺼운 혈관에서 뻗어 나온 가지들이 발끝까지 하나가 된 듯 이어져 있어요. 경이롭지 않은가요. 생명이라는 건 어디에서 오는 걸까요.


나는 생명을 믿고 싶어요. 생명을 위해 기꺼이 죽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아, 일전에 말씀드렸던 셜리요. 셜리가 곧 이곳으로 오기로 했어요. 셜리는 죽은 자를 위해 일하는 사람이라고 했잖아요. 몇 년 전에 업무차 멀리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게 됐대요. 잘된 일이죠. 셜리가 저에게 같이 일을 해보지 않겠냐고 했는데 아직 망설이고 있어요. 제가 해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고, 셜리를 보고 있으면 저 같은 사람은 너무 하찮아 보이거든요.


아, 셜리를 어디에서 만났냐고 물었었죠? 우리는 페더의 집에서 처음 만났어요. 그날 페더와 거실에서 놀고 있는데 그 애가 뒷마당에 열려있던 펜스로 들어오는 걸 봤었죠. 우리 키만 한 개 한 마리를 데리고, 아 데리고 온 게 아니라 개를 따라 들어왔다고 하는 게 맞겠어요. 그 개는 몸이 날씬하고 다리가 긴, 그레이하운드 품종으로 보였는데 아무렇지 않게 거실로 들어오더니 벽난로 앞에 자리를 잡더라고요. 앞발에 턱을 대더니 코를 골면서 자기 시작했어요. 페더와 전 어이가 없어서 웃었어요. 페더는 숨을 헐떡거리고 있는 셜리에게 물을 주었고, 그 애가 숨을 돌리는 동안 우리는 텔레비전을 보며 어린이 체조를 마저 따라 했죠. 체조가 끝나고 나서 보니 셜리도 자고 있었어요. 엄마가 저를 데리러 왔다는 말에 인사도 못하고 헤어졌지만, 우리는 곧 만날 수 있었어요. 페더가 종종 그 애를 불렀고, 우린 같이 놀며 시간을 보냈죠. ……(중략)


김효수 교수는 편지의 시작부터 중간까지 읽다 자신의 앞에 둘러싸인 카메라를 향해 고개를 들었다. 그는 들고 있던 펜을 딸깍 누르다 소음을 발생시켰다는 사실에 놀라 조용히 탁자에 내려놓았다.


“교수님, 이 편지를 저도 일부 읽어보기는 했는데 점점 기분이 이상해지더라고요. 권우수는 나 빼고 모두 죽어있다. 또 죽어있지만, 살아있는 것처럼 묘사하고 있잖아요. 궁금한 건, 편지 내용에 생명을 믿고 싶다, 생명을 위해 기꺼이 죽을 수도 있다고도 썼는데 모두 죽었다고 인지하면서 죽은 상태의 사람들이 오히려 살아있는 것처럼, 여기 혈관이 있고 혈액이 뿜어져 나오고 있다는 부분이 의아하더라고요. 이러한 정신세계가 그녀가 저지른 범죄와 어떤 연관이 있는지, 우리가 권우수를 어떻게 이해하면 될지 설명 부탁드립니다.”

“정말 독특한 케이스이긴 하죠. 우리는 권우수가 태어나기 전으로 돌아가 볼 필요가 있는데요. 그녀의 부모님은 둘 다 보육원에서 자랐고, 성인이 되자마자 함께 미국으로 갔어요. 아버지는 청소, 설거지, 세탁 일을 시작했고, 어머니는 네일 숍에서 이런저런 허드렛일을 했었는데요. 이 두 사람이 미국으로 간 지 10년 만에 모텔을 인수했어요.”

“10년 만에요?”

“네. 그런데 이즈음 모친이 임신했어요, 의아한 것은 한국으로 와 출산했다는 거예요. 일반적이지 않은 경우죠. 권우수가 태어난 후 만 1년을 한국에서 지내다가, 둘은 미국으로 돌아가죠. 이때까지 부친은 혼자 모텔을 운영한 걸로 확인했어요. 부모는 모텔 1층에 바를 만들었는데 사실상 이들은 이 바에 오는 남성 손님이나 투숙객들에게 불법 성매매나 마사지를 제공해서 꽤 많은 수익을 올리고 있었어요.”

“따로 집이 없었나요? 그리고 왜 굳이 한국에서 출산한 거죠?”

“그건 아직도 알 수 없습니다. 이들이 한국으로 돌아올 생각이 있지 않았나, 아니면 부모와 같은 나라에서 출생했다는 증명 같은 것인가 추측이 분분했죠. 어쨌든, 어린 나이에 미국으로 가 그 모텔에서 생애를 보냈다고 할 수 있죠. 그녀는 학교가 끝나면 부모님 일을 도와야 했어요. 주말에는 교회 봉사활동을 핑계로 나올 수 있었다고 하네요. 일요일에는 페더라는 친구의 집에서 숙제도 하고 놀기도 하면서 일주일 중 딱 하루 자유를 누릴 수 있었다고 해요. 그런데 고등학생이 된 시점부터는 외출도 쉽지 않았다고 해요. 열여덟 살 때 첫 임신을 하게 되는데요. 출산 시점까지 아무도 몰랐다고 해요. 아이를 낳고 난 후부터는 모텔에서 아예 나오지 못했다고 합니다.”

“아이 아빠는요?”

“아이 아빠도 알 수 없는데, 본인 말로는 페더의 아버지 또는 삼촌일 거라고 해요.”

“……네?”

“그즈음부터 해리장애가 일어난 것으로 보여요. 기억이 왜곡되기도 하고, 지인들에 따르면 망상도 있었다고 하더군요.”

“친구의 아버지와 삼촌이라니. 부모님은 어떤 반응이었나요?”

“이 부분이 충격적인데, 아버지는 그녀에게 돈은 받았냐고 물어봤다고 해요.”

“아……. 정말 할 말이 없네요. 그럼, 아이는 그곳에서 같이 키운 건가요?”

“네. 첫 아이를 낳은 후 그 애가 세 살쯤 됐을 때 두 번째 임신을 합니다.”

“결혼을 한 건가요?”

“아니요. 둘째 아이도 아이 아빠에 대해 모른다고 했어요. 그렇게 스물 여섯살이 될 때까지 네 아이를 낳고…….”

“넷을 낳았다고요? 아이 아빠에 대한 정보는 없는 건가요?”

“부모가 성매매하도록 강요했기 때문에 사실상 모른다고 봐야겠죠. 아이들도 그녀와 마찬가지로 모텔의 작은 방에서 생활했다고 해요. 막내를 출산 후 건강이 좋지 않았고 이후 정신 상태가 좋지 않았다고 해요. 그 페더라는 친구가 소식을 듣고 그녀를 돕기로 합니다. 어쨌든 한국에서 태어났으니 그리로 돌아가는 게 어떠냐고 한 거죠. 그녀는 기회를 틈타 그곳에서 탈출했죠. 아이들을 두고 오려고 했는데 오고 막내가 떼어놓으면 자꾸 울어서 함께 나왔다고 합니다. 그 둘은 한국으로 돌아와 쉼터로 들어가게 되는데 아버지가 흥신소에 의뢰해서 이들을 찾게 하죠. 그때 그녀는 자신이 어디를 가도 부모에게서 벗어날 수 없을 거로는 생각합니다. 그때 가족관계에서 부모 정보를 삭제하고 자신의 정보를 잠그게 되죠.”


두 사람의 뒤에 커다란 스크린 위로 현장 사진이 한 장씩 떠올랐다. 크기가 다른 장독대들이 마당에 늘어서 있고, 관리되지 않아 보이는 마당과 집의 전경이 이어서 보였다.


“겉으로는 관리되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먼지 하나 없이 깨끗했어요. 마치 모텔 청소일을 했던 자신을 상기시키는 것처럼 침대 시트나 두루마리 휴지 끝 선도 각을 잰 것 같았고, 욕조는 얼굴이 비칠 정도로 반짝였어요.”




엄마 나를 셜리라고 불러줘요

왜?

나는 스컬리 같은 요원이 되고 싶었는데, 그렇게 되지 못할 것 같아서요. 대신 셜리가 될래요.

셜리가 누군데?

있어요. 내가 좋아하는 이름을 가진, 다른 요원.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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