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가족관계서가 갱신되었습니다

07. 내가 살아있다는 것은, 비밀이야(2)

by 제인


“셜리, 이 장독을 봐. 이렇게 커다란 장독 안에 간장, 된장, 고추장이 가득해야 마음이 놓여. 난 널 보듯 이것들을 지켜봤어.”

“아니. 널 지켜본 건 나야. 그리고 너의 아이들을 돌본 것도 나야.”

“아이들이라니? 누구의 아이들?”


셜리가 한숨을 쉬자 콘크리트 바닥 깊은 속에서 삐그덕거리는 소리가 났다. 우수는 등 뒤에 닿은 생소한 살갗의 느낌에 몸을 움츠렸다. 시선을 떨어뜨리자, 자신의 두 팔이 등 뒤로 둘려있고, 누군가를 업고 있는 자세를 취한 것이 보였다.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려 뒤를 돌아보자 잠든 아이의 쌕쌕거리는 숨소리가 들렸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 아이가 느껴졌다. 궁둥이가 닿은 팔등은 무겁게 내려앉고, 아이를 놓칠세라 꽉 쥔 두 손에 힘줄은 점점 울룩불룩하게 튀어나왔다.


“누구지?”


열린 문 앞에 줄무늬의 유니폼을 입은 간호사가 서 있었다. 우수는 그녀를 지나쳐 달리기 시작했다. 복도 끝방에서부터 사람들이 모여있는 중앙까지 숨도 쉬지 않고 달려가, 가장 나이가 많아 보이는 여자를 붙들고 얼굴을 들이밀었다.


“얘가 누구야?”


여자는 우수가 달려드는 바람에 물컵을 놓쳤고, 물은 여자의 바지와 슬리퍼를 적시고, 맞은편의 의자에까지 빠르게 흘러 들어갔다. 여자는 우수의 어깨를 밀어 넘어뜨렸다. 우수는 뒤로 잡은 손을 풀지 않으려 애썼지만, 바닥으로 쓰러지며 손이 풀렸고, 낭패라는 듯 입술을 깨물었다가 바로 몸을 뒤로 돌려 아이가 괜찮은지 확인했다.


“어딨지?”

“우수 씨, 괜찮아요?”


족히 2미터는 되어 보이는 보호사가 달려와 우수를 일으켜 세웠다. 스테이션에서 간호사들이 뛰어나와 그 둘을 분리했다.


“저년이 나한테 덤벼들었어! 에이, 오늘 새로 입은 거란 말이야!”

“진정하세요, 옷 새로 드릴게요.”


단발머리 간호사가 그녀를 데리고 리넨 실 쪽으로 사라지자, 우수의 병실에 왔었던 간호사가 다가와 그녀의 어깨를 감싸안았다.


“애가 없어졌어.”

“어떤 애요?”

“그 아이. 내가 업고 있던 애 말이야. 그 애가 누구지? 등 뒤에서 자고 있었어. 숨을 쉬고 있었단 말이야. 누구냐고! 그 애가 누구냐고! …… 그런데 어디 갔어? 어디로 숨겼어? 아까 그 늙은 여자가 데려갔나 봐!”


그녀는 우수의 눈을 바라보았다. 우수의 눈은 동양인의 눈이라고 하기에는 밝은 눈동자를 가지고 있었다. 서서히 빛이 빠져나가 바래진 색이랄까. 우수의 두 손이 천천히 몸을 타고 올라왔다. 덜덜 떨리는 손이 자신의 목을 감싸 쥐더니 곧 힘을 주어 조르기 시작했다. 실핏줄이 탁탁 소리를 내며 터질 것 같았다. 간호사는 손톱이 살을 파고드는 걸 막기 위해 우수의 팔을 붙잡았지만, 우수의 몸은 불꽃이 튀고 있다가 더 가열하게 타오르는 불기둥 같았다. 보호사 두 명이 우수를 붙들었다.


“죽게 둬! 다 죽이게 둬!”


우수는 장독대가 있던 마당을 기억해 냈다. 첫 번째 뚜껑을 열면 엄마의 머리가 보였다. 빙그르르 도는 머리와 이제는 감기지 못할 검은 눈을 바라본 후 뚜껑을 닫았다. 그 옆에 있는 장독 뚜껑을 열면 그의 머리가 보였다. 물 아래 잠겨있는 열 개의 손가락도 느껴졌다. 우수는 손을 뻗어 머리를 붙잡았다.


“네가 잘못한 걸 말해봐, 내가 잘못한 걸 말해봐. 죽어서 좋은지 말해봐. ……내가 잘했다고 말해!”


보호사는 우수의 팔을 떼어내고, 재빨리 억제대를 입혔다. 우수는 온몸으로 저항했지만, 곧 두 손에 장갑이 씌워졌다. 우수는 격리실로 끌려갔다. 침대에 누워 바라본 불규칙한 무늬가 있는 천장 텍스에 아이들의 얼굴이 떠 있었다. 아이들의 그림자, 모텔의 핏빛 커튼과 세월을 들이킨 카펫과 이름 모를 사람들의 체취와 그들이 내는 신음과 자꾸만 차오르는 배와 날카로운 통증. 우수는 눈앞을 지나가는 그것들을 똑바로 보았다.




“주무관님, 정보가 잠기면 이제 아무도 저를 못 찾는 거죠?”

“네. ‘긴급 상황에도 불허함’으로 체크해 뒀어요.”

“……제가 죽어도 모르는 거 맞죠?”

“맞아요.”

“저도 모르게 되는 거고요.”

“네. 부모님에 대한 정보도 알 수 없게 됩니다.”

“돌아오길 잘했어요.”


양쪽 무릎에 두껍게 앉은 딱지에 손가락을 대고 천천히 문질렀다. 손을 대자 가려워져 그 두꺼운 가짜 피부를 떼어내고 싶었다. 우수는 손톱 끝으로 살살 긁다가 딱지가 벌어지자 한 번에 떼어냈다. 얇은 피부는 처음엔 분홍색을 띠었다가 붉게 물들었다. 아직 채 아물지 못한 가운데 부분에서 피가 올라왔다. 우수는 치마 끝자락으로 피를 눌러 닦았다.


“우수 씨. 머물 곳은 정해졌어요?”

“목사님이 소개해 준 곳이 있는데, 여기서 꽤 멀대요. 입주 도우미를 구하는데 아이를 데려와도 된다고 했대요.”

“어딘데요?”

“인송 시에 있는 성안마을이라고 이장님댁 사모님의 아버님이 몸이 불편하셔서, 입주 도우미를 구한다고 했어요.”

“인송 시면 꽤 머네요. 그런데 우수 씨, 그곳에 너무 오래 머무르지 말아요.”

“무슨 말인지 알아요. 저는 여기 이 머리에 위험을 감지하는 센서가 있어요. 그런데 잘 피하진 못했어요. 그냥 알기만 해요. 아, 나 위험하구나. 저 치료도 잘 받고, 약도 잘 먹어서 이제 잘 피해 보려고요. 잘 될진 모르겠지만.”

“잘할 거예요. 우수 씨는 그 멀리에서 여기까지 왔잖아요. 그것만으로도 이미 대단한 선택을 한 거예요. 내가 서 있는 곳에서 몸을 돌리는 건 쉽지 않잖아요.”




우수는 장갑 속에서 손을 움직였다. 침대 난간을 두드렸다. 쉼 없이 두드렸다. 아무도 오지 않았다. 차라리 잠들고 싶었다. 고슴도치 게임에서처럼 망치로 머리를 두드려 사라지게 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순간, 어떤 얼굴이 문 앞에 서 있음을 깨달았다. 비를 맞았는지 앞머리가 젖어 있었다. 앞서 들어오는 의사를 뒤따라 들어오며 두 손으로 머리를 넘겼다.


“최재경 형사예요. 저 기억하죠?”


최재경은 볼펜 끝으로 이마를 긁는 버릇이 있었다. 들어오기 전에도 긁었는지 이마 한쪽이 붉어져 있었다. 그는 수첩을 펼친 후 가름끈 끝부분을 붙잡더니 특정 페이지로 가 몇 초간 시선을 그곳에 두었다.


“아이를 찾았어요.”


그는 손바닥보다 작은 사진 한 장을 꺼내 우수의 앞에 내밀었다. 자른 나무를 쌓아둔 집 뒤에는 그 댁 어른이 오랫동안 사용해 왔던 부뚜막이 있었다. 계절이 몇 번이나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로 썩었거나 마른 나뭇잎들이 엉켜 있었고 거미줄은 서까래 아래에 늘어져 있었다. 그의 손가락이 그 부뚜막을 가리켰다.


“여기에서요.”


닫혀있던 우수의 입이 벌어졌다. 그녀의 눈은 살이 터 아파 보이는 그의 손등에 오래 머물렀다. 그는 벌어진 우수의 입술 사이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에 소름이 돋아 사진을 움켜쥐고 말았다.


“어린 송아지가 부뚜막에 앉아 …… 울고 있어요. 엄마, 엄마…… 엉덩이가 뜨거워.”


To be continued……



밀리의 서재 밀리로드 동시연재

[가족관계서가 갱신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