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연연하는 그림일기 - 이야기가 있는 얼굴
요즘 내 눈앞에 있는 것들을 유심히 보는 습관이 생겼다. 저건 구도를 어떻게 잡아야겠다던지, 어떻게 그리면 좋을지 상상을 해보기도 한다. 내 손끝은 아직 머릿속의 상상을 구현할 수 없지만, 잘못 그은 선으로 다음을 기약하게 되고, 처음과 다르게 잡은 구도는 다른 풍경을 그려낼 수도 있으니 실수가 끝은 아닌 것이다.
창 밖에 멀리 산이 보이는데, 능선과 삐죽 솟은 나무들을 살피고, 건너편에 나란히 앉은 새들과 옥상정원의 화분, 건물들의 간판, 횡단보도, 해가 질 때 건물의 빛, 그림자를 구경하는 게 재밌다. 그리고 사람의 얼굴을 보는 것도 재밌어졌다.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모두 저마다의 특색이 있다.
아이의 얼굴을 그려 보았는데, 역시 눈, 코, 입의 배치가 가장 힘들고, 그중 눈을 표현하는 것이 쉽지가 않다. 색을 조금이라도 더 칠하면 느낌이 사라져 버린다.
욕심을 내서 더 짙게 만들면 그림의 이야기가 묻혀 버리거나, 더 칠해야 하는데 망설이면 전체가 옅어져서 그저 조심하기만 한 그림이 된다. 이 아이의 얼굴은 붙잡고 한 시간 반정도를 낑낑댔다. 영상을 계속 돌려보며 어떻게 표현하는지 살피기를 반복했다. 내가 왜 이 그림을 그리겠다고 작정한 거지?라고 생각했다가, 아이의 눈을 본 순간 왜인지 미안해져서(?) 부들부들 떨며 끝낼 수는 있었다.
이 그림은 옆얼굴의 모습이 너무 예뻐서, 따라 그려보자 생각해서 시도했고 왼쪽 여백에는 날리는 꽃잎을 추가해서 마무리했다.
세종문화회관에서 샌디에이고 미술관 소장품을 전시 중인데 전시 제목은 [르네상스에서 인상주의까지]이다. 그중 기억에 남은 작품은 윌리엄 아돌프 부그로의 '양치기 소녀'인데, 이 그림 옆에는 호아킨 소로야의 '라 그랑하의 마리아'가 전시되어 있었다. 두 그림은 인상주의와 신고전주의 그림이라 표현이 어떻게 다른지 한눈에 느껴지게 했다.
소로야의 작품은 그라운드 시소에서 미디어 아트로 전시중일 때 본 적이 있는데, 빛 표현이 정말 아름다워서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천천히 빛을 따라 시선을 머물게 하는 힘이 있었다.
양치기 소녀 앞에 한동안 머무르며 땅을 딛고 서 있는 소녀와 맨발, 옷의 주름, 눈을 보고 있자니 머리카락과 가지의 잎을 날리는 바람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고개를 돌리는 소녀의 모습이 사진에 찍힌 것처럼 선명하고, 배경은 아득히 멀지만 잡을 수 있을 것처럼 가깝게 느껴진다. 나중에 부그로의 작품들을 더 검색해 봤는데,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인물의 표정에 하염없이 넋을 놓고 빨려 들어가게 했다.
이번 전시에서 좋았던 작품들의 굿즈를 사고(그런데 세종문화회관, 전시 굿즈가 너무 약합니다. 더 다양한 아이템을 기획해주세요!) 뿌듯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얼굴에 자신의 삶이 비친다는 말, 맞는 것 같다. 항상 웃을 수도 없고, 항상 찡그리지도 않고, 항상 울지만도 않지만, 그런 순간들이 모여 생의 얼굴을 만드는 것 같다.
거울 속의 나를 보며, 입꼬리를 한껏 올리며 웃어본다.
오늘의 그림일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