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가늘고 긴 꿈이 있어 -32

나만 연연하는 그림일기 - 대문 앞에서 기다릴게

by 제인

어릴 때 친구들과 놀던 골목길이 생각날 때가 있다. 학교가 끝나면 할 일없이 걸었던 길 위에는 엄마 심부름으로 가끔 들렀던 세탁소, 친구들의 집, 만화방, 과일 가게, 오락실 등이 있었다.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았던 나는 가끔 집으로 친구를 데려 올 때도 있었고, 내가 놀러 가기도 했다.


친구와 다락방에 올라가 낄낄 웃고, 칠 줄도 모르면서 기타를 퉁기고, 그러다 혼이 나면 배를 깔고 엎드려 오래된 잡지를 뒤적거렸다. 누렇게 변색된 종이 위에서도 검은색 활자는 선명했다. 따뜻할 수가 없었던 다락방이었는데 추웠던 기억은 없다. 정신없이 웃느라 몸이 휘어지고, 손 부채질을 하며 달아오른 얼굴을 식혔다.


우리는 서로를 편견 없이 바라보았지만 어른들은 '쟤랑 놀지 마'라고 직접 선을 그었다. '우리 같이 놀자'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 애를 밀어내는 게 무서워 나를 숨기는 비겁한 선택을 했던 내가 싫었다. 나는 빈 골목에 서서 내 이름을 부르던 친구의 목소리가 지저귀는 새소리의 끝에 묻혀 사라질 때, 돌아서서 들어가는 발소리와 검은색도 짙은 녹색도 아닌 묘하게 어두운 철제 대문이 닫히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그 골목을 떠나던 날, 친구는 내게 인사했다. 나는 미안하다고 말했다.

이해한다는 말을 하는 친구가 여전해서 나는 웃고 말았다.


IMG_4673.jpeg 골목 풍경(참고 영상 @PAINTLANE)

골목 풍경이 담겨있는 그림을 보자마자 나도 그리고 싶어졌다.

우리는 시끌시끌, 정신 사나운 아이들이었다. 그 골목을 그렇게 채우고, 조용히 숨어들었다.


오늘의 그림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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