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가늘고 긴 꿈이 있어 -30

나만 연연하는 그림일기 - 커피 좋아하세요?

by 제인

나의 첫 커피는 언제였을까, 고등학생 때였던 것 같은데 언제, 어디서 처음 마시게 된 건지 기억나지 않는다. '첫 음주'는 너무 선명한데 말이다(하하). 나는 커피 맛을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았다. 자주 마셨던 건 믹스 커피인데, 그건 커피라기보다 달짝지근하고 양이 너무 적은 에너지드링크 같은 느낌이다.

캐나다에서 첫 급여를 타고 제일 먼저 달려간 곳이 한인마트였다. 그곳에서 30개 들이 맥심커피를 안고 좋아했더랬다. 다른 어떤 것보다도 한국에서 마시던 믹스 커피가 너무 그리웠다.

홈스테이 하던 집 근처에 내가 좋아하던 커피숍이 있었는데 쉬는 날이면 그곳에 가서 휘핑크림을 올린 모카커피를 마시며 사람 구경을 했던 기억이 난다. 커피 앞엔 항상 사람이 있거나, 풍경이 있거나, 일거리가 있거나 했다. 그래서 애착인형처럼 내 마음을 편하게 해주기도 하고, 원동력이 되어 달릴 수 있게 해주기도 했고, 불안한 마음을 진정시켜주기도 했다.


A는 바리스타였는데, 꽤 오랫동안 업계에 있었다. 드립커피를 내려주며 내게 평가를 해달라고 하면 커피에 대한 지식은 없었지만 최선을 다해 음미 후 나의 감상을 얘기해주곤 했다.

그러다 보니 나의 취향도 찾게 되었다.

커피숍에 가서 주문한 커피를 마실 때마다 '이건 견과류 맛이 난다. 라즈베리다, 꿀향이다. 아니다, 이건 정말 WT... 똥맛(!)이다. 너무 태웠다. 이 집은 원두가 오래된 것 같다' 등의 평가를 하기 시작했다.


작년부터 커피를 줄이기 시작해서, 하루에 한 잔만 마시고 있다. 커피를 달고 살 때도 있었는데 가슴이 두근거리거나, 수면에도 방해가 되는 것 같아 조금씩 줄이기 시작했다. 커피 없이 일할 수 있을까 싶었지만, 습관을 들이니 오히려 상쾌해졌다. 밤에도 더 잘 자게 되고 말이다.

작년에 카페쇼에 가서 여러 업체에서 선별해 온 커피를 신나게 시식했는데, 처음 맛보는 커피에 놀라기도 했고, 익숙하지 않지만 좀 더 마셔보고 싶은 커피를 만나기도 했다.


사고 싶었던 곳의 커피만 사기로 했잖아! 라며 이성의 끈을 붙들었던 기억이 난다.

영화 '아가씨'에서 '가격표를 보지 않고 포도주를 주문할 수 있는.....' 이라는 대사가 떠오르는데, 가끔 커피는 괜찮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값어치만큼이나 풍미가 있는 내 스타일의 커피를 만나는 순간도 아주 드문 일이니까 말이다.


커피가 담긴 컵을 그려보았다. 그림 속의 커피는 뜨거운 커피이고 내 앞에는 식은 커피가 놓여 있다. 식어도 맛있는 커피를 좋아한다. 식은 커피에 얼음 몇 개를 넣고 한 입에 털어 넣는 순간도 좋아한다.

오늘의 커피를 위해 좀 더 열심히, 더 진하게 색을 덧입혔다.

IMG_4526.jpeg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 잔

원두 구독을 하고 있는데 이번 주는 에티오피아 원두가 왔다. 가공방식은 내추럴. 블루베리, 복숭아, 살구, 밀크 초콜릿 맛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가끔 느껴지는 맛을 맞추는 걸 좋아하는데, 이미 봤으니 정말 그 맛이 나는지, 잘 내려서 마셔보고 싶다.


오늘의 그림일기 끝.

매거진의 이전글나에게는 가늘고 긴 꿈이 있어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