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여전한 이야기

04. 사영 - 너는 나의 숨을 먹고(4)

by 제인

호는 아이에게 ‘사윤’이라는 이름을 주었다. 나의 이름 한 자와 그의 이름 한 자를 땄다고 했다. 그는 출생 신고를 하고 돌아와 아이의 이름을 부르며 품에 안았다. 그를 보며 한껏 웃는 아이가 끔찍했다. 아이를 볼 때마다, 허공에서 흔들리던 두 다리가 생각나서 자꾸만 움찔거렸다. 다리가 머리 위로 떨어질 것 같은 두려움에도, 나는 아이를 떨어뜨릴 수는 없어 아이가 기둥이라도 되는 양 끌어안고 견뎠다. ‘진짜 엄마들은 이렇게 한다지’ 나는 중얼거리며 아이의 눈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호는 모든 게 잘 된 거라고 말했다.

항상 그게 문제였다.


나는 이번 생이 꿈이라고 생각했다.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어쩌면 순간의 꿈이 기이하게 길어졌을 뿐이라고. 어디서부터 오류가 생겼을까. 모순점은 어딜까. 나는 울음을 그치지 않는 아이를, 연신 달래며 그 생각을 계속했다. 창밖에 동이 터올 때 마법처럼 아이는 잠들어있었고, 그럴 때면 나도 마법처럼 꿈에서 깨어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깨지지 않는 삶에 갇혀 끝없는 꿈속을 걷는 것 같았다


나는 아이의 키를 잴 때마다 숨을 헉헉거렸다.

그리고 홈이 파진 흔적을 손가락으로 더듬거리며 중얼거렸다.


너는 나의 숨을 먹고, 나의 삶을 먹고, 나의 안도를 먹고, 나의 체념을 먹고…… 나를 먹고 자라는구나.


사윤은 남편의 키를 열심히 쫓았다. 아이는 남편을 꽤 닮아 있었다. 그림자마저 닮을 기세로 커갔다. 아이가 내게 달라붙을 때마다 나는 몸서리를 치며 떼어냈다. 온몸에 벌레가 기어다니는 것 같았다. 그 애가 닿으면 그것들이 더 날뛰는 것 같았다.




사윤이 다섯 살 되던 해, 텔레비전 가까이 가는 것을 보더니 호는 안과에 데려가 보라고 했다.


버스를 타 신이 난 사윤이 이 자리 저 자리 옮겨 앉는 것을 제지하지 않고 보고만 있었다. 아이가 다치면 어쩌려고 그러냐는 아저씨의 말에 신경 쓰고 싶지 않아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사윤은 주변 어른들에게 위험하니 가만히 앉으라는 말을 들은 후에야 우물쭈물하며 내 옆에 앉았다. 내 손을 잡는 아이의 손을 뿌리치고 나는 앞 좌석에 팔을 대고 이마를 가져다 댔다. 창밖의 풍경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바뀐 게 없다고 생각했다. 사윤은 화가 났다고 표시라도 하듯 내 허벅지를 꼬집었다. 나는 아이의 손을 세게 움켜쥐었다.


“지겨워.“


내 말을 사윤이 따라 했다.


“지겨워.”


안과 의사는 사윤에게 몇 가지 검사를 하더니 시력이 떨어져서 안경을 착용해야 한다고 말을 했다. 그는 사윤이 또래보다 크고, 손가락이 기니 큰 병원에 가서 추가 검사를 더 해보는 게 좋겠다고 했다.


의사의 말을 호에게 전하자, 애가 잘 크는 것도 검사받을 일이냐며 화부터 냈다. 옆에 있던 아이는 안경이 싫다며 방구석에 집어 던졌다. 호는 아이의 뒤통수를 때리더니 그게 얼마짜린 줄 아냐고 소리쳤다. 아이는 잠자코 갈색 안경을 주워다 쓰더니, 텔레비전을 켜 만화를 보기 시작했다. 호는 병원에 갈 필요 없다고 했고, 나는 대꾸하지 않았다.


유치원에서 사윤이 그린 그림 때문에 전화가 왔다. 정서적으로 불안해 보이니, 상담을 받아보는 것은 어떠냐는 말에 나는 그러겠다고 답했다.


아이가 가져온 그림에 가족은 없었다. 빈 어항을 보는 사윤, 자신만 있을 뿐이었다. 사윤은 늘 나를 보았다. 빈 어항 같은 나를 보며, 물을 마셔도 목이 마른 사람처럼 끊임없이 나를 갈구했다. 호는 내게 집착하는 아이를 내다 버리고 싶다고 했다.


호는 아버지가 되어도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종종 자신의 아버지를 찾아가 돈을 얻어냈고, 그 돈을 어디에 쓰는지 우리는 몰랐다.


사윤이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 노는 것도 지루하다며 밖으로 돌기 시작했다. 그가 집에 들어오지 않아도, 나는 일과를 보고해야 했지만, 그가 없는 편이 좋았다.




사윤이 열 살 때. 호와 오일장 구경을 갔던 아이가 ‘아빠가 없어졌어’라고 말하는데, 나는 드디어 그 아이가 해냈다는 생각부터 했다. 사람들은 내가 그를 없애고 어디다 묻어버렸을 거라고 수군거렸지만, 상관없었다. 몇 개의 산을 뒤져서라도 그의 시체를 찾아내고 싶은 건, 다름 아닌 나였다.


그의 시신은, 다음 삶을 시작할 수 있는 확인 도장 같은 거였다.


To be continued…


다음 화


엄마는 너무 잘 보였다.

내가 발을 세우고 엄마를 부르면 엄마는 어깨를 몇 번 움찔거리다 마지못해 뒤돌았다.

걸어도 걸어도 그 자리에 있는 것, 엄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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