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사윤 - 너는 나의 체념을 먹고(2)
엄마가 늦을 때마다, 나는 고집스럽게 선생님 옆을 떠나지 않으려 했다. 아저씨가 원장님을 보러, 아저씨를 닮은 크기만 한 차를 유치원 안으로 밀고 들어오는 소리가 들리면, 여지없이 책상 밑으로 기어들어 갔다.
어느 날 무릎을 움켜잡고 웅크리고 있는 내 앞에 아이스크림이 튀어나왔다. 오른손에 억지로 들린 아이스크림이 녹아 뚝뚝 떨어지다가 곧 옷 위를 타고 흘렀고, 선생님은 새 옷을 꺼내러 교실로 급히 달려갔다. 끈적끈적한 아이스크림이 옷 속으로 자꾸만 파고들었다. 아저씨는 바닥에서 떨어지지 않으려 버티는 나를 너무 쉽게 일으켜 세우더니 화장실로 데려갔다.
“사윤아. 너는 보물이야. 보물 알아? 보물은, 아주 귀한 거야. 그래서 사람들이 가지려고 탐을 내. 그냥 가만히 두고 보면 되는데, 그저 그거 한번 만져보겠다고 난리란 말이야. 아저씨는 우리 사윤이를 다른 사람들한테서 지켜주고 싶어.”
“…… 왜요?”
“그건…… 아저씨가 아빠랑 약속했거든. 사윤이를 지켜주기로.”
“우리 아빠랑요?”
“응. 사윤아, 아저씨 말 잘 들어. 누가 사윤이 몸에 손대거나, 좀 보자 그러면 그건 잘못된 거야.”
아저씨는 내 티셔츠 끝을 붙잡아 위로 올렸다. 머리를 빼내려고 했지만, 가로막혔다. 앞이 보이지 않아 놀란 나는, 팔을 빼내려고 버둥거렸다. 순간 따뜻한 것이 닿았다가 떨어지고, 닿았다가 떨어졌다. 울음이 터지려는데 티셔츠가 내려가고, 앞이 보였다. 아저씨가 미소 짓고 있었다.
“…… 어때?”
“…….”
“싫다고 해야지. 하지 말라고 해야지. 아저씨가 좀 전에 가르쳐줬잖아. 사윤이가 이렇게 못 알아들으면 아저씨가 사윤이를 지켜줄 수 없는데? 아빠랑 한 약속도 못 지키고? 싫어요!라고, 해야 하는 거야, 알겠어? 따라 해 봐. …… 싫어요.”
“…… 싫어요.”
“그렇지. 그렇게 하는 거야. 그리고 이건 남자들만 하는 공부니까, 엄마한테 말하면 안 돼.”
아저씨는 뒷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냈다. 오천 원을 내 손에 들려주더니, 아이스크림이 묻은 팔을 물로 씻어 주었다. 선생님이 찾는 소리에 내가 나가려고 하자 아저씨는 자신의 귓불을 잡았다. 이건 우리만의 약속이야. 침묵의 약속. 너도 해 봐. 아저씨는 내 오른손을 붙잡아 오른쪽 귀에 가져다 댔다.
귓불을 잡는 것. 그것이 약속이었다.
그날 밤, 나는 엄마의 품을 파고들며 엄마의 귓불을 만졌다. 엄마가 나를 밀어내는데도, 나는 절대 떨어지지 않을 것처럼, 바닥에 붙은 밥풀처럼 엉겨 붙었다.
엄마, 나를 밀어내지 마세요. 밀어내지 않겠다고 약속해 주세요. 그리고, 엄마의 귓불을 만져주세요.
나는 ‘약속’한 날을 달력에 표시했고, 곧 여러 날 위에 스티커가 붙었다. 달력을 본 누구도 그 스티커에 대해 궁금해하지 않았다.
9살 생일 전날, 나는 대야에 물을 가득 받아 몸을 담그고 있었는데, 허리에 선명하게 남은 이빨 자국과 쇄골 아래에 있는 멍 때문에 티셔츠는 입은 채였다. 갑자기 문을 열고 들어온 아버지가 똑바로 안 하냐고 셔츠를 위로 잡아당겼고, 당황한 나는 일어서려다 미끄러져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었다. 아프다는 생각도 들지 않을 만큼 창피했다. 아버지가 볼 새라 손바닥으로 멍든 곳을 가리자, 아버지는 혀를 차며 나를 내려다보았다.
“더러운 새끼.”
아버지의 말은, 나를 너무 부끄럽게 해 물이 가득 찬 대야에 가라앉고 싶게 만들었다.
할아버지를 찾으러 비닐하우스에 갔는데 동네 어르신들이 새참을 먹는 시간인지 평상에 둘러앉아 있었다. 막걸리 한 병이 바닥에 뒹굴고 있었고, 먹다 만 파전과 국수가 상 위에 있었다.
“그날 내가 사영이 병원 갔다 오는 거 봤다니까? 그러니까 썩어빠질 종자들이야, 자기 딸을 그렇게 만든 놈한테 시집보낸다는 게 정신이 똑바로 박힌 인간이냐고. 이장이나, 사영 아빠나 미친 인간들이야. 호 눈 좀 봐. 그 눈깔이 정상이냐고, 나는 걔 눈만 보면 아주 오금이 저려. 그 병원 소개 해 준 정무 그놈도 한통속이지, 이 동네에 미친 것들은 떼거리로 몰려다니면서 저들끼리 사고 치고 수습한다니까?”
나는 내 존재를 들킬세라 조심히 몸을 돌려 비닐하우스 한편에 쭈그리고 앉았다.
“형님, 입조심해요. 그렇게 떠들어 재끼다가 눈 밖에 나면 뭔 꼴을 보려고.”
“나는 다 살았다. …… 그러니 사영이가 애한테 뭔 정이 들겠어. 사윤이 보면 짠, 안 하냐? 그래도 애가 무슨 죄야. 자기가 그렇게 나고 싶어 났어?”
“아이고, 그만하라니까요? 아, 지금에 와서 어쩌겠어요. 누구 말마따나 욕하면서 지켜보는 우리는! 남들이 보면 얼척없기는 매한가지네.”
이제 일하자고, 소피 좀 보고 오겠다고 일어선 아주머니와 눈을 마주쳤다. 그 동그랗고 검은 눈동자는 언젠가 아버지가 목덜미를 잡고 들어 올린 강아지의 눈처럼 떨리고 있었다.
어른이 되고 싶었다. 어른들은 내가 어려서, 모든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어른들은 나중에 다 크면 하겠다던 이야기들을 모두 기억하고 있을까.
어른이 되면, 우리는 그 의미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까. 듣지 못해 알 수 없는 마음을, 그들은 헤아리지 못한다. 정작 그들도 아는 것이 없으면서, 다음에 라는 말속에 무관심을 접어 내민다. 거짓으로 고개를 끄덕이면, 시간이 좋게 좋게 그것들을 넘겨준다.
그 빈 페이지는 누가 채울 수 있을까.
아버지의 말이 맞다. 나는 더러운 아버지의 더러운 새끼였다. 아버지가 그 약속을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 엄마가 나를 미워한다는 사실이 나를 매일매일 바닥으로 밀어 넣었다. 자려고 누우면, 거대한 아저씨의 등이 가슴을 짓누르는 것 같았다. 그러다 정말, 어떤 날에 방바닥 아래로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 같았다.
방학 숙제 중 첫 번째 항목에 있던 ‘미술 작품 만들기’를 방학식 다음 날에 끝냈다. 선생님은 만들기나 그리기 무엇이든 상관없이 직접 만든 작품을 가지고 오라고 하셨다. 학급 투표를 통해 선정된 세 개의 작품은 교실 뒤에 전시할 거라고 하셨다. 나는 안내장 옆에 작품 이름인 ‘수컷 코끼리’를 쓰고 작품을 만든 이유에 ‘다큐멘터리에서 본 코끼리가 인상 깊었기 때문’이라고 써넣었다. 점토를 말리기 위해 마루 위 나무판자 위에 올려두었던 코끼리를 방으로 가져왔다. 귀가 작게 만들어졌고, 코도 이상하게 길어서 다시 만들까 하다가 귀찮아져서 내버려 두었다. 짙은 회색을 만들기 위해, 검은색을 좀 더 섞었다. 발정기의 수컷 코끼리들에 대해 다큐멘터리로 본 적이 있는데 그 결투는 며칠 동안 이어지기도 한다고 했다. 팽팽한 싸움 끝에 결국 이긴 코끼리의 거대한 몸과 싸움에서 패한 코끼리가 줄행랑치는 모습이 꿈에도 나왔다. 끝이 갈라진 붓으로 진짜 코끼리의 몸처럼 거칠게 표현하고, 길게 뻗은, 거칠어진 상아는 흰색에 검은색을 조금 섞어 색을 냈다. 해가 져도 그늘지지 않는 곳에 다시 세워놓고 멀리 산등성이를 바라보았다.
구불구불한 낙타의 등 같은 산은 존재 자체가 무서웠다. 산에서 들리는 온갖 종류의 소리도, 그곳에 사는 동물과 곤충과 새도 두려워 절대 그곳에 가지 않았다. 절대 마주치지 말아야 하는 코끼리의 눈처럼, 내가 산의 화를 돋워 언젠가, 결국엔, 그곳에서 길을 잃을 것만 같았다.
그럼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겠지. 아무도 나를 찾지 않을 테니까.
나는 스스로 생각이 많다고 생각했다. 그 생각들을 일기장에도 쓸 수 없었다.
나는 끔찍한 아이니까, 오물을 덮어쓴 몸으로 남긴 흔적 따위 쓰레기에 불과했다.
생각을 잠시 접고 남아있는 점토를 꺼냈다. 동전 크기만큼 덜어내 손바닥에서 둥글게 굴린 다음 자로 눌렀다. 펑퍼짐하게 눌린 점토를 얼굴 모양으로 다듬고 눈썹과 눈을 만들어 붙였다. 물감을 꺼내 조금 탄 듯한 느낌의 피부색을 만들고, 둥근 붓으로 천천히 발랐다. 가장 작은 호수의 붓으로 검은색을 찍어 눈을 칠했다. 나는 손끝으로 조심히 들어 올렸다. 점토가 굳기 전, 핀대를 점토에 붙였다. 완성된 배지를 책꽂이의 빈칸에 놓고 창문을 열어 두었다.
점토에 붙인 눈이 아버지를 닮았다. 그 얼굴이 말이라도 걸 것 같아 시선을 피하고 말았다.
To be continued…
다음 화
그가 죽기를 바랐다. 그래서 언젠가 그가 발견되면 나는 그의 몸을 붙들고 내 한스러운 마음을 풀어낸 뒤, 멈춘 심장에 대고 용서한다고 말하고 싶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