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 사영 - 마주한 얼굴(2)
누가 알아볼까, 나는 지소에서 반대 방향으로 한참을 걸어 나와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향했다.
사윤은 원무과 앞에 앉아 있었고, 핸드폰 게임에 빠져 있었다. 나는 그곳을 빠르게 지나쳐 비상구 문을 열었다. 지하 1층에 있는 탈의실로 가 한숨을 내쉬며 소파에 몸을 기댔다. 교대 후 옷을 갈아입고 나가면 딱 맞는 시간이었다. 나는 사윤에게 곧 올라간다고 메시지를 보냈다.
사윤은 한쪽 어깨에 가방을 메고 벽에 기대서 있었다. 지난 체육대회 내내 그늘에 앉아 있었던 아이는, 한 것 아무것도 없이 타버린 얼굴과 팔을 이리저리 돌려보면서 친구들 눈에 자신이 꼴사나울 거라고 했다. 내가 다가가자,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저 얼굴로 제 아버지를 보았을까. 호가 눈을 뜨고 사윤을 보았다면, 둘은 서로를 마주하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나는 병원 옆에 있는 칼국숫집으로 아이를 데려갔다. 병원에서 뭐라고 했냐고 묻자, 다 괜찮다고 했다는 답이 돌아왔다. 무슨 검사를 했냐고 묻자, 지난 번과 똑같은 검사를 했다고 다음에는 정형외과에도 들러야 하니 엄마도 같이 가야 한다고 했다. 나는 잠자코 고개를 끄덕였다.
갑자기 시커메진 하늘에, 사람들의 걸음이 빨라졌다. 가방 속에서 우산을 꺼내자마자, 세차게 쏟아지는 비에 여자는 소리를 지르며 우산을 펼쳤다. 저녁에나 내리기로 한 비가 갑자기 오기 시작하자, 식당 안 손님들은 서둘러 식사를 끝내려 젓가락질을 빨리했다. 사장님은 텔레비전을 켜더니 뉴스가 나오는 채널의 번호를 눌렀다.
[내륙 곳곳에 시간당 150mm가 넘는 많은 비와 초속 30m 안팎의 태풍급 돌풍이 몰아치며 호우주의보는 물론, 강풍과 산사태 특보도 내려졌습니다. 산간 지역과 계곡 주변에서는 갑작스러운 흙과 바위, 나무가 뒤섞여 흘러내리는 토석류 피해가 우려됩니다. …… 시민들께서는 산비탈과 하천 주변 접근을 삼가시고, 안전에 특히 유의하시기를 바랍니다. …… 적어도 이번 주말까지는……]
사윤은 가방에서 우산을 꺼내 의자에 올렸다. 칼국수가 나오자마자 면을 빨아들이듯 먹기 시작하더니 금세 반이나 비우고 다시 뉴스에 시선을 두었다. 빗줄기가 굵어지는 것 같아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다. 우산을 쓰는 것이 소용없을 만큼 바람이 불어댔다. 사윤은 집에 도착하자마자 바지를 벗더니 화장실로 향했다. 나는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대충 닦고 방으로 들어가 갈아입을 옷을 챙겼다. 사윤의 청바지를 세탁 바구니에 넣고 커피포트에 물을 올렸다. 물을 붓고, 4분이 지나 티백을 건져 내는데 아이가 밖으로 나왔다.
“뭐 하실 거예요?”
“반찬 좀 만들어야 해.”
사윤과 눈이 마주치자, 속에 있던 말을 꺼내고 싶었다. 언제부터 그곳에 갔고, 그는 왜 그렇게 되었냐고. 하지만 나는 입도 떼지 못했다.
숨만 붙어 있는 호의 앞에서, 나는 그가 숨을 터트리고 일어나 나를 쓰러뜨릴까 무서웠다. 호가 나를 느꼈다면 그는 아마 ‘피하지도, 공격하지도 않는 신사영. 내가 사람 보는 눈은 있다니까’라고 말했을 게 분명했다. 나는 호의 말대로, 예측할 수 있는 여자였다.
호는 내게 다 보이는 여자라고 했다. 속이 다 들여다보여서 쉽고, 때로는 지루하고, 그래서 더 못되게 굴고 싶다고 했다. 나는 그의 손에 쥐어진 마른 가지였다. 나로 누군가를 찌르고, 나는 툭툭 털리고, 그러다 잔가지들이 하나씩 떨어지고, 결국 ‘가지’ 일 뿐인.
사윤은 냉장고에 붙은 근무표를 보더니 ‘내일 쉬네요’라고 말했다. 사윤이 방으로 들어가자 나는 뜨거운 컵을 두 손으로 쥐었다가 급히 손을 뗐다. 정신을 차려야 한다. 나는 냉장고를 열어 반찬 재료들을 꺼냈다.
싱크대에 서자, 등 뒤에서 호가 느껴졌다. 말린 손가락을 하나씩 천천히 펴더니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는 거친 숨을 내쉬며 내 옆에 바짝 붙었다. 소리를 지를 것 같아 필러를 내려놓고 방으로 들어왔다. 두 손으로 온몸을 털기 시작했다.
저리 가. 저리 가.
두 팔로 몸을 껴안아도 진정되지 않자, 장롱문을 열어 이불을 모두 끄집어냈다. 그리고 안으로 들어가 몸을 웅크렸다. 문을 닫고, 눈을 감자 호가 사라졌다.
아침에 부엌으로 가니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싱크대는 정리되어 있었다. 껍질을 벗기다 만 감자는 사윤이 마무리 한 건지 여기 저기 많이 패인 채 빈 반찬통에 들어가 있었다. 아침이라고 하기엔 늦은 시간이라, 토스터에 식빵을 넣고 눌렀다. 사윤의 방문을 두드리자, 의자가 밀리는 소리가 들렸다.
“언제 깼어?”
“1시간 전에요.”
“조금만 기다려.”
사윤은 자기 방에서 나와 끝 방으로 들어갔다. 곧 텔레비전 소리가 들렸고, 나는 튀어나오는 빵 소리에 부엌으로 향했다. 접시를 꺼내고 있는데, 갑작스러운 비명에 놀라 접시를 떨어뜨렸다. 발등에 떨어진 그것은 곧 벽을 만나 쓰러지기 전까지 데굴데굴 굴러갔다. 통증을 느낄 새도 없이, 다시 들린 비명에 마루를 뛰어가 문을 열어젖히자, 사윤이 벽에 붙어 머리를 감싸 쥔 채 찡그린 눈으로 텔레비전을 노려 보고 있었다. ‘[속보] 강소산에서 신원 미상 시신 발견’이라는 머리기사와 함께 야산을 수색하는 장면이 이어졌다.
[지난밤 폭우로 산비탈 흙이 무너져 내렸는데요. 오늘 오전 주변을 둘러보던 주민이 사람 뼈로 추정되는 뼈를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습니다. 현재 머리뼈, 갈비뼈, 팔뼈가 발견된 것으로 보이며, 나머지 신체 일부는 발견 장소 주변을 확대해 수색하고 있습니다. 함께 발견된 상의 의복으로 보아 2년 전 실종 되었던 김예준 군일 가능성이 높아 타살 가능성까지 열어두고 수사를 이어간다는…….]
“진짜 예준이면 어떡하죠?”
“실종 전단이랑 발견된 옷이 같아 보이긴 해.”
“진짜 예준이면 어떡하냐고요!!”
겁에 질린 채 나를 보는 사윤과 속보가 뜬 화면을 번갈아 보았다.
예준과 사윤은 마르판 증후군 환아 모임에서 처음 만났는데, 예준의 통화 기록에 사윤의 번호가 있어, 그 때문에 형사가 찾아와 그에 관해 물은 적이 있었다. 예준은 사윤보다 한 살 많았다. 그가 실종되었을 때, 사윤은 제 아버지의 실종 때와는 다른 눈을 하고 뉴스를 보곤 했다. 실종 당시 핸드폰이 발견된 위치가 예준이 살던 곳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이었고 이후 생활반응이 없는 상태로 사람들의 관심도 점차 줄어들고 있었다.
[찬 공기를 동반한 저기압에 많은 수증기가 공급되면서 정체전선을 더 강화했습니다]
뉴스에 귀 기울이는 사윤의 얼굴을 보았다. 비가 내리면 흔적은 씻기고, 아무리 찾아 헤매도 이유를 찾을 수 없게 된다. 세찬 비는 어디에서 날아오는지 모르게 화살처럼 땅에 꽂혔다. 수색이 중단됐다는 소식에 아이는 비구름이 어디로 가는지 수시로 날씨를 확인했다.
주말이 지나서야, 호우 특보가 해제되었고, 나는 오후 출근 시간보다 30분 일찍 도착해 병원 안에 있는 편의점에서 캔 커피를 샀다. 물기로 겉면이 축축한 캔을 손에 쥔 채 장례식장에 들어가고 나가는 차를 물끄러미 보았다. 갑작스러운 진동에 놀라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발신자를 보니, 호의 실종 사건에 재배정 되었다는 이충혁 경위였다. 지난달, 도난 사건 범인을 쫓다 발목을 접질려 진료를 받으러 왔다는 그를 만난 적이 있었다. 그는 친한 선배가 수사하던 사건이라 잘 인지하고 있다며, 수사 파일을 다시 살펴보고 있다고 했다. 나는 그가 내민 명함을 받아 들면서도 기쁘지 않았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아이에게 화를 냈고, 내가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냐고 호처럼 다그쳤다.
“사윤 어머니?”
“네, 경위님. 안녕하세요.”
“다름이 아니라, 사윤이가 저를 만나러 왔는데요. 어머니 잠깐 서로 와주실 수 있을까요?”
“걔가…… 거길 왜 갔죠?”
“오시면 말씀드릴게요. 지금 출발하실 수 있나요?”
나는 곧 출발하겠다고 답하고 전화를 끊었다. 단축 번호를 눌러 사윤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전화기는 꺼져 있었다. 병동으로 올라가 수 선생님께 집안일로 오늘 근무가 어렵다고 말하자, 그녀는 못마땅하지만, 어쩔 수 없다는 눈으로 나를 보았다. 그녀에게 목례한 후 빠르게 병원에서 나와 대기 중인 택시에 올랐다.
To be continued…
다음 화
나는 호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도,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사윤과 사무장이 왜 그곳에 갔는지, 언제부터였는지도 묻지 않았다. 그깟 진실 따위 알고 싶지 않아서, 나는 결국에는…… 그와 똑같은 인간이 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