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 회전목마[Hes’] (1)
서림은 대학생 때 놀이공원에서 아르바이트해 본 적이 있었다. 그녀는 매일 아침 7시에 침대에 딱 달라붙은 몸을 억지로 일으킨 후 깊게 숨을 쉬고 두 다리를 쭈욱 늘리며 스트레칭했다. 그럴 때마다 누군가 준 복숭아 맛 젤리를 가방에 넣어두고 어느 여름날, 가방을 뒤적이는 손끝이 끈적해서 보면 녹아서 흐물흐물해진 그것이 자신의 몸 같았다. 무표정한 얼굴로 침대에서 기어 내려와 어제 마시다 만 물컵의 물을 한 번에 마신 후 정신을 깨웠다. 샤워하기, 머리 말리기, 화장하기, 옷 갈아입기, 아무거나 먹고 배 채우기 등 순서대로 준비한 후 똑같이 영혼 없는 사람들과 같은 열차에 타고, 사람들이 가장 많이 내리는 역에서 또 떠밀려 내렸다. 아침 9시에 개장하는 놀이공원의 매표소 앞과 입구에는 이미 들뜬 얼굴의 사람들이 착실하게 두 줄 서기를 하고 있었다. 서림이 가장 희열을 느끼는 순간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남들은 표를 끊고 문이 열릴 때까지 대기를 하고 있는데, 자신은 직원용 문으로 들어가는 순간 말이다. 그 희열은 그때뿐이었지만.
돈을 받으며 놀이공원에 들어오는 느낌이 처음엔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역시 일터가 되는 순간, 바이킹이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들린 후 곧 사람들의 비명이 들리고 그와 동시에 서림도 머릿속으로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일을 시작한 지 6개월이 지난 즈음엔 급기야 사람들 얼굴도 보기 싫고, 비라도 쏟아져 자신이 있는 실외의 놀이기구들이 일제히 멈췄으면 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요?”
성용은 연신 배배 꼬이는 놀이기구에 놀란 듯 온몸의 공포를 털어내듯 바르르 떨었다. 서림은 벤치에 앉아 바로 앞의 추로스 가게에 원한이라도 있는 듯 목을 쭉 빼고, 입술을 삐죽 내밀고, 눈을 가늘게 뜨고 있었다.
“성용 씨, 추로스 좋아하세요?”
“별로요?”
“하나 사 드릴까요?”
“방금 별로라고 했는데. 뭐, 오랜만에 먹어 볼까요? 그런데 정말, 놀이공원에서 보자고 할 줄 몰랐어요.”
성용은 서림을 따라 추로스 가게 쪽으로 몸을 돌렸다.
“제가 이 추로스를 팔았거든요. 여기, 이 자리에서. 진심으로, 저는 추로스를 증오했어요. 무슨 맛 드실래요?”
서림이 스타카토로 내뱉는 말에 판매원은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가 알겠다는 듯 입꼬리를 올렸다. 성용은 그녀가 뱉고 있는 말과 행동이 어우러지지 않는 게 재밌어서 춥다는 듯 두 손으로 입을 가리는 척했지만 몰래 웃고 있었다.
“전 오리지널 먹을게요. 서림 씨는요?”
“전 요란하게 생긴 저거요. 이런 데 얼마 만이에요?”
“기억도 안 나는데요? 전 시끌벅적한 데 오면 곧 방전 상태라.”
“저도 퇴사한 후로는 처음이네요. 그러고 보니 10년이 넘었네요.”
서림의 손에는 두 개의 추로스가 쥐어졌다. 그녀는 그가 원했던 오리지널 추로스를 성용에게 내밀었다.
“그래도 요즘은 뭘 먹긴 하나 봐요?”
“일단은 살아야 하니까요.”
“아…… 일단은?”
서림은 호수 쪽으로 걸었고, 성용은 김이 나오는 추로스를 물끄러미 보다가 한입 베어 물었다. 호수 쪽엔 아직 사람이 많이 없었다. 두 사람은 놀이기구가 보이는 벤치에 앉았다.
“여기서 일하면서 정말 다양한 사람들을 볼 수 있었어요. 처음부터 끝까지 소리를 지르는 사람, 공포감에 몸서리치면서도 미소를 짓고 있는 사람, 탈까 말까 망설이기만 하는 사람, 속탈이 나서 벤치에 앉아 몸을 숙이고 있는 사람, 연신 셔터를 누르는 사람, 타는 것보다 먹는 게 더 좋은 사람, 같은 것만 타는 사람, 놀이공원의 괴담에 대해 끊임없이 말하는 사람, 관람차 하나로 끝내는 사람, 모노레일을 타고 자신만의 월리를 찾는 사람, 의무실에서 자다 가는 사람, 불편한 신발을 신고 와서 결국 절뚝이며 돌아가는 사람. 개장 때 서로 끌어안고 들어와서 폐장 때 헤어지고 따로 돌아가는 연인까지. …… 그런데 그 딸이라는 사람, 어떤 사람이었어요?”
성용은 서림이 나열한 사람들을 가까이에서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새어 나오는 웃음을 멈추고, 그녀는 이곳에서 어떤 사람이었을까 잠시 떠올려 보았지만, 잘 그려지지 않았다. 어쨌든 그녀를 만날 때면 어려운 문제는 쉬워지고 쉬운 문제는 문제가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그게 좋은 것인가 아닌가 하는 생각조차 들지 않을 만큼, 그녀는 엉킨 실타래를, 절대 못 풀 것 같은 실타래를 그냥 웃으며 끊어버리는 사람 같았다. ‘꼬인 게 뭐? 어차피 이 부분을 푼 대도 늘어져서 도움이 안 되는걸요.’라고 말하면서. 서림은 성용이 무슨 말이라도 해 주길 기다리다가 벌떡 일어서서 쓰레기통 앞으로 갔다. 마지막 한 입을 먹은 후 빵을 싸고 있던 종이를 버렸다.
“그 사람, 작가더라고요. 전시회에 초대받아서 갔었는데, 이걸 받았어요.”
성용은 가방에서 A4 크기의 두꺼운 노트를 꺼내더니 중간 페이지쯤에서 엽서 한 장을 꺼내 서림에게 건넸다. 서림은 엽서 뒷면에서 그녀의 이름을 확인했다. [한형서 전시회 - Hes’]
어둠. 그 방은 얼마큼 넓은지 가늠할 수 없었다. 그림 속에는 일부만이 있었기에 사실 그곳이 방인지, 어디인지 구분되지 않았다. 그 어둠을 쫓아가면 천장이라고도, 벽이라고도 하기 애매한 위치에 작은 창이 하나 있었다. 오직 그곳에서만 빛이 보였다. 아니, 빛이라기보다 서 있는 곳이 너무 어두워 빛이 아닌데 빛으로 보일 수도 있었다. 그 아래 사람의 형태가 보였다. 그것은 벽의 명암과 비슷해 한 사람인지, 두 사람인지 구분하기도 어려웠다. 서림은 엽서를 서서히 들었다. 눈앞에 가져다 댔다가, 떼어 놨다가 하던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벌어진 입술 사이로 큰 숨을 뱉었다.
“……허……. 이 틈이.”
틈. 서림은 그것이 두 사람이 한데 엉켜 있는 것을 그린 것임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 둘 사이의 틈. 그 둘은 숨을 쉬기 위해 잠시 입술을 떼어놓은 것 같았다. 종이 위를 스쳐 지나간 것은 아무것도 없어 보였다. 그 의도적인, 진실을 모르는 자는 영원히 알지 못할 여백 위로 그들의 가쁜 숨소리가 놀이기구의 그것처럼 날카롭게 들리는 것 같았다.
서림은 팔을 뻗어 엽서를 멀리 두었다가 호수의 수면에 엽서 끝을 맞췄다. 어둠과 빛과 결국 무엇인지 이해하고 만 것에 대해 탄식했다. 숨을 얼마나 크게 들이마시고 내쉬고 있는지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는 벤치에 올려두었던, 빵을 싸고 있던 종이를 성용이 움켜쥐는 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돌렸다.
“이거, 이건 너무 악의적이잖아요. 이 그림에 관해서 설명하던가요? 의도가 뭔데요?”
“악의. 의도. 그 사람은 유치한 제목을 붙이고 싶었다고 하더군요. 전시회의 메인이 그 그림이고, 관람 후에 사람들은 그 그림이 들어간 아이템들을 사 가더군요. 포스터, 엽서, 북마크, 키링, 마스킹 테이프, 마그넷, 손수건. 사람들은 뭘 느꼈을까요? 어둠을 아무리 바라봐도 보이지 않는 틈을 결국 찾아낼 수 있을까요?”
성용은 서림의 손에 들려 있던 엽서를 다시 가져가 노트 안에 넣었다. 잠시 눈이 마주친 순간, 서림은 그의 눈이 처음 만났을 때처럼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것이 안타까웠다. 그의 영혼은 그에게서 떠나 있을 때가 더 잦은 것 같았다.
“모든 게 아버지 탓이라고 하더군요. 뭐라더라, 아, 수잔 발라동을 맹목적으로 사랑했던 사티라고 했던가? 그 사람처럼 자신만의 종교를 만들고, 아무도 구원해 주지 않던 생에 유일하다고 믿었던 사랑을 끊임없이 갈구하면서…….”
“미안해요, 성용 씨. 그러니까 요는, 다 성용 씨 아버지 잘못이다?”
“지질한 난리 부르스? 라고 하더군요. 그 난리 부르스 때문에 제 정신일 때가 없었다고요.”
“이해 못 하는 건 아닌데요. 성용 씨나 어머니도 똑같이 고통받은 거 아니에요?”
“서림 씨가 아버지를 용서 못 하는 이유가 오로지 고통받았기 때문인가요? 그 고통이 무엇을 만들어냈죠? 서림 씨는 이 사람처럼 하지 않았을 뿐이에요.”
“…… 다른 얘기가 있군요.”
성용은 자리에서 일어나 호수 쪽으로 걸어갔다. 셔츠의 제일 윗단추를 풀자, 바람은 찬데 숨은 쉬어지는 것 같았다. 펜스 아래 녹지 않고 그대로 얼어붙은 눈이 흙과 함께 뭉쳐져 있었다. 성용은 구두 끝으로 그것을 툭툭 치다가 지그시 눌러 밟았다. 다시 단추를 잠그고 코트의 깃을 단단히 세웠다.
“성용 씨, 회전목마 타러 갈래요?”
“회전목마?”
“저 한 번도 타 본 적 없거든요. 어릴 때도, 지금도, 그게 되게 유치해 보여서.”
“그런데 지금은 왜 타고 싶은데요?”
“아까 오다가 봤는데, 고작 아래위로, 빙글빙글 천천히 돌 뿐인데 사람들은 되게 행복하게 웃고 있더라고요? 사실 우리는 360도 뺑뺑이를 돌지 않아도, 고작 그 정도 속도에라도 위로받는 건지도 몰라요.”
그녀의 말에 실소가 터졌다. 성용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오래전에 가족이 다 함께 탄 적이 있었다. 어머니의 반대를 뚫고 아버지가 사주신 구슬 아이스크림이 담긴 컵을 손에 붙잡고 혹시나 떨어뜨릴세라 잔뜩 힘을 주고 있었다. 다 타고 난 뒤에는 어머니가 탄 백마가 멋져 보이니 그 말을 타게 해 달라고 내내 졸랐었다.
속도감이라고는 없는 놀이기구여서인지, 둘은 대기도 없이 바로 원하는 말에 올라탔다. 성용은 심드렁한 표정의 그녀를 돌아보며 ‘위로받고 있어요?’라고 물었다.
“한 바퀴 돌면 얘기해 줄게요.”
“하하.”
“성용 씨, 아까 하다 만 얘기해 봐요.”
서림의 말이 아래로 내려갔다. 성용은 그녀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봉을 붙잡은 손에 힘이 쥐어졌다. 고개를 떨구자 돌고 있는 회전판 때문에 어지럼증이 느껴졌다.
“그 사람 어머니가, 병으로 곧 죽게 될 남편을 죽였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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