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사라진 사람(1)
화주 내리시장은 매월 5일과 7일에 장이 선다. 나는 지난달부터 아버지에게 장 구경을 하러 가자고 말해왔다. 방학을 한 첫 주고, 학원도 이번 주까지는 방학이니 좋은 기회였다. 엄마는 내 부탁에 그렇게 가고 싶으면 같이 가자고 했지만, 꼭 아버지와 같이 가고 싶다고 전에 없이 매달렸다. 거절당하는 내 마음이 어떻든, 아버지는 신경 쓰지 않겠지만, 그래도 계속 얘기했다.
장날을 일주일 앞둔 어느 날, 아버지는 술에 취한 채 스쿠터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다 농수로로 떨어졌다. 수화기 너머 아버지가 내는 소리가 사람의 것이 아니어서 나는 귀를 더 가까이 댔다가 포기하고 엄마에게 내밀었다. 엄마가 ‘여보세요’ 한마디를 하자, 수화기 너머로 아버지의 상태를 바로 알 수 있었다. 우리는 그곳으로 달려가 넘어진 아버지를 일으켜 세우고 처박힌 스쿠터는 그대로 둔 채 집으로 돌아왔다. 아버지는 다음 날 한의원에 가서 침을 맞고 오더니, 마당 수돗가에서 걸레를 빨고 있던 어머니를 향해 빗자루를 집어던졌다. 어머니는 뒤로 주저앉았다가, 그 눈을 마주쳤다가 큰일이라도 난다는 듯 고개를 돌리며 일어섰다. 아버지는 절뚝거리며 다가와 양은 대야를 집어던졌다. 한쪽이 찌그러진 대야는 조만간 다른 쪽도 찌그러질 것 같았다.
아버지는 한동안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나가지 못하는 만큼 집에서 엄마를 괴롭혔다. 한 번은 냉장고에 붙은 엄마의 근무표를 보더니 밤 근무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왜 횟수가 늘었냐고 물었다. 엄마는 같이 일하는 직원이 임신해 그 직원 대신 밤 근무를 더 해야 한다고 했다. 우유를 꺼내려던 내 위로 엄마가 쓰러졌다. 안경이 벽에 부딪혔다가 구석에 처박혔고, 빠진 안경알은 어딘가로 날아갔다. 엄마는 안경알을 찾으려 바닥을 기었고, 아버지는 그런 엄마의 엉덩이를 걷어차더니, 밖으로 나가버렸다. 나는 알이 하나 없는 안경을 쓰고 다녔다. 흐릿한 눈으로 세상을 보니 좋았다. 잘 보이는 쪽을 가리면 엄마가 우는지, 웃는지, 아버지가 화를 내는지 아닌지 알 수 없었다. 선생님은 집에 전화를 걸어 새 안경을 맞출 건지 물었고, 전화를 받은 아버지는 ‘이번 장날에 나가서 맞출 겁니다’라고 답했다. 책상 앞에 앉아 문제집을 풀고 있던 나는 아버지의 말에 놀라 벗어 두었던 안경을 썼고, 바닥을 닦던 엄마는 작게 숨을 쉬었다.
불편한 다리로 운전은 힘들 테니 버스를 타자는 내 말에 아버지는 대꾸하지 않았지만, 당일에 차 키를 방에 그대로 두고 나왔다. 장이 서는 곳까지 바로 가는 버스가 있어, 엄마는 버스 정류장에 우리를 내려주고 오전 근무를 하러 갔다. 아버지는 버스에 누가 타고 내릴 때마다 친절한 가이드라도 된 것처럼 얼굴에 미소를 띤 채로 머리를 숙였다. 나는 아버지 앞에 선 채로 그 행동이 신기하다는 듯 보다가 주머니에 손을 넣고 배지를 만지작거렸다. 아버지는 손이 들어가 불룩한 주머니를 노려보더니 그게 뭐냐고 물었다. 주먹을 내밀고 손을 펼치니 아버지는 ‘별것도 아니었네’라는 눈으로 고개를 돌렸다.
버스가 다음 신호를 받기 위해 기다리는 동안 나는 배지를 아버지의 왼쪽 가슴 위에 가져다 대고 위치를 확인했다가, 이내 핀을 열어 셔츠에 달아주었다. 아버지가 고개를 숙여 배지를 확인하고 내 얼굴을 보는 사이 다시 출발한 버스의 방향에 따라 내 몸도 움직였다. 아버지는 뒤를 돌아보더니 빈자리를 확인하고는 내 손등을 툭 치며 가서 앉으라고 했다. 나는 맨 뒷자리에서 아버지를 보았다. 아버지의 오른손이 배지를 만지고 있는 듯했다.
아버지는 좋은 사람도, 좋은 남편도, 좋은 아버지도 아니었다. 마음대로 사는 사람에게는, 셔츠에 달린 저 배지의 무게만 거슬릴 뿐이라는 걸 나는 잘 알고 있었다.
아버지에게 오늘의 선택은 후회로 남을 것이다. 나는 반드시, 그렇게 만들고 말 거다.
우리는 시장 근처에 내려 안경원부터 갔다. 시력을 다시 확인하고, 사장님이 좋다고 하는, 적당한 안경을 골랐다. 한 시간 뒤에 완성된다는 말에 아버지의 전화번호를 적어두고 밖으로 나왔다. 장날답게 이른 시간인데도 사람들이 많았다. 나는 아직 걷는 게 불편한 아버지의 뒤를 따라 시장 안으로 들어갔다. 시장 중간에 있는 떡볶이집에서 떡볶이와 순대 1인분을 주문하고 기다리는데, 아버지가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쥐여주고는 여기서 기다리라고 했다.
“어디 가는데요?”
“금방 와. 여기 있어. 금방 온다고.”
아버지가 사라지는 것을 보고, 나는 계산을 치른 뒤 바로 일어섰다. 안 먹고 가냐는 아주머니의 말에 그냥 두라고, 곧 오겠다고 말했다. 시장 끝자락의 한복점 코너를 돌아 나가면 좁디좁은 통로가 나오고, 통로를 따라 걸으면 바로 동네 골목길로 이어진다. 훤한 시간에도 그 길은 사람이 별로 다니지 않는다. 나는 뒷문을 닫는 아저씨를 발견했고, 우리는 말없이 차에 올라탔다.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뒷좌석을 개방한 차는 환자 이송용으로 쓰였다. 방수포 위에 아버지가 누워 있었고 머리 아래로 피가 흥건했다. 피 냄새가 역했지만, 창문을 열지는 않았다. 도로 위를 달리던 차는, 시골길을 따라 달리다가 보건 지소 앞에 멈춰 섰다.
“여기가 안전해. 안전하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되지만, 사람들 눈에 훤히 보이는 곳에 있어야 오히려 안전하지.”
아저씨는 내게 열쇠를 건넸다.
“야, 네 아빠가 진짜 나쁜 새끼라는 거 아냐? 너랑 있는 와중에도 말이야? 내가 여자애 하나 데려왔다니까 와…… 눈이 아주 초롱초롱하더라니까? 생각해 보면, 다 끝이 있어. 네 부탁이긴 했지만, 이렇게 끝내는 것도 나쁘지 않고, 그렇지? 근데 넌, 네 아빠가 없어지면 다 좋아질 것 같아? 그럴 것 같아서 없애달라고 한 거겠지만. 네가 어려서 모르겠지만, 세상에는 없어져야 할 새끼들이 차고 넘치거든? 그런데 그놈들이 없어져도 좋아지는 건 없어. 그 자리에 똑같은 새끼들이 들어오는 게 인생이거든.”
“아저씨, 무서워요?”
“…… 뭐?”
“무서워 보여요.”
멍한 표정의 아저씨를 두고 차에서 내려 뒷문으로 다가갔다. 문을 열자, 아저씨가 방수포로 싼 아버지를 둘러업고 다가왔다. 우리는 아버지를 바닥에 내려놓고, 방수포를 펼쳤다. 나머지 일은 아저씨가 알아서 한다고 했다. 나는 흰색 티셔츠 위에 달린 배지를 보고 있었다. 허리에 양손을 올리고 아버지를 보는 아저씨의 뒷모습은 승자처럼 보였다.
속에 무엇을 담고 있는지 우리는 말한 적이 없었지만, 그 순간이 주는 해방감에 압도되어 한참을 서 있었다. 아주 잠시 미소 지었던 것도 같다.
우리가 다시 나가기 위해 몸을 돌렸을 때, 나서는 안 되는 소리가 바닥에서 들렸다. 그는 어쩔 줄 몰라했고, 나는 무서워 뛰쳐나왔다. 아저씨는 지소 뒤의 휑한 공터에서 소리를 지르며 우는 나를 일으켜 세우더니 뺨을 내리쳤다.
“정신 차려!”
차에 실려, 다시 있던 곳에 내려진 나는 발걸음을 옮기면서 울기 시작했다. 울면서 아버지를 찾았다. 살아있는 아버지를 부정하며, 이미 없어진 사람을 애타게 찾는 것처럼 아버지를 불렀다. 떡볶이집 아주머니가 나를 알아보았고, 아버지가 없어졌다는 내 말에 당황해하며 주변 상인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우리가 앉았던 자리에는 비닐로 덮은 접시가 놓여있었다. 그 신음과, 핏물, 손가락, 티셔츠가 계속 떠올랐다.
나는 경찰서로 갔고, 계속 울기만 했다.
누군가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고, 전화를 건네받은 나는 아버지가 없어졌다고 말했다.
그때, 나는 엄마의 안도를 읽었다.
터진 숨소리에서 느껴졌다.
처음으로 엄마에게 인정받은 느낌이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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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런 상태로 얼마나 더 살 수 있죠?”
내 질문에 아저씨는 기가 차다는 듯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