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연연하는 그림일기 - 그 말만은 하지 말지
병원에서 일했을 때, 한 선배가 몇 시간 동안 후배를 질타하고 있었다. 그 소리가 귀에 거슬려 환자들도 인상을 찌푸릴 지경이었다. 별 일도 아니었다. 주의를 주고 끝내면 됐을 일이었다. 몇 시간 동안 잡혀 있느라 후배는 제시간에 일을 하지 못했고, 해야 할 일을 끝낼 때까지 동료들도 집에 가지 못하게 됐다. 같이 일하니까, 같이 가야지 라며 붙잡아두었다. 선배는 어떤 날엔 이 사람, 어떤 날엔 저 사람에게 독설을 퍼부었다. 나이가 많으면 많다고, 머릿속에 뭐가 들었냐, 그 나이 먹도록 뭐 하고 살았는데 이런 것도 제대로 못하냐고 했다.
그날도 지독하게 시달린 동료와 얘기를 나누게 됐다. 나는 괜찮냐고 묻지도 못했다. 괜찮지 않다는 걸 아니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직원 상담 때 그러한 일들이 있다는 사실과 모두에게 심리적 영향을 주고 있다고 얘기한 적이 있었다. 돌아온 대답은 시간이 지나면 좋아질 거라는 것과 다 같이 잘해보자고 하는 소리라는 거였다. 한번 옳은 소리를 한다고 해서 나머지 아홉 번을 참아줘야 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동료에게 앞으로 계획이 있냐고 물었다.
"복수하려고요."
"복수요?"
"네. 저는 끝까지 버틸 거거든요. 절대 안 나가고 제 얼굴 계속 보여줄 거예요. 밥맛 없다잖아요. 밥 맛 떨어지게 계속 버틸 거예요. 그런데 저 때문에 다른 분들까지 퇴근이 늦어져서 죄송해요."
"괜찮아요. 저는 그냥 가만히 있기만 해서, 그게 미안해요."
"누가 도와주면 더 할 걸요? 기억나요? 전에 어떤 환자가 대신 화내줘서 통쾌했어요! 그만 좀 하라고, 환자 스트레스받게 하는 병원이냐고! 그때 표정 진짜 웃겼어요."
"저도 봤어요.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어딨 냐고 그랬는데. 구구절절 옳은 말만 하시더라고요. 그걸 '누가' 좀 알아주면 좋을 텐데."
드라마에서 통쾌한 일격을 날리는 장면을 보면 참 속이 시원하다. 하지만 막상 그 말을 내뱉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사이다 모음집을 보면서 마음을 삭혀 보고는 한다.
누구나 마음속에 공격 태세를 갖춘 개 한 마리 키우고 살지 않나(내가 개가 되긴 어렵겠지만, 하하)
나는 가끔 병원에서 일했던 때의 꿈을 꾼다. 마치 재입대의 공포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은데, 그런 꿈을 꾼 날은 하루 종일 꿈의 잔상에 시달린다.
시간이 많이 흘러 다른 곳에서 그 선배를 다시 마주하게 됐는데, 그곳 사람들에게 그는 '어느 정도는 괜찮은 사람'이 되어 있었다.
하지 말았어야 할 말들을 뱉고 살았던 사람, 약자에게 끝없는 굴욕을 주었던 사람이 만면에 미소를 띠고 있는 걸 보고 있자니 그때와는 다른 마음으로 힘이 들었다.
복수할 거라고, 미소 짓던 자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지금은 복수를 꿈꾸지 않는 삶을 살기를 바란다.
하루하루가 소중해서 그런 단어는 떠오르지도 않는, 모두에게 귀한 사람으로 살아가기를 바란다.
오늘의 그림일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