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연연하는 그림일기 - 추워지면 그리움이 툭 튀어나와
"원장님, 나 방 좀 바꿔줘. 1인실로 바꿔줘! 저 무식한 년이랑 같이 못 있겠다고요!"
"저 년이 누구한테 무식하대?"
"닥쳐! 나 이대 나왔다고!"
"헛소리하고 있네."
"진짜 라니까?"
"아이고... 좀 조용히들 해라. 여기 절반은 대학 나왔다, 저 쪽 방 아저씨는 서울대 나왔어. 옆에 아저씨는 박사여, 박사."
"종단에는 다 같은 데 있으면서 뭔 말들이 많아!"
머리라도 움켜쥘 태세로 대치 중이던 할머니들은 방장 역할을 하는 할머니의 마지막 말에 바람 빠진 풍선처럼 침대에 엉덩이가 떨어졌다. 막 나오기 시작한 저녁 식사를 먹기 위해 침대의 식판을 올리고 개인 수저세트를 서랍에서 꺼냈다.
"내가 그랬지. 밖에서 뭔 영광을 누렸든 여기 온 이상 다 똑같다고. 속으로 해, 속으로. 다 똑같잖아. 오라는 자식들은 안 오고, 저 앞에 저승사자만 가까이 있네."
"왜 이래? 우리 애는 지난주에 왔다 갔어."
"그래~ 그 집은 아직 싸가지가 있어. 근데 다음엔 다른 빵 사 오라고 그래. 늙으면 죄다 단팥빵만 좋아하는 줄 아나?"
"사 와도 지랄, 안 사 와도 지랄."
"아, 언니!"
저녁 식사 후 모두 거실로 나와 일일 드라마를 기다리고 있다. 어느 병원의 홍보 문구가 수놓아진 무릎 담요를 넓게 펼쳐 어깨에 두른 한 어르신이 덧신을 까딱거리며 광고에 흘러나오는 이름도 모르는 음악을 따라 흥얼거렸다.
그곳에 들릴 때마다 돌아오지 않는 마음에 대해 생각했다.
그럼에도 있어야 할 곳에 두는 마음도 생각했다.
그리움을 담은 공기와 향, 현관문이 열릴 때 같이 흔들리는 풍경, 동시에 모여지는 시선에 '기다리던 사람이 아니라 죄송합니다'라고 속으로 말했다.
저녁이 길어지고, 잠도 많아지는 계절에 누군가 사온 군밤과 붕어빵에 지난 세월을 풀어놓는다. 먹어야 할 많은 약들을 손바닥에 올려놓고 굵어진 손가락으로 몇 개인지 세어보는 어르신 옆에 '세지마, 그냥 많아'라고 옆에서 농을 날린다. 모두 웃는다. 웃을 일인가 싶은데 모두 웃는다.
"추우면 오기 힘들어."
"그렇지, 오기 힘들지."
모두 고개를 끄덕인다.
가끔 생각난다. 못난이 곰이 될 정도로 손에서 놓지 않았던 애착 인형이 어느 날 문을 열고 들어오기를 바랐었다. 나는 너를 기다리는데, 너는 내가 보고 싶지 않나 봐. 아무 소용없는 말들을 중얼거렸던 그 시간들.
근데 그때가 겨울이었나, 언제였나.
오늘의 그림일기 끝.
커버: 모리스 드 블라맹크 전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