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준형 Nov 29. 2020

로맹롤랑, 그럴'만두'하지

철학의 식탁 열 여섯 번째 이야기

이런저런 일들로 기분이 한없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날이면 이른 아침부터 장바구니를 챙긴다. 터벅터벅 가까운 마트 혹은 시장으로 걸어가 싱싱한 부추와 지방이 적당히 붙은 돼지고기, 유통기한 넉넉히 남은 두부를 사 가지고 집으로 돌아오는 게다. 돌아오는 길에는 달달한 하드 하나쯤 물어도 좋고.



집에 도착한 뒤부턴 느긋하게 재료를 손질할 일이다. 깨끗이 씻은 부추는 적당한 크기로 썰어두자. 핏물을 뺀 돼지고기는 잘게 다져주고 말이다. 정육점에 미리 “만두할 거예요”라고만 하면 다진 고기를 주겠지만 굳이 그럴 필요는 없다. 오늘 하루는 천천히, 느긋하게 시간을 보낼 예정이니까. 두부는 마른 팬에 올려 나무 뒤집개로 사정 없이 조각내 준다. 간은 소금 한 꼬집에 소금 톡톡, 불은 약불. 가급적 뒤집개 바닥을 쓰는 것보단 날을 세워 조금씩 으깨주는 것이 좋다. 불 위에서 수분이 잘 날아간 두부가 속에서 간간히 씹히는 게 좋더라고 난.


밀가루 넉넉하게 뿌린 넓은 쟁반까지 옆에 두었다면 준비 끝. 이제는 본격적으로 만두를 빚을 차례다. 정성껏 손질한 부추와 돼지고기, 두부, 그리고 굴소스 한 큰술 넣고 잘 섞어주는 거다. 어디 하나라도 뭉친 곳 없게 말이다. 피는 함께 사온 왕만두용 만두피. 자신있다면 밀가루 반죽부터 시작해 보아도 좋겠지만 여간한 자신감이 아니라면 ‘비추’다. 특히나 TV에서 본 이연복 셰프의 현란한 손놀림이 본인 손에서도 나올 거라고 생각한다면 오산 오브 경기도 오산. 잘 나가는 대기업들이 기껏 공장 설비 들여서 밀가루 반죽 따위 찍어내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피에 차곡차곡 속을 담아 만두를 빚기 시작하면 생각이 많아지게 마련이다. ‘대체 무얼 잘못했더라?’, ‘어떻게 해결하면 되지?’, ‘가능한 걸까?’, ‘혹시 생각대로 되지 않으면 어쩌지?’ 등등. 그런 생각들을 피 안에 넣고 하나하나 봉해버리는 거다. 만두는 그런 음식이니까.



그냥 반달 모양의 만두부터 나름 주름을 넣은 만두, 양끝을 붙여 동그랗게 만든 만두까지. 만두피 한 봉 분량이 완성될 즈음이면 찜기에 물을 올려두자. 이미 시간은 정오를 훌쩍 넘겨 버렸고, 난 여전히 한끼도 입에 넣지 않은 상태니까. 모락모락 김이 오르는 순간, 정성껏 만든 만두를 하나씩 찜통 안에 넣어주면 이제 정말 끝이다.

알맞게 익어 속이 비치는 만두를 꺼내 물자 ‘툭’하고 육즙이 터져나온다. 만두의 매력은 무궁무진하지만, 이런 날 느껴지는 매력을 하나만 고르라면 이게 아닐까? 바로 ‘공들인만큼의 맛이 나온다’는 사실 말이다. 한 봉에 사천 사백 원, 세 봉에 팔천 팔백 원 밖에 안 하는 고향만두도, 두툼한 크기와 얇은 피를 자랑하는 한섬만두도 물론 매력적이지만 직접 빚은 만두에 비할 바는 아니다. 싱싱한 재료 넣어 갓 찐 만두를 무슨 수로 이긴단 말인가.


이런 날 만두를 입에 넣을 때면 성경의 어느 구절을 떠올린다.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라는 구절 말이다. 종교를 가진 것은 아니지만 굳이 그걸 의식할 필요는 없다. 지금 내게 주어진 시련이 오늘의 만두처럼 결국 잘 마무리될 거라는 믿음이 중요한 거니까. 다른 종교를 믿어도 신경쓰지 않을 일이다. ‘하나님’이라는 주어에 다른 ‘분’만 넣으면 되는 일 아니겠나. 두부를 면포에 꼭 짜서 만들어도, 다진 돼지고기를 사와서 만들어도 만두는 만두니까.



소설가이자 사상가인 로맹롤랑의 ‘언제까지 계속되는 불행이란 없다’는 말도 만두를 즐기기에 썩 나쁘지 않은 문장이다. 그의 소설 속 주인공인 장 크리스토프는 고통 받는 천재이다. 아버지의 방탕한 생활로 집안은 파산했고, 첫사랑도 여느 통속 소설과는 달리 신분 차이를 극복하지 못한 채 이별로 끝을 맺는다. 고뇌하던 장 크리스토프는 깨닫는다. 인생의 의미는 행복해지는 것이 있는 것이 아닌, 제대로 된 ‘인간’이 되는 데에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방랑하고, 뜻하지 않은 살인을 경험하고, 또 첫사랑을 만나 만년을 보내기도 한 그는, 마지막 순간 유언을 남긴다. “(나의) 이름이 아닌 작품이 남겨지길 원한다”고 말이다.


때때로 우린 끊임 없는 불행과 역경에 놓여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을 받곤 한다. 그 순간순간은 너무나 힘들고 견디기 어렵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다행스럽게도 '그 또한 지나가게' 되고 말리라는 사실을 말이다. 지금, 한없이 우울하다면 손수 만두를 빚어보는 건 어떤가? 그리고 그날의 불행을 만두 안에 담아 꼭꼭 삼켜버리는 거다. 되는 일 하나 없는 세상에 내 맘대로 되는 음식 하나쯤 있다는 사실도 되새기며 말이다. 그리고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면 감당하지 못할 불행도, 언제까지 계속되는 불행도 없지만 그 불행을 이겨내는 데에는 약간의 노력, 그리고 그보다 조금 더 긴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에 피식 헛웃음 지어도 좋다.

매거진의 이전글 존 스튜어트 밀, 포트럭 파티를 기획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