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사상의 원류 : 유가
얼핏 생각해도 중국의 사상을 기반으로 한 동양 철학과 고대 그리스 로마의 사상을 기반으로 한 서양 철학은 다른 점이 많습니다. 서양의 철학을 생각하면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등 고대의 사상가들은 물론 칸트, 헤겔, 푸코 같은 근현대의 사상가들이 함께 떠오르는 반면, 동양의 철학은 공자나 맹자 같은 옛 인물들만 떠오르니 말이죠. 이런 이유로 혹자는 동양엔 단지 ‘종교’가 있었을 뿐 철학은 존재하지 않았다고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발전 없이 특정 사상을 맹목적으로 믿어 왔다는 거죠. 하지만 지역적, 문화적 환경에 따른 차이의 고려 없이 ‘철학이 없었다’고 단정하는 태도는 결코 옳지 못한 접근입니다.
그럼 도대체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중국의 현대철학자인 펑유란 선생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서양철학과 동양철학의 차이가 생겨났다고 설명합니다.
우선 고대 그리스 로마는 해양국입니다. 이곳에 살던 사람은 상업을 통해 부를 축적했죠. 그들은 대부분 상인이었으므로, 계산을 위한 추상적 개념(숫자)을 먼저 생각한 뒤 구체적 사물을 다뤘습니다. 때문에 이들은 가설에 의한 개념을 철학의 출발점으로 삼아 사상을 발전시켰죠. 이들이 인식론적인 문제를 갖고, 분명한 언어를 갖게 된 이유 역시 여기서 기인합니다.
그들은 상인인 동시에 도시인이었습니다. 자신의 물건을 사고, 팔 곳이 필요했기 때문이죠. 당연하게도 이들은 가족의 이익보다 도시 공공의 이익에 더 많은 기반을 둘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도시 국가에서 사회 조직은 비독재적입니다. 어느 개인이 다른 개인보다 더 중요하거나 우월하게 여겨질 이유가 없기 때문이죠.
반면 중국은 대륙국입니다. 공자가 살던 시대부터 19세기 말까지 파도가 치는 바다에서 모험을 해본 사상가는 아무도 없었죠.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등 해양국에 살며 이 섬, 저 섬을 옮겨다녔던 고대 서양의 철학자들을 생각한다면, 이것이 얼마나 큰 경험의 차이를 만들게 되었을지 짐작할 수 있을 겁니다.
또한 지역 특성상 대부분의 사람들은 농업에 종사하며 생계를 유지했습니다. 진秦나라가 중국 역사상 최초의 통일국가를 수립할 수 있었던 이유는 전국시대의 여러 나라 중 농전에 가장 실력을 갖춘 상태였기 때문이었습니다. 또한 오랜 기간 동양에서 사농공상士農工商으로 계층이 구분된 이유 역시 사대부는 농사를 지을 땅을 가진 지주였으며, 농부는 그 토지를 실제로 경작하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죠. 철학자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들은 농부의 의견을 대변하여 농작과 수확 등 직각적으로 감지되는 대상을 바탕으로 사상을 만들었기 때문에 개념을 다루는 인식론적 철학을 구태여 다룰 필요가 없었죠.
동양문화의 기반인 가족제도 역시 이러한 토대를 바탕으로 마련되었습니다.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며 문물을 전파하고 판매해야 하는 해양국 사람들과 달리, 이들은 농사를 짓기 위해 고정된 지역에서 오랜 기간 함께 살아가야 했기 때문이죠. 조상숭배의 문화 역시 자신과 후손들에게 살 터전을 마련해 준 이들을 기리는 한편, 가족 단합을 위한 행사의 기념으로 이어졌습니다.
이러한 토대를 바탕으로 동양 사상은 유가와 도가, 이밖에 다양한 입장으로 분화되어 나타나게 됩니다. 오랜 기간 동양 정신문명의 바탕이 된 유가는 농경 기반의 문화에 맞춰 인간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형태로 발전했으며, 도가는 인간의 자연적인 면과 자발적인 면을 강조하는 면으로 사상이 발전했죠. 이후에도 다양한 사상가들이 출연해 이들의 생각을 수정, 보완, 발전시켜 나아갔습니다. 동양과 서양 모두 그 지역과 환경에 맞는 이야기를 만들어가기 위해 오랜 세월 최선의 노력을 다해왔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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