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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준형 May 15. 2021

모든 떡갈비가 맛없는 것은 아니다

철학의 식탁 열여덟 번째 이야기

중학교 2학년이 되어서야 처음 피자를 먹어보았고, 대학생이 되어서야 파스타를 포-오크로 먹기 시작했다는 한식 영재 애인은 최소한 먹는 것에 있어선 의심이 많은 편이다. 뭐든 눈에 보이면 주워 먹고, 또 후회하기를 반복하는 나와는 대척점에 있는 인물이랄까. 그런 그에게 새로운 음식을 먹이는 방법은 단 한 가지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의심을 덜어주는 것. 우선 음식이 나오기 전부터 밑밥을 깔아두어야 한다. ‘이 음식이 왜 맛있는지’부터 ‘당신 입맛에 이 음식이 맞는 이유’까지. 뒤이어 음식이 나오면 냄새부터 맡아볼 게다. 후각이 예민한 친구거든. 거기까지 통과했다면? 절반쯤 지나온 거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방심은 금물이다. 하나의 음식엔 하나의 세계만큼 많은 변수들이 있으니까. 신선도가 떨어져 음식을 처음 맛보는 일의 즐거움을 떨어뜨릴 수도 있고, 미처 냄새를 맡지 못한 소스에 비선호 식재료(고수를 먹지 못하다니..!)가 포함되었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만약 이중 하나라도 그의 기준을 통과하지 못했다면? 그 음식은 가차 없이 폐기처분될 거다. 물론 내 입속으로 말이다.


그런데 사실 이런 단정적 태도는 철학적으로 꽤나 위험하다. 왜냐고? 그 이유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논리실증주의’라는 개념을 우선 살펴봐야 한다. 논리실증주의는 비트겐슈타인의 <논리철학 논고>에 영향을 받은 이론이다. 당대 지성의 집합소였던 빈 서클에서 시작됐으며, 귀납주의와 검증가능성의 원리를 바탕으로 논지를 전개해 나가는 것이 특징.


귀납주의와 검증가능성의 원리란 무엇일까? 우선 ‘귀납주의’는 우리의 경험을 바탕으로 어떤 내용을 일반화하는 것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가령 그동안 먹은 떡갈비가 모두 맛없었다고 생각해보자. 이때 귀납주의는 다음에 먹을 떡갈비도 맛없을 거라고 가정한다. 그리고 만약 관찰 결과가 예상과 동일하다면? 이를 토대로 '모든 떡갈비는 맛없다’는 진술을 이끌어낸다. ‘검증가능성의 원리’는 단어를 주의 깊게 살피면 의미를 유추할 수 있다. 바로 진술이 참 또는 거짓으로 검증이 가능해야 한다는 것. 이를 종합해 논리실증주의는 이런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이론은 타당성을 확인할 수 있어야 하며, 그 타탕성은 관찰과 경험에 의존한다. 또한 그 관찰의 빈도 혹은 경험의 양이 많을수록 그 이론의 설득력은 높아지게 된다.’


문제, 그러니까 철학적 위험은 맛있는 떡갈비를 발견하게 된 순간 시작된다. 진술은 최소한 이렇게 바뀌어야 할 거다. ‘모든 떡갈비가 맛없는 것은 아니’라고 말이다. 20세기 과학철학자 칼 포퍼는 과학이 발전하려면 기존 이론의 검증보다는 ‘반증할 수 있는 사례 혹은 사실’을 발견하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이러한 주장을 우리는 ‘반증주의’라고 부른다.


때문에 포퍼의 과학은 '가설'에서 시작된다. 만약 어떤 가설이 관찰을 통해 반증되면, 그 가설은 포기되고 다른 가설이 새로 제안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반증을 견뎌낸 가설이 있다면, 그 가설은 가설이 아닌 ‘이론’이 된다. 당연히 이렇게 만들어진 이론 또한 반드시 참이라고는 할 수 없다. 또 다른 가설과 반론이 제기되어 그 지위를 언제라도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린 이 과정을 통해 진리에 한 발 더 가까워진다.


다시 떡갈비로 돌아가 보자. 연애 초기 분명 내게 “떡갈비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했던 애인은 나의 ‘이것은 떡갈비가 아니다’ 류의 궤변에 못 이기는 척 떡갈비를 허락했다. 그리고? 당연히 잘 먹었고, 또 잘 먹고 있다. 당연히 세상 ‘모든 떡갈비가 맛없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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