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혹시 제가 방금 따라한 영상 보신 적 있으신가요? 바로 2019년 미국 슈퍼볼 경기 당시에 방영된 버거킹 광고입니다. 햄버거를 먹은 실제 주인공은 앤디 워홀이에요. 맞습니다. 미국 팝아트의 거장이자 미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작가로 불리는 예술가죠. 버거킹은 프랑스의 요르겐 레스 감독이 1982년 제작한 약 40분 분량의 예술 영화 <66 Scenes from america>의 일부 장면을 편집해서 이 광고를 만들었습니다.
아시는 것처럼 이 슈퍼볼 광고비는 무지하게 비쌉니다. 이 광고 송출비가 초당 2억 원에 가깝거든요. 자, 이 광고는 45초짜리니까.. 앤디워홀이 아무 말도 안 하고 햄버거 먹는 장면 보여주는 데 버거킹이 쓴 돈은 한화로 거의 90억 원에 달합니다.
버거킹은 이 광고를 송출하기 전, 총 5편의 티저 광고를 공개했습니다. 사실 티저 내용은 별 게 없었어요. 버거킹이 뭔가를 열심히 준비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마지막에 슈퍼볼 당일인 2019년 2월 3일 날짜와 ‘미스터리 박스를 주문하라’는 메시지만 주구장창 노출했거든요. 미스터리 박스도 막상 시켜보니 별거 없었습니다. 이상한 가발, 빈티지 버거킹 종이백, 빈 케첩통, 무료 와퍼 프로모션 코드가 들어있었던 거죠. 받는 사람 입장에선 황당할 따름이었죠.
어쨌든 대망의 2019년 2월 3일이 됐고, 예상치 못한 광고가 전파를 타고 미국 전역에 송출됐습니다. 30년도 더 지난 예술 영화의 한 장면을 활용해 미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화가 앤디 워홀의 먹방 영상을 보여준 거죠. 당연히 버거킹 광고는 이 해에 가장 주목 받은 슈퍼볼 광고가 되었고요.
자, 근데 이쯤 되면 궁금증이 또 하나 피어오릅니다. 바로 ‘앤디 워홀은 정말로 햄버거를 좋아했을까’라는 질문이죠. 사실 햄버거, 그중에서도 이 패스트푸드 햄버거는 팝아트적인 요소가 정말로 많습니다. 팝아트는 Popular Art를 줄인 말입니다. 말 그대로 ‘대중 예술’을 뜻하는 단어죠. 팝아티스트들은 ‘대중’을 위한 예술을 한다는 자신들의 지향에 맞게 어렵지 않고 이해하기 쉬운 예술을 만들고자 노력했어요. 사람들에게 친숙한 상품이나 광고, 유명인을 활용해서 예술 작품을 만들었고요. 팩토리, 즉 ’대량 생산 체제’를 갖춤으로써 사람들이 더 많은 곳에서 자신들의 예술을 마주할 수 있게 만들었죠.
이건 버거킹, 맥도날드 같은 패스트푸드 햄버거도 마찬가지예요. 빵, 고기, 치즈, 양상추, 토마토 같은 익숙한 재료를 활용해 ‘누구나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만들었고요. 자동차 만드는 데에나 쓰일 법한 공장식 제조법을 도입함으로써 더 저렴한 가격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햄버거를 즐길 수 있게 만들었죠.
그래서, 앤디 워홀은 햄버거를 좋아했냐고요? 아쉽지만 그건 아니었다고 해요. 앤디 워홀은 사실 햄버거보다는 단 걸 더 좋아하는 ‘설탕 마니아’였거든요. 아침에는 호랑이 기운이 솟아나는 시리얼를 먹었고요. 자신의 유명한 작품 주제 중 하나인 캠벨 수프를 즐겨 먹었습니다. 초콜릿, 사탕, 그리고 과일 같은 음식들도 자주 즐겼고요. 안타깝게도 햄버거 패티의 주 재료가 되는 고기도 별로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달지도 않고, 좋아하는 재료도 안 들어간 음식을 앤디 워홀이 좋아할 이유가 없었던 거예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앤디 워홀이 이 영화에 출연하기로 한 이유, 그리고 이 영화에서 자신이 햄버거를 먹는 장면을 보여주기로 결정한 데에는 햄버거라는 음식과 워홀 자신이 가진 20세기 미국에 대한 상징성을 잘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앤디 워홀은 미국의 위대한 점 중 하나로 ‘가장 부유한 자와 가장 가난한 자가 같은 것을 소비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한 바 있습니다. 누구나 TV를 보고, 누구나 코카콜라를 마시며, 누구나 단 돈 몇 달러짜리 햄버거를 먹는 것이 ‘가장 미국다움’을 보여주는 장면이라는 거죠. 그런데 미국다움을 가장 잘 보여주는 음식 햄버거를, 당대 미국을 대표하는 예술가 앤디 워홀이 먹는다? 이건 아마도 스스로를 가장 잘 포장할 줄 알았던 천재 예술가가 결코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었을 겁니다. 결국 워홀은 자신과 개인적인 친분도 전혀 없던 레스 감독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죠.
하나 덧붙이자면, 앤디 워홀은 촬영장에 온 뒤 스탭들에게 맥도날드 햄버거는 어딨냐고 물었다고 합니다. 그게 가장 ‘아름답다’는 이유로 말이죠. 하지만 맥도날드 햄버거는 준비되어 있지 않았고, 워홀은 새 햄버거를 사오려는 스탭을 향해 ‘괜찮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이 결정은 훗날 자신이 세상을 떠나고 한참 뒤, 맥도날드의 가장 강력한 라이벌 버거킹이 자신을 광고모델로 사용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고요. 아마 이런 결과는 워홀 자신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을 겁니다. 물론 그가 살아있던 당시에도 슈퍼볼은 미국인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었지만 말이죠.
그럼 저는 남은 햄버거나 마저 먹어야겠네요. 앤디 워홀보다는 좀 더 맛있게, 즐겨가며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