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는 순진무구한 이상, 아니 규정을 믿어보기로 했다.
팀원에 대한 무조건적 믿음 - 우리 모두는 팀의 성공, 팀원의 행복을 위해 말하고, 행동하고, 선택한다. 결과가 의도와 다르더라도 팀원의 선의를 결코 의심하지 않는다.
이건 얼마 전 새로 합류한 팀의 '사내문화' 문서에 담긴 규정 중 일부다. 이 팀은 얼마 전 법인화를 마친 신생 스타트업인데, 내부의 문화와 규칙, 협업 체계 등을 이제 하나씩 갖춰가고 있는 중이다. 업무는 각자 맡은 부분에 대해 어느 정도 초안을 만들고, 구성원 전체의 협의를 통해 수정∙보완 사항을 채워나가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가령 서비스기획을 맡은 나는 요즘 알파테스트를 위한 기획을 하고 있다. 방향을 잡아가는 순간마다 (가급적) 모두 모여 그 내용을 공유하고, 이야기를 나누려 노력한다. 물론 그 내용을 바탕으로 기획과 방향을 고도화하는 것은 내 몫이다. 갈 길 바쁜 초기 스타트업이 이래도 되나 싶은 정도로 차근차근, 한 발씩 나아가는 느낌인데, 아직까지는 걱정 반 기대 반의 느낌으로 일하고 있다. 물론, 그동안 내가 일해온 방식이 맞는 부분보다는 틀린 부분이 더 많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말이다.
사내문화 규정의 초안 작성은 운영 전반을 책임지고 있는 멜(참고로 이 팀은 영어 이름을 쓴다)의 몫이었다. 참고로 멜은 꽤 이름이 알려진 구독 플랫폼의 CCO를 역임(?!)하고, 이번에 첫 창업을 하게 된 이 회사의 대표다. 멜이 쓴, 팀원의 선의를 '결코' 의심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담긴 규정을 함께 읽어나가는 순간이 나는 꽤 낯설었다. 낯섦의 이유는 크게 세 가지 정도였던 것 같다. 첫 번째는 '아니, 세상에 여전히 선함을 부르짖는 사람들이 남아있다니, 게다가 그런 사람들이 한 공간에 모여 있다니!(이 조항을 읽을 때 팀원 모두가 보여준 진지한 표정은 정말 놀라운 광경이었다)'하는 신기함이었고, 두 번째는 '그런데 이건 사람 마음의 문제인데 명문화한다고 적용이 가능한 건가'하는 의구심이었으며, 세 번째는 '선하지 않은 인간이 어떻게 무턱대고 선한 마음을 품을 수 있겠는가'하는 불신이었다.
실패의 과정을 몇 차례 반복하면서, 내가 그나마 배운 것(이걸 이제서야 배운 건 여러모로 문제가 있다)은 스타트업은 스타트업이기 이전에 회사이고, 회사는 무엇보다 '돈 버는 곳'이라는 것이다. 필요한 시기에 필요한만큼의 돈을 못 벌면 혹은 성과를 보여주지 못하면 그 뒤의 과정은꽤 뻔하다. 급해진 리더는 점점 더 잘못된 선택을 하고, 믿고 의지하는 (것 같았던) 동료는 떠나가며, 사람들의 관심 또한 멀어진다. 쉽게 말해 망하는 거다. 그런 세계에 '선의'가 끼어들 구석이 내게는 아직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 실험의 결말이 꽤 궁금해지는 건, 이곳에 모인 사람들 때문이다. 굳이 이 사람들의 공통점을 말하자면 낯선 것, 새로운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게 아닐까 싶다. 필요하다면 어떻게든 낯선 사람을 찾고 만나는 에디터, 찐 문과 출신이지만 끊임 없이 데이터를 보고 해석하는 기획자, 나서서 함께 기획하고 스스로 개발의 범위를 넓혀가는 개발자까지. 모르긴 몰라도 꽤 스타트업스럽달까.
우리는 4월에는 알파 런칭, 5월에는 베타 런칭을 준비 중이다. 이 팀이 늘 한 발 더 나아갈 수 있도록, 조금 덜 실패할 수 있도록 나도 (나름) 더 애써보아야겠다. '규정대로' 이들의 선의를 믿어가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