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서 지겨웠고 다시는 보지 말자!
나는 꽤 오래전부터 서른다섯 살이 되기를 바랐다. 대단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니고, 그저 이번 생의 서른네 살이 너무 어렵고 지긋지긋했기 때문이다. 아, 올해는 정말 힘들었다. 계획대로 되는 건 없고, 가까스로 손에 잡힐 것 같았던 일들은 다시 또 멀어지고. 힘든 거 다음에 더 힘든 거, 더 힘든 거 다음으로 더더 힘든 거 같은 느낌이었달까. 눈앞에 닥쳐오는 위기를 넘기려 수없이 아둥바둥했고, 그만큼의 날들을 잠 못 이루었으며, 또 서너 번은 진심으로 사라지고 싶었다. 제발, 제발 가라 2021년. 그리고 나의 서른넷.
여기에 굳이 서른다섯이 되고 싶었던 이유를 하나 더 덧붙이자면 김연수 작가의 책 <청춘의 문장들>에 담긴
"이제 나는 서른다섯 살이 됐다."
라는 문장을 들 수 있겠다. 몇 년 전, 이 문장을 처음 읽었을 때 왠지 가슴이 뛰었다. 지금(아마 서른 두 살 쯤이었던 것 같은데..)의 나보다 더 경험도 많고, 더 많은 글을 써본 서른다섯의 나라면 어쩌면 그처럼 좋은 글을 쓰게 되지 않을까 하고. 물론, 서른네 살 마지막 날의 나를 보니 내년에도 ‘그’ 만큼 좋은 글을 쓸 수는 없을 거라는 걸 안다. 글이라는 게 그렇게 하루아침에 느는 것이 아니라는 것쯤, 인정할 여유(아니, 양심) 정도는 이제 내게도 있다.
나는 앞으로 어떤 삶을 살게 될까. 또 내년 이맘때 지나온 한 해를 바라보며 무어라 되짚게 될까. 책을 오랜만에 펼쳐 보니 다음 문장이 이렇게 이어지더라.
“앞으로 살 인생은 이미 산 인생과 똑같은 것일까? 깊은 밤, 가끔 누워서 창문으로 스며드는 불빛을 바라보노라면 모든 게 불분명해질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내가 살아온 절반의 인생도 흐릿해질 때가 많다. 하물며 앞으로 살아갈 인생이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