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잘 살피지 않는 사람은 불행하다

물러서지 않는 마음_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by 이준형

<물러서지 않는 마음>에 수록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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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들의 정신 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잘 살피지 않았다고 해서 사람이 불행해지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자신의 정신의 움직임들을 주의 깊게 잘 살피지 않는 사람은 반드시 불행해지게 된다.


SNS가 일상으로 들어온 뒤부터는 24시간 엄친아와 사는 기분이다. 어쩜 다들 얼마나 그렇게 잘나고, 멋지고, 행복하게 사는 건지. 어느새 이 세상은 온통 파티와 기념일 가득한 곳으로 변해버린 것 같다. 물론 나만 쏙 빼놓고 말이다. 친구들은 주말만 되면 온갖 ‘힙’으로 무장한 삶을 살기 시작했고, 졸업 후 연락 끊겼던 선배와 후배, 동기들은 전 세계 곳곳을 누비며 장기 휴가와 원격근무를 즐기는 디지털 노마드가 되었다지 아마. (아니, 혹시 오늘 나만 출근한 거야?) 그뿐일까. 팔로워가 수십, 수백 만 명에 달하는 인플루언서들은 멋진 휴양지와 고급차를 배경으로 한 자신의 ‘일상’을 전시하고, 협찬 받은 명풍백과 각종 전자기기를 마치 별것 아닌 양 사진과 영상으로 자랑한다. (아니, 혹시 저건 나만 없는 거야?)


문제는 그들의 멋진 일상이 영화나 광고 속의 ‘그것’과는 조금 다른 느낌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는 데에 있다. SNS는 영화, TV 등 우리가 기존의 대중매체에서 보던 것보다 훨씬 가까운 모습으로 대상을 보여준다. 특별한 외모를 가진 사람을 골라 최상의 분장, 조명, 편집 상태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나와 다를 것 없어 보이는 사람이 누리는 ‘일상 같은’ 모습을 보여준다는 얘기다. 저 멀리 중동의 만수르가 어제 1조를 벌었든 10조를 벌었든 무슨 상관인가. 하지만 그 소식이 내 주변에서 벌어진 일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아니, 그렇게 크고 거대한 성공이 아니어도 된다. 수도권 외곽에 작은 집 한 채 마련한 친구의 소식, 주식과 비트코인으로 꽤 짭짤한 수익을 얻은 대학 선배의 이야기, 누구보다 평범했지만 잘 키운 채널 하나로 퇴사에 성공한 어느 유튜버의 브이로그만으로도 나를 질투심에 불타게 만들기는 충분하니 말이다.


그곳에 전시된 삶들이 나를 우울하게 만들고, 위축되게 만든다는 사실은 나도 잘 알고 있다. 그들의 삶이 ‘진짜’가 아니라는 사실도 말이다. 하지만 정신 차려보면 또다시 그곳에 접속해 새로고침을 반복 또 반복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타인의 일상을 염탐하고, 시샘하는 삶에 ‘중독’ 되어버린 거다. 아아, 우리는 대체 어떻게 해야 남의 생각과 시선, 행동에 흔들리지 않는 삶, 남과 무작정 비교하지 않는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될까.


황제의 자리에 걸맞은 인물이 되고 싶었던 사람

여기 한평생을 오롯이 ‘나’로 살아간 인물이 있다. 바로 기원후 121년에 태어난 로마의 제16대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다. 그는 ‘팍스 로마나’라고 불리는 고대 로마의 최전성기를 이끈 오현제 중 한 명이며, 스토아학파의 대표적인 철학자이자 <명상록>의 저자로도 유명한 인물이다.


마르쿠스는 어린 시절부터 정직하기로 유명했고, 학업 성취도 뛰어났다. 선대 황제인 하드리아누스는 이런 마르쿠스의 잠재력을 알아본 사람 중 한 명이었다. 두 사람은 함께 사냥 다니기를 즐겼으며, 황제는 마르쿠스에게 아주 진실한 사람이라는 의미를 가진 베리시무스(verissimus)라는 별명을 붙여주기도 했다. 나이와 지위를 뛰어넘은 우정을 쌓아가던 두 사람. 하드리아누스는 아들이 없어 후계자 선정에 골머리를 앓던 중 마르쿠스를 떠올리게 된다. 그는 마르쿠스가 17살이 되던 해에 마침내 생각을 실행에 옮긴다. 마르쿠스를 황제로 만들기로 결심한 것이다.


때는 138년 2월, 하드리아누스는 계획을 실행하기 일들을 차근차근 진행해 나가기 시작했다. 마르쿠스를 양자로 들이는 조건으로 거의 동년배나 다름 없었던 안토니누스 피우스를 자신의 후임자로 지정하였으며, 마르쿠스에게는 황실에서 받을 수 있는 최상의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한 거다. 마르쿠스의 지위도 빠르게 높아졌다. 19살에는 로마에서 가장 높은 공직인 집정관에 올랐으며, 24살이 되던 해에는 집정관에 재선출된 것이다. 그리고 40살이 되던 해인 161년, 드디어 황제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하지만 마르쿠스가 이 결정을 무턱대고 반긴 것은 아니다. 황실에 공식 입양되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그는 주변의 예상과 달리 매우 슬퍼했다. 남들 같으면 양손 들고 반길 행운이 자신에게 벌어진 건데 도대체 왜 그는 이런 반응을 보였던 걸까? 누군가 마르쿠스에게 그 이유를 묻자, 그는 지금까지 황제들이 저지른 악행을 줄줄이 읊었다고 한다. 마르쿠스는 어린 시절부터 그저 권력을 원한 것이 아닌, 진정 황제의 자리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거다.


황제 행세를 경계한 황제

우여곡절 끝에 황제가 된 마르쿠스에게는 끊임없이 고난이 닥쳤다. 우선 재임 초기인 165년부터 180년까지 약 15년동안 안토니우스 역병이 돌았다. 극동에서 발생한 이 전염병은 국경을 넘어 전 세계에 영향을 미쳤다. 물론 로마도 이를 피해갈 수는 없었다. 하루에 2000명 넘는 사망자가 발생하기도 했으며, 누적 사망자는 최소 500만 명 이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국경 바깥 이민족들의 침입, 외곽 지역의 반란도 이어졌다. 마치 마르쿠스의 자질과 인내심을 시험이라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마르쿠스는 굴하지 않았다. 역병이 창궐한 도시에 남아 시민들을 안심시켰으며, 전쟁이 벌어지면 늘 앞장서서 전선으로 향했다. 전쟁과 전염병으로 국고가 바닥나자 황실 소유의 장식품을 팔아 이를 충당했다. 시민들을 상대로 증세를 하거나 주변 식민지로부터 돈을 더 걷는 쉬운 길을 포기한 거다. 그는 스스로를 향해 이런 다짐의 글을 적었다.


황제 행세를 하려고 하지 말고, 황제 노릇에 물들지 않도록 조심하라. 권력에 물들면 폭군이 되기 쉽다. 그러니 늘 소박하고, 선하며, 순수하고, 진지하며, 단호하고, 정의를 수호하고, 신을 경외하고, 친절하고 애정이 넘치는 자세로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과감하게 행하라. 철학이 추구하는 이상적인 사람으로 남기 위해 애써라.

이런 노력에도 고난은 쉽게 끝나지 않았다. 가장 신뢰했던 친구인 아비디우스 카시우스가 마르쿠스가 세상을 떠났다는 가짜 뉴스에 속아 반란을 일으켰던 거다. 마르쿠스는 이 소식을 듣고 그 즉시 동방의 속주로 향했다. 그의 목적은 반란을 진압하고 그 우두머리를 처형하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와 친구로 남음으로써 신뢰를 깨뜨린 상대와도 함께 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자 했을 뿐이다.


하지만 마르쿠스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반란군은 크게 흔들렸고, 결국 카시우스는 그의 부하에게 살해당하고 만다. 슬픔에 잠긴 마르쿠스는 남은 반란군을 관용으로 대했다. 머리가 잘린 카시우스의 시신 보기를 거부한 채 그를 묻어주라고 명했으며, 카시우스의 쿠데타를 도운 몇몇 원로원 의원들도 너그럽게 처분했다. 쿠데타 과정에서 카시우스가 주고 받은 모든 서한을 불태웠으며, 반란자들에 대한 과도한 유혈 보복도 금지했다.


후대 역사학자인 헤로디아누스는 마르쿠스를 이렇게 평가했다. ‘철학 이론에 관한 지식이 아닌, 흠 없는 성품과 온건한 삶의 방식으로 철학의 가르침을 증명한 유일한 황제’라고 말이다.


너 자신으로 돌아가라

그럼 그는 대체 어떤 인생관과 리더십을 바탕으로 사고했을까? 아마도 그의 사상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이렇게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바로 ‘너 자신이 되어라’라고 말이다. 그는 수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자기자신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끔찍한 전염병 속에서도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배신을 당했을 때에도 격정에 사로잡히지 않았다. 아내와 여러 명의 자식을 잃는 비극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았으며, 늘 선한 사람이 되어야 함을 가슴 깊이 되새겼다. 이렇게 말이다.


외부 환경으로 인해 불안해지고 혼란스러워진다면, 신속하게 너 자신으로 돌아가라. 불안과 혼란에 필요 이상으로 노출되지 말라. 끊임없이 너 자신으로 돌아간다면 네가 처한 환경을 더 잘 다스리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는 이런 삶을 살아가기 위해 밤낮 없이 수양하고 성찰했다. 그는 자신의 생각과 경험에 더해, 선대 철학자들의 이야기를 끊임없이 적어 내려갔다. 크리시포스의 명언을 적었으며, 제논의 글을 따라 썼고, 에픽테토스의 수양법과 아리스토파네스의 시를 필사했다. 더불어 자신이 사색한 과정과 그 결과를 적었으며, 가족에게서 배운 예의와 겸손함을 기록했고, 좋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게 해준 신을 찬양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네 마음을 즐겁고 기쁘게 하고자 한다면, 함께 어울리는 사람들의 좋은 점을 떠올려보라. 예를 들면 이 사람은 활력이 넘치고, 저 사람은 겸손하며, 또 한 사람은 너그럽고, 또 다른 사람은 다른 어떤 좋은 점이 있는지 생각해보라.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성품 속에서 다양한 미덕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이런 점을 생각할 때처럼 즐겁고 기쁜 순간은 없다. 그러니 사람들의 미덕을 늘 머릿속에 간직해두라.

이런 깨달음과 감사함이 그저 생각에 머물러서도 안 된다. 마르쿠스는 그 생각을 행동으로 바꾸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 평생 황제답지 않은 소박한 삶을 유지했으며, 황제라는 이름에 부끄럽지 않게 추위에 덜덜 떨면서도 항상 최전선에 나갔다. 황제의 금고를 열어 채무자들의 빚을 탐감해 주었으며, 거리로 나와 전장에서 돌아온 황제를 반기는 시민들에게 감사의 선물을 잊지 않았다.


이런 기준은 타인을 대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의 기준에 맞춰 속단하거나 불가능한 일을 기대하지 않았다. 개개인의 강점을 살려주기 위해 노력했으며, 약점을 찾아 품어주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자신의 말에 동의하지 않는 것을 잘못으로 여기지 않았으며, 필요하다면 끊임없는 토론과 논의를 통해 최대한의 의견 합치를 이끌어냈다.


물론 마르쿠스도 매번 옳은 결정만을 했던 것은 아니다. 기독교인을 박해했으며, 노예 제도 폐지의 필요성을 고민하지 않았다. 제국의 유지와 번영을 핑계로 수많은 전쟁을 일으켰으며, 능력과 인성이 부족한 아들에게 왕위를 계승했다. 참고로 마르쿠스의 뒤를 이어 황제가 된 그의 아들 콤모두스는 네로 황제와 더불어 로마의 암흑기를 대표하는 인물로 손꼽힌다. 로마 역사상 가장 뛰어난 황제로 손꼽히는 그조차도 시대의 한계, 인간 본연의 한계를 뛰어넘지는 못했던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자신의 기준과 잣대를 가지고 살아가기 위해 노력했다는 사실, 백성들을 위해 이전 세대의 누구보다도 많은 희생을 감수했던 인물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또한 그 힘이 끊임없이 ‘나’로 돌아가기 위해 노력한 마르쿠스 자신에게 있다는 사실도 부정할 수 없을테고 말이다.


다시, 너 자신으로 돌아가라

그럼 처음의 질문으로 되돌아가보자. 우리는 대체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걸까? 삶에는 나를 ‘나’로 살지 못하게 만드는 일 투성이다. 우선 대중매체와 SNS에는 잘 먹고, 잘 살고, 행복하기만 한 사람 투성이다. 굳이 똑같은 표현, 똑같은 내용이 아니더라도 그곳에는 ‘이렇게 살면 성공한다’, ‘이런 것도 해야 너도 좀 행복해질 거야’, ‘나처럼 살아야 돼’ 같은 메시지들이 넘쳐난다.


반대로 주변 사람들은 걱정과 염려를 핑계 삼아 우리를 옥죈다. “내가 해봐서 아는데”, “아니, 남들은 그렇게 안 한다니까?”, “그게 얼마나 힘든지 너는 몰라”라며 말이다. 공부 잘 해서 좋은 대학 가고, 좋은 학점 받아서 대기업 들어가는 것. 남들보다 늦지 않게 예쁘고 잘생긴 배우자 만나서 예쁜 아기 낳고 오순도순 사는 것. 내가 원하는 삶, 내가 가고 싶은 방향은 중요하지 않다. 그런 삶이 그들이 말하는 ‘행복한 삶’이자 ‘표준의 삶’이기 때문이다.


마르쿠스는 갈팡질팡하는 우리를 보며 아마도 이렇게 말할 것 같다. “다시 너 자신이 되어라”라고 말이다. 지금 만약 흔들리고 있다면, 잠시 외부의 자극과 평가, 비교에서 벗어나 오롯이 나에게 집중해보자. ‘나라면’ 이 순간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나라면’ 어떤 가치를 더 중요하게 여길지 말이다. 의외로 답은 쉽게 내려질지도 모른다. 그 답은 다른 누구의 결정도 아닌, 나를 위한 ‘나의 답’일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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