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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준형 Nov 10. 2022

하이데거, 《존재와 시간》으로 인간의 실존을 조망하다

위대한 철학 고전 30권을 1권으로 읽는 책

<위대한 철학 고전 30권을 1권으로 읽는 책>에 수록한 원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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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데거의 대표작인 《존재와 시간》은 1927년에 발표되었지만, 집필은 그보다 4년 앞선 1923년에 시작되었다. 이는 이 책이 제1차 세계대전 직후에 벌어진 사상계의 격동을 배경으로 탄생된 작품임을 알려주는 사실이다. 이 시기에 벌어진 전쟁은 수많은 지식인들의 혼란과 좌절을 불러일으켰다. 끝없는 진보와 발전을 이끌 것이라고 기대한 인간의 ‘이성’이 수없이 많은 사람을 고통과 죽음으로 몰아넣은 잔혹함과 퇴보의 상징으로 변해버렸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오랜 기간 철학계의 주류를 형성한 신칸트학파가 몰락하였으며, 이를 대신해 인간이라는 존재를 적나라하게 응시하고자 한 생철학과 현상학이 각광받기 시작했다. 니체와 키르케고르의 사상이 반향을 불러일으켰으며, 변증법 신학과 현대 문학의 새로운 동향이 시작되기도 하였다.


하이데거는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인간 존재의 ‘실존적’ 모습을 조망하고자 이 작품을 저술했다. 이 책은 그가 마르부르크 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하던 1927년 독일의 철학자 에드문트 후설이 감수한 《철학 및 현상학 탐구 연보》 제8권을 통해 처음으로 발표되었으며, 얼마 뒤에는 단행본의 형태로 출판되게 되었다. 《존재와 시간》은 하이데거 철학의 전반부를 대표하는 저술로 손꼽히며, 일반적인 철학 저술들과는 달리 출간 당시부터 대중의 수많은 관심을 불러일으킨 것 또한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의 제6판까지는 ‘전편’이라는 표시를 넣어 ‘후편’이 이어질 것을 암시하였으나, 1953년에 발간된 제7판부터는 이 표시가 삭제되어 사실상 미완성인 채 완결된 작품으로 남았다. 하이데거는 애초 《존재와 시간》을 2부로 나누어 각각 세 편씩 총 여섯 편의 논문을 수록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하이데거가 최종적으로 발표한 책에는 제1부 1편에 해당하는 ‘현존재에 대한 준비적인 기초 분석’과 제1부 2편에 해당하는 ‘현존재와 시간성’ 부분만이 쓰여 있을 뿐이다. 당시 마르부르크 대학교의 철학부 학장은 니콜라이 하르트만 교수의 후계자로 하이데거를 추천하기 위해 그에게 미비한 논문이나마 출간할 것을 권유하였으나, 하이데거는 이를 거부하고 1부 3편마저 삭제했다. 해당 편의 주제인 ‘시간과 존재’에 적합한 언어를 찾지 못했다는 것이 당시 그가 내세운 이유였다. 이후 제1부 3편에 해당하는 ‘시간과 존재’는 하이데거의 다른 작품인 《사유의 사태》에 수록되어 발표되었고, 2부의 내용은 《칸트와 형이상학의 문제》 같은 하이데거의 여러 저작에서 그 개념을 살펴볼 수 있다.


죽음에서 피어나는 ‘본래적 삶’

《존재와 시간》은 ‘존재의 의미에 대한 물음’을 고찰하기 위한 ‘존재론적 야심’에서 기획된 저술이다. 도대체 존재론이란 무엇일까? 이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먼저 ‘존재자’와 ‘존재’라는 단어의 의미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선 ‘존재자’란 그저 존재하고 있는 것을 말한다. 이 설명에 따르면 당신이 지금 읽고 있는 이 책도, 이 책을 읽을 수 있도록 빛을 내주는 형광등도, 창문 밖에 보이는 저 나무도 모두 ‘존재자’라고 할 수 있다. 반면 ‘존재’란 각각의 존재자가 가진 고유한 성격을 일컫는 말이다. 존재론은 이중 ‘존재’에 집중하는 학문이다. 다시 말해, 존재자가 ‘존재한다’는 것의 의미를 근본적으로 되묻고, 이를 통해 인간과 세계의 전체적 구조를 다시금 고찰하려는 철학적 시도를 우리는 존재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떠한 존재자가 스스로 ‘존재’ 의미를 묻고 이해할 수 있는가? 하이데거는 지구상의 존재자 중 오직 ‘인간’만이 스스로의 존재를 묻고 이해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스스로의 존재 이유와 삶의 목적 등을 고민하며, 이를 통해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거나 진정한 자신을 확인해 나가려 노력하기 때문이다. 하이데거는 이처럼 자기 자신을 살필 수 있는 존재자를 ‘현존재(Da-Sein)’라 일컬으며, ‘인간은 스스로 자기 자신의 존재를 떠맡는다’고 강조한다.


물론 인간이 모두 자신의 존재를 물으며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대부분 인간은 그러한 질문 없는 ‘비본래적 삶’을 산다. 비본래적 삶이란 타인 또는 사회가 시키는 대로 살아가는 삶을 말한다. 남들이 선망하는 좋은 학벌과 직장만 갈구하는 삶, 남들이 정해놓은 삶의 궤적을 따라 의심하지 않고 사는 삶 따위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저 ‘남들이 하라는 대로’, ‘그저 주어진 대로’ 살아가며, 하루하루 무사한 것에만 안도하거나 남을 따라 행동 또는 사고하는 경우도 많다.


이와 더불어 하이데거는 우리가 무수히 많은 존재와 관계하며 살아간다고 이야기한다. 부모님의 보살핌을 받기도 하고, 친구와 연인을 만나기도 하며, 스승을 만나 가르침을 받기도 한다. 하이데거는 이처럼 수많은 존재와 관계 맺으며 살아가는 인간을 ‘세계 안의 존재’라고 불렀다. 자신을 둘러싼 여러 존재와 부대끼며 함께 일하고, 웃고, 행복해하며, 슬퍼하는 삶. 그것이 바로 하이데거가 말하는 ‘세계 안의 존재’에 담긴 의미이다.


물론 이러한 ‘관계’ 속에서도 비본래적인 삶의 태도를 찾아볼 수 있다. 승진이나 계약, 합격 등 자신의 목적에 도움이 되는 경우만을 가려서 관계 맺는 ‘도구적 관계 맺음’이 대표적인 예이다. 이런 관계는 종이에 쓰기 위한 펜이나 못을 박기 위한 망치 같은 도구를 사용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오로지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용도로만 관계를 맺고, 활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굳이 하이데거의 설명이 아니더라도, ‘비본래적’이라는 표현 외에는 달리 설명할 길 없는 관계에 불과하다.


하이데거는 우리가 이러한 삶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역설한다. 이는 비본래적 삶이 아닌 ‘본래적 삶’을 살고자 노력해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러한 삶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물론 이는 적당한 결심이나 노력으로 가능한 범주의 일은 아니다. 세상의 온갖 유혹, 수시로 밀려드는 불안과 공포를 뿌리친 채 제 주관대로의 삶을 사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하이데거는 아주 극단적인 상황을 제시한다. 바로 ‘죽음’과 직시해야 한다고 말한 것이다. 죽음은 누구도 피할 수 없다. 누구나 그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타인의 죽음은 외면하거나 막연하게 받아들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그 죽음이 자신에게 다가오면 상황이 달라진다. 누구에게도 기대지 못한 채 홀로 죽음과 마주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이데거는 이처럼 자신에게 주어진 결말인 죽음을 직시할 줄 아는 인간을 ‘고독자’라고 부른다. 고독자는 스스로를 되돌아본다. 그리고 자신이 추구하고자 하는 삶의 가치와 방향을 확인하게 된다. 죽음을 마주함으로써 삶의 종말이 아닌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계기를 얻게 되는 것이다.


하이데거는 이처럼 죽음을 직시한 이들은 ‘양심의 소리’를 듣게 된다고 말한다. 여기서 양심의 소리란 사회가 제시하고 강요하는 도덕 법칙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도덕 법칙에 억지로 자신의 삶을 일치시키려는 사람은 오히려 일상에 매몰된 삶을 살게 될 가능성이 없다. 그보다는 본래의 자기를 일깨워주는, 그리하여 본래적 삶을 살게 해주는 소리가 바로 ‘양심의 소리’라고 할 수 있다. 이 소리에 귀 기울일 때, 인간은 비로소 내적인 변혁을 이루게 된다. 


끊임없이 피어오르는 불안, 자신의 의지를 벗어난 현실이 역설적으로 자기 자신의 존재와 자유의 의미를 깨닫게 만드는 계기가 되는 것. 그리고 이를 통해 진정한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 그것이 바로 현존재의 ‘본래적 삶’이자 하이데거가 촉구한 진정한 삶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본래적 삶을 외친 철학자의 비본래적 삶

하이데거와 그의 대표작 《존재와 시간》은 20세기 초중반 지성계에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받는다. 장 폴 사르트르의 실존주의와 한스 게오르크 가다머의 철학적 해석학, 장 프랑수아 리오타르의 포스트모더니즘, 자크 데리다와 미셸 푸코, 질 들뢰즈의 후기 구조주의, 헤르베르트 마르쿠제와 위르겐 하버마스의 비판 이론, 한나 아렌트의 정치철학 등 수많은 철학적 조류가 하이데거 철학의 영향을 받아 탄생했다. 


하지만 《존재와 시간》이 보여준 영향력은 저자인 하이데거의 생전 행적으로 인해 얼마간은 빛이 바랜 것이 사실이다. 바로 그가 당시 독일을 장악한 ‘나치’와 연관된 행적을 보였기 때문이다. 특히 그가 프라이부르크 대학의 총장으로 취임한 1933년 5월의 연설은 이후에도 많은 논란을 일으켰다. 당시는 히틀러가 이끄는 국가사회주의당, 일명 나치가 3월 총선거에서 288석을 얻으며 정권을 완전히 장악한 시기였다. 그는 자신의 취임식에서 ‘독일 대학의 자기주장’이라는 주제로 연설했다. 연설의 주 내용은 학생들이 지식 추구뿐만 아니라 노동과 군사 훈련에 적극적으로 동참해야 한다는 이른바 ‘3대 봉사’에 관한 것이었다.


누군가는 다음과 같은 속사정이 있다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가 당시 나치에 협조해 총장이 된 것은 나치에 의해 파면당한 전임 총장 묄렌도르프의 부탁 때문이었으며, 총장에 취임한 뒤부터는 나치의 의도와는 정반대의 행보를 보였다는 것이다. 실제로 총장으로 재직하는 동안 하이데거는 대학 내 반유대주의 현수막의 설치를 금지하고 도서관 내 유대인 저자들의 장서를 불태우려는 시도를 막기도 했다. 사사건건 나치 당국과 부딪히던 그는 결국 약 10개월 만에 총장직에서 물러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나치즘에 동조했거나, 최소한 방관했다는 사실만큼은 부정할 수 없어 보인다. 나치 당국에 동료 교수를 반체제 인사로 고발했으며, 총장에 취임한 해의 또 다른 연설에서 “오직 히틀러 총통만이 독일의 진정한 현실이자 법”이라고 발언했기 때문이다. 논란은 현재 진행형이다. 하이데거의 일기를 담은 2014년 출간작 《검은 노트》에 나치즘과 반유대주의, 심지어 대량 학살을 암시하는 표현 등이 담겨 있던 탓이다.


누구보다 본래적인 삶을 추구한, 그러나 20세기의 여느 누구와도 다르지 않은 ‘비본래적 삶’을 살아간 인물이 어쩌면 《존재와 시간》의 저자, 하이데거였을지도 모른다.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1889~1976)

독일의 철학자. 1923년부터 마르부르크 대학에서 철학을 강의했고, 1928년에는 자신이 공부했던 프라이부르크 대학의 정교수가 되었다. 정권을 장악한 나치가 프라이부르크 대학 총장을 해임시킨 후 후임 총장으로 취임했는데, 이 시기를 전후로 나치와 접촉하며 생애 최대의 오점을 남긴다. 사망 전까지 삶의 대부분을 프라이부르크 지역에 머물렀으며, 이곳에서 수많은 강연과 저작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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