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철학 고전 30권을 1권으로 읽는 책
<위대한 철학 고전 30권을 1권으로 읽는 책>에 수록한 원고입니다.
책 보러 가기
- YES24 : https://bit.ly/3G49jdV
- 교보문고 : https://bit.ly/3fPIhwd
- 알라딘 : https://bit.ly/3DTmmfs
1914년에 발발한 제1차세계대전은 수천만 명이 죽거나 부상당한 인류 최악의 전쟁이었다. 베르됭 전투에서 숨진 프랑스 소위 알프레드 주베르는 다음과 같이 자신이 경험한 전쟁을 기록했다.
지옥도 이렇게 끔찍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인간은 미쳤다!
그럼 대체 이 지옥 같은 전쟁은 왜 일어났을까? 사실 제1차세계대전은 어느 정도 예견된 사건이었다. 전쟁이 일어나기 전 오랫동안 이어진 제국주의 정책이 한계에 다다랐기 때문이다. 영국, 프랑스, 독일, 포르투갈, 네덜란드, 스페인 같은 유럽의 여러 나라들이 공격적으로 식민지를 넓혀나갔고, 이로 인해 벌어진 쟁탈전이 임계점을 넘어 발생한 사건이 바로 제1차세계대전이었다는 이야기이다.
전쟁이 끝난 뒤, 유럽은 이런 비극이 재발되지 않도록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그 노력은 얼마 뒤 모두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말았다. 이번에는 패전국인 독일에게 부과된, 가혹하다면 가혹한 전쟁 책임이 문제였다. 독일은 2만 5천 제곱마일의 영토를 빼앗겼고, 병력을 10만 명 이하로 줄여야 했으며, 상금으로 330억 달러를 지불해야 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내부적으로는 인플레이션 문제가 심각하게 야기되었다. 이런 상황은 독일인들의 강한 불만을 불러일으켰고, 결국 1933년 강력한 독일을 표방한 나치당을 지지할 빌미가 되었다. 나치당은 그해 3월 일당 독재 체제를 수립하고, 10월에는 국제 연맹을 탈퇴했다. 그리고 1939년, 다시 한 번 전 세계를 화염 속으로 몰아넣었다.
두 번의 끔찍한 전쟁은 전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을 패닉 상태로 몰아넣었다. 수 세기 동안 인류를 번영으로 이끌었고, 앞으로도 끝없이 그 번영을 이어지게 해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계몽주의의 정신이 하루아침에 무너졌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1세대 프랑크푸르트학파로 분류되는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의 공동 저작 《계몽의 변증법》에 압축적으로 표현되었다. 이 책을 통해 두 사람은 ‘왜 인류는 진정한 인간적 상태에 들어서지 못한 채 새로운 종류의 야만상태에 빠졌는지’ 살펴나가고자 했다.
전쟁 이전의 근대 유럽인들은 많은 면에서 자신감에 가득 차 있었다. 자신들이 신분제로 대표되는 제도적 구속으로부터 인간을 해방하고, 자연을 인간의 필요에 맞게 바꾸거나 이용할 수 있는 기술적 능력을 확보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공동체에 가려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했던 개인의 가치를 발견했으며, 인권과 자유, 평등 같은 언어를 발명해 냈다고 자화자찬했다. 이들에게 전근대란 부정적인 것 혹은 사라져야 할 것에 불과했다.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는 ‘이성’과 ‘합리성’이라는 새로운 원리가 있었다. 근대인들은 이러한 두 가지 원리로 자연과 인간, 나아가 세계 전체를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이러한 믿음을 주도한 사람들을 우리는 ‘계몽주의 사상가’라고 부른다. 이들은 모든 인간이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유의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교육을 통해 그 잠재력을 꽃피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두 차례의 전쟁을 경험한 막스 호르크하이머와 테오도어 아도르노는 계몽과 문명화의 과정이 더 이상 인간의 해방을 실현하는 밑거름이 되지 못한다고 평가했다. 두 사람이 보기에 근대인들이 믿어 온 ‘역사의 필연적 발전’은 더 이상 담보될 수 없는 것이었다. 물론 다가오는 미래 역시 밝고 희망찬 것이 아닌, 암울하고 의심스러운 것에 가까워졌고 말이다. 즉, 그동안 모든 사람들이 인간 문명 발전과 진보의 근본 원리라고 여겨왔던 ‘이성’과 ‘합리성’에 대한 믿음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하버마스는 이런 상황 속에서 프랑크푸르트 암마인 사회연구소에 들어가 자신의 교수 자격 논문을 작성했다. 그의 논문 지도는 《계몽의 변증법》의 공동 저자인 호르크하이머가 담당했는데, 그는 제자인 하버마스의 논문이 수정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하버마스가 자신들이 《계몽의 변증법》을 통해 설명한 많은 부분을 부정한 채 자신의 이론을 펼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버마스는 스승의 수정 제안을 거절했고, 결국 마르부르크 대학으로 자리를 옮겨 자신의 논문을 완성했다. 1961년 이렇게 통과된 논문이 바로 우리가 지금부터 살펴볼 하버마스의 대표작 《공론장의 구조변동》이다.
다시 ‘이성’과 ‘합리성’에 주목한 책 《공론장의 구조변동》
당초 교수 자격 청구를 위한 논문으로 쓰인 이 책은 유럽의 근대가 형성되는 시기에 이성과 합리성이라는 두 원리가 민주주의 가치의 실현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는지 살펴보고 있다. 이 책은 18세기의 서유럽 국가, 특히 영국, 프랑스, 독일의 역사적 사례를 바탕으로 그 내용을 깊이 있게 논증한다.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은 ‘공론장(public sphere)’이다. 공론장이란 말 그대로 공적인 의견으로서 여론이 형성되는 장소를 뜻한다. 하버마스는 근대 이후의 공론장을 부르주아 공론장과 인민적 공론장, 규율적 공론장이라는 세 가지 유형으로 분류했다. 하버마스는 이중 자신은 부르주아 공론장에 집중하여 사회적 의사소통의 역사적 유형을 분석하겠다고 선언한다. 왜냐하면 그가 보기에 나머지 두 공론장은 부르주아 공론장의 변종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하버마스에 따르면 부르주아 공론장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이성적 사유 능력을 지니고 있으며, 이를 토대로 자유롭고 평등한 조건 속에서 공개성의 원칙에 따라 자신의 의견을 말하고 토론한다. 이는 교양 없는 민중이 이끄는 인민적 공론장, 참여자 사이에 실제적인 토론이나 논쟁이 진행되지 못하는 규율적 공론장의 모습과는 다른 모습이다. 부르주아 공론장에는 미리 정해진 진리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곳에서 진리란 합리적인 토론의 결과로서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부르주아 공론장에서는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문제들이 합리적 사유와 의심의 대상이 된다. 그리고 그러한 과정을 통과한 것만 그곳에서 진리의 가능성을 얻게 된다. 정치권력도 이를 피해갈 수 없다. 18세기 서유럽 공론장의 구성원들은 자신들을 지배하던 군주 권력의 존재 이유와 정당성을 의심했다. 그리고 그 결과로 권력의 정당성은 신화화된 믿음이 아닌, 이성적이며 합리적인 비판을 거침으로써 확보된다는 민주주의의 원리가 구축되게 된다. 우리는 이처럼 공론장 기반의 이성과 합리성을 토대로 만들어진 의견을 ‘여론’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부르주아 공론장은 어떻게 생겨나게 되었을까? 하버마스는 17세기 무렵부터 유럽의 대도시에 생겨나기 시작한 살롱과 커피하우스에 주목한다. 이전 시대까지만 하더라도 유럽의 문화는 다분히 ‘전시적’이었다. 거대한 건축물과 장대한 행렬 등을 통해 지배 계층의 위대한 모습을 보여주고자 했던 거다. 의견 표명도 의회 같은 공적 공간을 통해 이루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살롱과 커피하우스 같은 공간이 생겨나며 이야기가 달라졌다. 다시 말해, 국가의 통제를 벗어난 다양한 ‘사적 공론장’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사람들은 이곳에 모여 자신의 의견을 표명하고 서로의 입장을 공유하게 되었다.
아울러 이러한 변화에는 신문과 잡지 등 미디어의 역할도 빼놓을 수 없다. <태틀러>, <스펙테이터>, <가디언> 등 여러 인쇄 매체가 발행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를 통해 살롱과 커피하우스의 일원들은 공간적, 지리적 한계를 초월해 서로의 정보를 공유하고, 각자의 의견을 주고받을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게 되었다.
공론장이 점차 늘어나고 발달하게 되면서 사람들은 공통의 이해관계를 발견하게 된다. 또한 점차 기존의 문화와 권력에 의문을 제시하기 시작했다. 하버마스는 이런 성숙한 공론장 문화가 프랑스 혁명을 비롯한 각종 시민혁명이 일어나게 된 도화선이 되었다고 평가한다. 공론장의 발전은 이후에도 민주사회 발전과 시민 계급의 권리 증진에 큰 영향을 미쳤다. 민주적으로 정치권력을 선출할 수 있게 되었고, 삼권이 분립되었으며, 시민의 다양한 기본권을 증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는 19세기에 접어들며 점차 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시작은 1873년에 시작된 대불황이었다. 이로 인해 국가 차원의 개입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법적, 제도적 장치들이 강화되기 시작했다. 사적 경제 과정에 대한 불간섭, 즉 자유방임의 원칙은 폐기되었고, 다양한 법과 제도, 정책이 사적 영역에 해당하는 경제에 깊숙이 개입하게 되었다. 사적 부문과 공권력 영역의 새로운 관계가 정립된 것이다.
미디어도 급격히 변화했다. 거대 권력의 손에 들어간 언론은 권력의 확성기로 자신의 역할을 바꾸어 버렸으며, 공론장은 건전한 토론이 아닌 가십거리로 채워져 버렸다. 개인들 간의 사교적인 토론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형식화된 집단적 토론이 들어섰다. 대중매체가 관여하는 연단 위의 전문적인 대화, 공개 토론 등은 더 이상 토론이라고 이야기할 수 없었다. 그것은 그저 특정한 경제적 목적을 위해 연출되고 관리되는 ‘상품’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하버마스는 이러한 문제의 해결책으로 의사소통 행위 이론을 제시한다. 이성적 주체들이 마주해 합리적으로 소통하고 차이와 갈등을 해소해 나가며, 이를 통해 공동의 의견을 창출해 나가야만 서구 근대가 초래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소통하는 이성, 하버마스가 제시하는 이 대안이야말로 어쩌면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수많은 정치적, 사회적 이슈를 해결할 유일한 방법인지도 모른다.
급변하는 시대, 우리에겐 어떤 ‘공론장’이 필요한가?
《공론장의 구조변동》은 하버마스를 철학과 사회과학계에 성공적으로 데뷔시킨 작품이다. 저자인 하버마스는 이 책을 출간한 뒤에도 유의미한 평가를 받는 작품을 꾸준히 내놓으며 현존하는 최고의 사상가라는 지위를 획득할 수 있었다.
첫 발간 후 약 60년이 지난 《공론장의 구조변동》이 여전히 높은 평가를 받는 이유는 이 책을 통해 하버마스가 교수 데뷔 후 이어간 수많은 논의와 사유의 전조를 살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며 우리는 그가 왜 《의사소통적 행위 이론》에서 의사소통의 합리성을 주장했는지, 《사실과 타당성》에 제시된 의사소통적 자유의 법적 제도화라는 개념이 어떻게 도출될 수 있었는지 등을 짐작할 수 있게 된다.
물론 《공론장의 구조변동》 속에 담긴 각종 개념과 해결책이 완벽하다거나 초시대적이라고 볼 수는 없다. 하버마스 역시 이를 일부 인정하고 있다. 1990년 출간된 신판 서문을 통해 자신의 공론장 이론에 제기된 몇 가지 이론적 약점들을 스스로 제시한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이 책이 수많은 약점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공론장 이론을 통해 자신이 의도한 전체적인 지향점 자체는 여전히 유효하다고 주장한다.
그는 이 책을 비롯한 여러 작품을 통해 공론장의 건강한 작동을 통해 형성된 공적 의견이 사회의 기준이 될 때, 민주주의가 보다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설명해왔다. 그러나 현대로 올수록 사람들의 이해와 관심사는 더욱 다양해졌고, 사회 구성원의 일반 원칙을 추출해 이를 여론의 기준으로 삼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워졌다. 즉, 공적 의견의 형성이라는 공론장의 대표적인 기능이 더 이상 작동하기 어려워졌다는 이야기이다. 하버마스는 이제 《공론장의 구조변동》의 초판이 출간되었을 당시 자신이 갖고 있었던 이론적 수단만 가지고선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인정한다.
하버마스의 후기 저작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고민의 과정이었다. 우리는 그 결실을 1981년 출간된 《의사소통적 행위 이론》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이 책에서 그는 사회의 영역을 ‘체제’와 ‘생활세계’로 구분해 설명한다. 여기서 ‘체제’란 자본주의 경제와 관료주의 행정으로 제도화된 영역을 말하며, ‘생활세계’는 일상인 사이의 의사소통을 통해 구성된 비형식적인 삶의 영역을 가리키는 말이다. 하버마스는 근대 이후 서구사회는 ‘체제’가 ‘생활세계’를 식민화하는 과정을 거치며 발달해 왔다고 분석하며, 공론장의 붕괴 또한 이로 인해 야기되었다고 설명한다.
그는 그 해결책으로 체제가 생활세계를 지배하는 현재의 상황을 역전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합리적 의사소통을 바탕으로 전개되는 생활세계의 원리를 통해 체제 내에서 이뤄지는 제도적 행위를 감시하고 견제해 나갈 수 있을 때 우리는 더 나은 세계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세상은 이전의 어느 시대보다 빠르게 변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시작된 팬데믹은 오프라인 영역의 급격한 축소와 온라인 세계로의 전환을 야기하고 있으며, 심화되는 갈등으로 인해 전보다 더 많은 국가와 지역에서 분쟁과 테러, 전쟁이 일어나고 있다. 세계 경제 또한 정신을 차리기 어려울 만큼 침체와 회복을 빠르게 반복하고 있으며, 얼마 전까지 우리가 옳다고 믿었던 많은 것들은 더 이상 옳은 것이 아니게 된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하버마스가 제시한 해결책은 분명 우리가 참고해야 할 지점들이 존재한다. 오늘날 우리는 어떤 체제 아래에 우리의 생활을 맡겨두고 있는가, 그리고 이 세계 속에서 우리는 어떤 공론장을 새로이 만들어가야 하는가?
위르겐 하버마스(Jurgen Habermas, 1929~)
독일의 철학자이자 비판적 사회이론가. 근 한 세기에 걸쳐 비판 이론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프랑크푸르트학파의 2세대 대표자이다. 1956년 프랑크푸르트 암마인 사회연구소에 들어가며 비판 이론에 입문했다. 1961년 교수 자격을 얻었으며, 1971년부터 마르크스 프랑크연구소의 소장으로 재임했다. 1996년에 프랑크푸르트 암마인 대학교로 복직하였고, 1996년에 정년퇴직하여 명예교수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