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필의 역사부터 블랙윙, 파버-카스텔 등 다양한 브랜드 이야기까지
16세기 초반 맹렬한 폭풍우가 치는 어느 밤이었습니다. 이날 폭풍으로 영국 보로데일의 들판 한 가운데에 있던 거대한 참나무가 뿌리째 뽑혀버리게 되었는데요. 모두가 안타까워하던 그때, 누군가 그 아래에 묻혀 있는 신비한 검은 물질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흑연’이었죠.
납과 비슷해 보인다고 해서 플룸바고, 검은 납 등의 이름이 붙은 이 물질은 초창기 근처에 사는 농부들에 의해 양을 표시하는 용도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내 다른 용도로도 쓰이기 시작했죠. 바로 연필의 역사가 시작된 겁니다.
초기의 연필은 흑연 조각에 끈을 둘둘 말아 사용하거나, 몸통에 심을 끼워 사용하는 방식이었다고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흑연이 손에 온통 묻기 때문이었죠. 하지만 역사는 이내 발전을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현대적인 의미의 연필이 탄생하게 된 것이죠.
하지만 처음부터 우리가 생각하는 연필의 모습이 탄생한 것은 아닙니다. 그저 흑연봉을 나무 몸통에 넣어 쓰기 시작한 정도였죠. 본격적인 역사는 1793년 프랑스와 영국의 전쟁이 시작된 직후부터 시작됩니다. 더이상 고품질의 영국산 연필을 구할 수 없었던 프랑스에서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한 것이죠.
프랑스의 지도부는 과학자이자 예술가였던 니콜라 자크 콩테에게 수입산 원자재를 쓰지 않는 연필을 만들라는 지시를 내립니다. 고민 끝에 그는 흑연과 점토를 섞어 막대를 만든 뒤 불에 굽는 처리법을 개발하게 되는데요. 지금도 연필을 만들 때 그 방식은 그대로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이후 연필의 역사는 꾸준하게 발전했습니다. 특히 뉘른베르크는 18세기 내내 세계 연필 생산의 중심지라는 타이틀을 얻기 위해 노력했는데요. 그 중심에 지금도 유명한 문구류 브랜드인 스테들러와 파버-카스텔이 있었습니다.
설립 연도로 따지면 2019년을 기준으로 스테들러는 184주년, 파버-카스텔은 259주년에 해당하는데요. 사실 당시 뉘른베르크의 엄격한 회사 설립 기준에 의해 스테들러가 더 짧은 역사를 가지게 된 것이지, 실제로는 75년 가량 더 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뭐, 250년이나 300년이나 오래되기는 그게 그거지만 말이죠.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연필은 H 혹은 B로 구분됩니다. H는 Hard의 약자이며, B는 Black의 약자이죠. 우리가 흔히 쓰는 HB가 보통 연필의 기준이고, H와 B사이에는 F가 존재합니다. 참고로 HB 연필은 점토 30%에 흑연 70%를 섞으면 나오는 진하기이죠.
가장 유명한 연필을 하나만 꼽자면 바로 이 블랙윙이 아닐까 싶습니다. 특히 이 블랙윙 602 시리즈는 수많은 애호가들을 거느리고 있습니다. 블랙윙은 1934년 에버하드 파버가 출시했는데요. 흑연에 왁스를 더하고 점토를 섞어 소위 종이 위에서 ‘활강하며 미끄러지는’ 것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죠. 덕분에 스타인백, 퀸시 존스,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척 존스 등 수많은 유명인들을 애호가로 만들 수 있었고요.
사실 제가 가지고 있는 블랙윙은 소위 말하는 ‘진짜’ 블랙윙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왜냐면 본래의 블랙윙 시리즈는 1998년을 끝으로 단종이 되어버렸고, 지금 출시되는 것은 캘리포니아 시더 프로덕츠 컴퍼니가 이를 기리기 위해 만든 팔로미노 플랙윙이라는 시리즈이기 때문이죠. 원조를 사용하던 사람들 중 일부는 이 시리즈에 불만을 나타내기도 했다는데요. 뭐.. 그건 생각하기 나름인 것 같습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연필은 까렌다쉬의 HB-COBS 시리즈입니다. 스위스의 너도밤나무로 만들어진 것이 특징인데요. 향을 맡아보면 은은한 커피향 같은 걸 느낄 수 있죠. 일반 연필들보다 조금 두꺼운 심을 사용해 잘 부러지지도 않고, 살짝 거친 질감을 좋아하는 저에게는 더더욱 안성맞춤입니다.
오늘날 연필은 세계 곳곳에서 생산됩니다. 일본에서도, 한국에서도 만나볼 수 있죠. 지우개가 달린 연필도 있고, 그렇지 않은 연필도 있습니다. 각자 취향에 맞는 연필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더욱 넓어진 것이죠. 여러분은 어떤 연필을 좋아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