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준형 Mar 17. 2020

리처드 로티 <철학에 대한 민주주의의 우선성> 읽기

철학 vs 민주주의


절대적이며, 근본적인 민주주의의 철학적 토대는 존재하는가?


위와 같은 물음에 대답하는 책, <철학에 대한 민주주의의 우선성>은 20세기 영미철학계의 대표주자였던 로티의 작품입니다. 그는 1970년대 중반부터 자신의 주요 연구분야였던 분석철학을 비판하고, 데카르트 이후 근대철학의 주류를 이뤄왔던 형이상학적 철학과 초월적 진리의 종말을 선언했습니다. 이후 그가 취한 입장은 반표상주의로 불리는데요. 이는 철학이 자연을 다루는 도구에 불과하다는 해석이라고 할 수 있죠. 플라톤으로부터 시작하는 로고스 중심의 주류철학, 즉 표상주의를 비판하고 철학이 자연 혹은 실재를 있는 그대로 비춰주는 거울이라는 입장을 거부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는 구체적으로 어떤 입장을 취했을까요? 그는 당대에 주류를 형성하던 철학적 사유를 검증하며 그 한계와 가능성을 확인했습니다.


우선 첫 번째는 계몽주의에 대한 확인입니다. 계몽주의란 ‘이성’의 힘을 토대로 현존질서를 타파하고, 사회를 개혁하며, 인류의 진보를 믿는 입장을 말합니다. 계몽주의자들은 인간의 ‘이성’을 토대로 사고합니다. 그리고 그 사고가 모든 인간에게 정당화될 수 있다면 그것은 진리에 가깝다고 해석하는데요. 하지만 로티는 이에 대해 20세기 들어 진리와 사실의 경계는 흐릿해졌으며, 인간 모두에게 공통적인 무언가와 종교, 신화, 전통이 대립할 수 있다는 가정은 폐기되었다고 말합니다. 다시 말해, 절대적인 ‘단 하나의 정답’, 몰역사적인 인간의 ‘권리’는 없다는 것이죠.


두 번째는 공동체주의에 대한 확인입니다. 공동체주의란 추상적 정의가 아닌 구체적 상황에 대한 이해를 통해 정의를 이해하려는 입장을 말합니다. 이는 다수의 행복을 우선시하는 공리주의, 개인의 자유와 자율을 최대한 존중하려는 자유주의와 달리, 정의에 관한 일정한 내용이 없고 상황에 따른 정의를 실현하는 것을 중요시한다는 점에서 상대주의 정의관에 해당하는데요. 공동체주의자들은 공동선을 지향하며, 도덕적·종교적 신념을 배제하고 정의를 논하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고 생각하죠. 이들은 실용주의적 탈주술화 세계에서는 도덕 공동체가 존재하기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즉, 실용주의가 계몽주의의 이성주의가 나아갈 불가피한 결과였을지언정, 도덕 공동체가 가능하게 할 만큼 강력한 철학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죠. 더불어 이들은 정치 제도가 인간 본성에 대한 어떤 학설을 전제하며, 그러한 학설은 계몽주의의 이성주의와 달리 자아의 본질적으로 역사적인 성격을 밝혀야 한다는 견해를 지니기도 하는데요. 여기에 대해 로티는 두 가지 물음을 던집니다.


우선 첫 번째 질문은 ‘자유 민주주의에 철학적 정당화가 필요한가’라는 것이며, 두 번째는 ‘공동체가 자아로 구성된다는 이들의 자아관이 자유 민주주의와 잘 어울리는가’라는 것이죠. 그리고 로티는 다음과 같이 대답합니다. 

하나, 자유 민주주의는 철학적 전제 없이도 유지될 수 있다.
둘, 이들의 공동체주의는 자유 민주주의와 잘 어울린다.


로티는 또다른 철학자인 존 롤스, 게오르크 헤겔, 존 듀이 등의 철학을 검증하며 자신의 입장을 재확인합니다. “실천적이고 정치적인 사안으로서, 그 어떤 일반적인 도덕관도 현대 민주주의 사회 내 공공의 정의관을 위한 기초를 마련하지 못한다. 정치적 정의관이 다양한 학설과 상충하는 학설들의 다원성은 물론이고 현존하는 민주주의 사회의 구성원들이 각기 옳다고 받아들이는, 선에 대한 통약 불가능한 생각들도 허용해야 한다”고 자신의 입장을 재확인하죠.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는 두 가지 대답을 내놓습니다. 우선 첫 번째는 ‘당신이 만들어내기를 희망하는 인간은 어떤 종류의 인간인가?’라는 물음에 대답하기를 거부하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이전 세대의 철학이 찾고자 한 ‘절대적인 것’ 혹은 ‘제 1원리’를 거부하라는 것이죠. 그리고 두 번째 결론은 철학적 진리는 민주주의 정치와 무관하다는 것입니다. 즉, 그러므로 학과 민주주의가 상충하는 상황에 맞닥뜨린다면, 민주주의가 철학에 우선한다는 것이죠.


자, 이제 여러분의 대답이 남았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떤가요, 민주주의는 철학에 우선하나요? 아니면 민주주의에 우선하는 절대적인 진리 혹은 철학이 존재할까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