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유치원 원전 읽기
자연과 의무로 여성들을 되돌리는 데 있어 이성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를 한 계몽된 국가가 시험하게 하라. 그들로 하여금 남성들처럼 교육과 정치의 유용성을 누리게 해, 그들이 보다 지혜로워지고 자유로워짐에 따라 더 좋게 개선되는지 지켜보게 하라. 여성들은 그 실험에서 잃을 것이 없다. 그들을 현재 상태보다 더 비참하게 만들 방법이 인간에게는 없기 때문이다.(<여성의 권리 옹호> 제12장 ‘국민교육’ 중)
18세기 영국의 작가이자 철학자, 여성권리 옹호자인 메리 울스턴크래프트는 1759년 런던 근교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직물 제조업자인 아버지와 아일랜드인인 어머니 사이에서 4남 3녀 중 둘째이자 장녀로 태어났는데요. 부친의 연이은 사업 실패로 인한 빈곤, 그리고 장남만을 편애하는 어머니가 만들어낸 정서적 불안정성 속에서 유년시절을 보내야 했죠.
당대 많은 여성들이 그랬던 것처럼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역시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 자라났습니다. 하지만 지적인 주변 사람들과의 지속적인 교류, 친지에게 빌린 수많은 서적의 탐독을 통해 스스로 지식의 지평을 넓혀갔는데요. 성인이 된 뒤 한동안 가정교사 자리를 전전하던 그는 1788년 출판업자 조지프 존슨의 후원 아래 전업 작가로서 활동을 시작하게 됩니다. 여행기와 번역서부터 소설, 비평문, 역사서, 동화책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분야에서 활동한 것이 작가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죠.
울스턴크래프트는 오늘날 흔히 초기 페미니즘을 대표하는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 이전에 영국의 급진파 정치사상가이기도 했는데요. 그는 국교회가 주도하던 당대의 영국 사회에서 정치적, 경제적, 교육적으로 차별 받던 비국교도 그룹에 속해 있었습니다. 비국교도는 타고난 부와 신분보다는 노력을 통해 획득된 가치를 중시하였으며, 귀족 계급과 대비되는 중간 계급의 의무와 도덕성을 강조했는데요. 울스턴크래프트는 이들의 사상에 발맞춰 군주제와 귀족제를 반대하고, 자유와 평등에 기초한 공화제 정부라는 이상을 지향했죠.
그렇다면 그의 여성권리 옹호사상은 어떤 환경에서 만들어진 걸까요? 울스턴크래프트가 살아간 17, 18세기 무렵의 유럽은 소위 ‘계몽주의 사상’의 시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전통과 신의 뜻을 근거 삼아 절대 권력을 행사하던 왕권 중심주의를 비판하는 동시에, 인간과 시민의 권리를 강조하며 동시대에 일어난 소위 시민혁명의 기반을 마련했는데요.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이러한 비판의 칼날을 남녀 평등 관점으로 확대하지 않았다는 데에 그 한계를 지니고 있었죠.
메리 울스턴크래프트는 이러한 계몽사상의 공백을 지적하고 변화를 꿈꾼 일군의 여성 사상가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특히 대표작인 <여성의 권리 옹호>는 그가 본격적인 저술활동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1791년 겨울에 쓴 저작인데요. 이 책은 모두 13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는 이 책을 통해 여성에 대한 당대의 편견을 면밀히 검토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편견이 생겨난 이유를 당대 작가들의 사유와 여성들의 일상을 바탕으로 확인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들을 제시하기도 했죠.
책의 도입부 격인 1장을 통해 문명이 인류의 도덕성 함양에 악영향을 미쳤다는 루소의 입장에 반박하는 울스턴크래프트는, 이성적 존재인 인간에게 평등이 보장되면 도덕적이고 행복한 사회가 실현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뒤이어 ‘순수하고 나약한 존재’로만 평가되는 여성에 대한 당대의 견해가 여성의 이성을 억눌러 남성의 권위에 복종시키기 위한 시도에 불과하다는 입장을 펼치기도 했죠.
남녀 불평등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 울스턴크래프트는 교육을 강조합니다. 당대 여성에게 덧씌워진 열등함, 부도덕함이라는 굴레가 사실은 유년기부터 여성들에게 주입된 사상에 불과하며, 이는 이성에 근거한 교육을 통해 충분히 극복 가능하다는 입장을 취했던 것이죠. 교육에 대한 강조와 더불어 여성의 직업활동 종사 및 참정권 보장, 성별 구분 없는 교육을 위한 남녀공학의 실시 등은 그가 꿈꾼 세상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성의 권리 옹호>는 지금으로부터 약 230여 년 전에 쓰여진 글이니 만큼 시대적인 한계 또한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특히 여성의 지위 개선을 위한 방안으로 세부적인 정책을 제시하기보다는 오로지 의식의 변화에만 초점을 맞췄다는 점, 성도덕이나 가족제도에 대한 관념이 당대의 전통적인 영국 중산층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 ‘남성답지 못한’과 같은 성에 대한 당대의 편견을 반영하는 표현이 책 곳곳에서 등장한다는 점 등이 많은 이들에게 지적되는 약점이죠.
하지만 당대에 만연한 남성 중심 구조를 타파하고, 여성이 한 사람의 인간으로 인정 받는 남녀 평등 사회를 향해 나아가고자 한 그의 사고만큼은 분명 온당한 평가를 받아야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게 바로 우리가 메리 울스턴크래프트를 여성주의의 어머니 혹은 시작으로 받아들이는 이유일테고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