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지 말고 엉엉 소리 내어 울어보자.
눈물이 글썽글썽한 아이의 눈. 그 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아파트도 잠겨있고, 집도 둥둥 떠다닌다. 아이의 눈에 비친 세상 모습일까? 아이의 눈에 비친 마음속 모습일까? 아이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있는데 아이의 입은 웃고 있다.
이게 뭐지? 호기심에 책장을 넘기면 수많은 눈물방울 속 모양이 조금 다른 눈물방울 하나가 보인다. 무엇이 이토록 아이를 속상하게 했을까? 어떤 일이 있어서 아이는 이렇게 슬퍼하고 있을까?
살다 보면 속상할 때가 종종 있다. 다른 사람이 나의 마음을 몰라줬을 때, 노력한 것에 비해 결과가 너무 엉망진창일 때, 사랑하는 사람이 내 곁을 떠났을 때, 아끼는 물건을 잃어버렸을 때, 하지도 않은 일로 혼나거나 욕을 먹을 때, 사정은 들어보지도 않고 무조건 비난과 질책만 받을 때......
그럴 때 어떤 마음이었을까? 그때 나는 어떻게 행동했을까? 속상한 마음에 고래고래 소리를 지를 수도 있고, 발버둥을 치며 엉엉 울 수도 있지만, 어릴 때부터 자의 반 타의 반 애어른으로 자란 나는 그동안 그러지 못했다. 속상해도 혼자 맘 속으로 삭히며 참기만 했다. 아이 때도 어른이 되어서도 몇 날 며칠을 혼자 속 끓이다 제 풀에 지쳐 아무 일도 없었던 듯 행동하곤 했었다.
그래서였을까? 그래서 그랬을까?
결혼 20주년 되는 기념일 날 가족들이랑 다 같이 외식하기로 철석같이 약속해놓고 조기축구회 사람들이랑 약속 있다면서 후다닥 나가는 남편의 뒷모습을 보면서도 "오늘이 무슨 날인지는 알아? 나랑 한 약속은 잊어버렸어?"라는 말밖에 하지 못했다. 하지도 않은 일 때문에 학생들 많은 곳에서 교수님에게 공개적으로 혼날 때도 아무 말 못 하고 그저 "죄송합니다."만 반복해서 되뇌었었다. 밤늦은 시간까지 야간 자율학습하고 오느라 힘들었을 아이들을 생각하며 퇴근하자마자 간식을 만들어 놓았는데, 집에 오자마자 "누가 이딴 거 만들어 달랬어?"하고 신경질을 내며 방으로 들어가는 아이들을 보면서도 "엄마가 힘들게 만들었는데......."라며 뒷말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그렇게 나의 슬픔을 안으로 안으로만 모아 두고 있다가 어느 날 갑자기 내가 너무 불쌍해 보였다. 모든 걸 혼자서 감당해 내느라 너덜너덜해진 나 자신이 안쓰럽고 서러웠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눈물을 훌쩍이게 되었다. 그런데 한 번 봇물이 터져버리니, 이후론 감당할 수가 없게 되어버렸다. 처음엔 침대에 누운 채 소리 죽여 울었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울음소리가 입 밖으로 새어 나오고, 그러다가 결국엔 엉엉 소리 내어 울고 말았다. 옆에서 잠자고 있던 남편이 놀래서 나를 돌아다보았지만, 이미 나는 울음을 멈출 수 없는 상태가 되고 말았다.
그렇게 한참 동안 눈물 콧물 다 흘리면서 엉엉 울고 났을 때 , 갑자기 머쓱해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세상이 떠나갈 듯이 울어재꼈지만, 정신을 차리고 보니 뭐 별 일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면서도 속은 참 후련했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고 자다가 놀란 토끼눈을 하고 쳐다보는 남편에게 미안하다고, 별 일 아니니 얼른 다시 자라고 토닥여주고 밖으로 나와서 생각을 했다.
속상할 때마다 나는 왜 그렇게 혼자 속으로 삭히기만 했을까? 소리 내어 울어도 되는데......, 아무나 붙잡고 나 이래서 속상하다고 하소연해도 되는데......, 왜 혼자서 다 감당하려고만 했을까? 그렇게 슬픔 조각을 하나씩 쌓아갈 때마다 나만 힘들어지는 걸. 감정은 하나씩 모아두는 게 아니라 그때그때 표현하고 풀어주어야 하는데, 왜 억압만 해두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