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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극펭귄 Apr 21. 2017

쵸콜릿의 배신

나는 쵸콜릿을 좋아했다. 그냥 길 걸어가다가 편의점 들려서 쵸콜릿을 하나씩 사 먹었다. 가나 쵸콜릿도 좋아하고 ABC쵸콜릿도 좋아했다. 길거리에선 주로 크런치 쵸콜릿을 먹었다. 트윅스나 스니커즈같은  쵸코바도 많이 먹었다. 허쉬나 모리나가에서 나온 엄청 큰 밀크쵸콜릿도 먹었다. 어느순간 나오기 시작한 카카오 함량이 높은 것들은 별로 안 좋아했다. 그저 달기만한 밀크쵸콜릿을 좋아했다. 생존전문가 베어그릴스에 의하면 긍정적인 기분을 유지하는 것이 생존에 중요하다고 한다. 그리고 사탕이나 쵸콜릿같이 단 것을 먹는 것은 긍정적인 기분을 유발하는데 도움이 된다고도. 데스노트를 보면 엘의 후계자로 니아(N)와 멜로(M)가 나오는데 멜로는 항상 쵸콜릿을 입에 달고 다닌다. 나는 부정적인 기분으로 부터 나를 구해내기 위해서, 다시 말하면 생존을 위해서 쵸콜릿을 먹는다고 상상했다. 그리고 멜로처럼 머리를 많이 쓰니까 에너지 소모를 보충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다는 상상도 하고. 당연히 이런 정당화 소재들을 만나기 전에도 쵸콜릿은 좋아했다. 단 맛과 부드러운 식감이 합쳐져서 좋았다. 그저 달고 부드러운 것을 좋아하던 나의 연약한 혀. 카카오 함량만 높아도 싫어하던 완벽주의자의 허약한 결점.  뱉어냄의 후회와 달콤함의 미련에 항상 노출되어 있었던 위험함. 너의 쵸콜릿같았던 피부. 그 내면에는 항상 씁쓸한 카카오가, 몇 퍼센트인지는 몰라도 내 예상보다 많이 있었겠지. 그것이 나에게는 너무나 쓴 한약처럼, 어린아이같이, 삼키지도 못하고, 그랬다. 행복은 혀의 문제일까? 삼켰다면 소화시킬 수 있었을까. 또 다시 내 몸 속의 수천개의 혀가 뱀처럼 사악하게 제1의 혀를 배신한다면, 잔뜩 들이킨 술이 보람도 없이 다시 쏟아져 나온다면, 취하길 바랬던 나의 멀쩡한 정신이 대낮의 태양아래 드러난다면, 숨어들어간 지하철역 화장실의 거울에서 결국 나를 만나고 만다면. 나는 가나, ABC를 배우던 때로 돌아가고 싶어질거야. 행복을 위해 여전히 뭘 배워야하는지는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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