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북극펭귄 Apr 10. 2017

꿈밖에 없어요

그 애의 집에는 언젠가 내가 이야기했던 책들이 있었다. 내가 빌려줬거나 사줬는지도 모르겠다. 거짓말이다. 나는 빌려주거나 사준 적이 없다. 신촌엔 골목대장이라는 허름한 고깃집이 있었다. 나는 거기서 돼지껍데기를 엄청 먹었다. 굴사냥이라는 곳에선 생굴이랑 소주 먹고 엄청 추워했다. 지금은 사람이 바글바글해진 다모토리에선 노래를 엄청 크게 불렀다. 이렇게 신촌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지만 누군가 놀러왔을때 소개해줄만한 맛집이 없다. 복성각에 데려가서 나는 굴짬뽕을 시킨다. 그리고 그 옆 지하에는 촛불을 조명으로 쓰는 어두컴컴한 술집이 있다. 그 술집의 계단은 제법 가파르다. 그곳에서 소개팅을 했다. 아마도 굽 높은 구두를 신고 왔을텐데 가파른 계단이 짜증나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문득 7년이 넘게 지나서야 든다. 술이 약한데도 너무 많이 마셨기 때문인지 기억나는 순간이 별로 없다. 그래도 슬프지 않았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대로 그런 의미가 있다는 노래 가사는 와닿을 듯 와닿지 않는다. 만약 '현재의 나'를 수학적으로 정리한 게 있다면 학계는 외면할 것이다. 어떠한 증명도 논리적인 풀이과정도 없이 결론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이런 상태가 되었죠? 글쎄요, 누군가 알콜로 다 지워놨군요. 혹시나 어떤 쓰임이 있는때가 온다면 그제서야 증명을 해볼 것이다. '현재의 나'가 쓸모있는 인간이라는 논리적인 근거를 찾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내 과거를 캐려고 할지 모른다. 그건 정말 무서운 일이다. 내가 쓸모있는 인간이라는 증거가 과거엔 전혀 없을 거 같다. 지나간 것이 지나간대로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해주면 좋겠다. 거짓말이다. 정말로 의미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보여주고 싶기도 하다. 기억나는 순간이 별로 없는 건 슬프지 않다. 그저께 꿈이 잘 기억이 안 나는 건 슬프다. 왜냐하면 과거에 기억이 더해지는 것은 꿈밖에 없기 때문이다.


작가의 이전글 매일 열이 나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