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록| 돌봄의 무게, 나를 잃지 않게 사는 법

사랑에도 체력이 필요하다

by 유혜성

부록 | 돌봄의 무게, 나를 잃지 않게 사는 법

-사랑에도 체력이 필요하다


1. 그녀가 다시 찾아온 날


“선생님, 저예요. 오랜만이죠.”


그녀는 그렇게 문을 열었다.

햇살이 비스듬히 스튜디오 바닥에 내려앉은 오후,

그녀는 마치 무언가를 내려놓으려는 사람처럼 조심스러운 걸음으로 다가왔다.

한때는 꼿꼿이 척추를 세우며 깊은 호흡을 뱉던 회원이었는데,

그날은 눈빛이 먼저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다시 운동 시작해도 될까요?”

그 말 뒤에는 수많은 망설임이 매달려 있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녀의 어깨에는 이미 이야기가 내려앉아 있었다.


“사실은요, 선생님… 제가 많이 무너졌어요.”


2. 사연 - 무너지는 시간의 기록


그녀는 결혼 30년 차, 50대 중반의 주부였다.

한때는 싱그럽게 웃던 여인이었지만, 지금은 그 웃음이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았다.


시어머니와의 관계는 오래전부터 삐걱거렸다.

결혼 초부터 그녀는 늘 ‘하대당하는 며느리’였다.

“대학 나왔다고 잘난 척하지 말라”던 시어머니의 말,

“여자가 애나 잘 키우면 됐지”라는 무심한 남편의 말이

그녀의 가슴에 오래 박혀 있었다.


그리고 어느 날, 시어머니가 치매에 걸렸다.

딸 집에서 더는 모실 수 없게 되자,

그녀의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 이후, 그녀의 인생은 완전히 달라졌다.


“아무도 제게 ‘괜찮냐’고 묻지 않았어요.

당연히 제가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죠.”


그녀는 매일 시어머니의 약을 챙기고, 밥을 차리고, 화를 감당했다.

기억이 희미해진 시어머니는

어느 날은 천진난만하게 “얘야, 밥 줘” 하며 웃었고,

또 어느 날은 돌변해

“너 같은 며느리한테 내가 당했다”며 욕설을 퍼부었다.


그녀는 기도로 마음을 다스리려 했다.

“하나님, 저에게 사랑을 주세요.”

하지만 매일 밤 눈물로 기도하며 잠들었다.


“힘들다고 말하면, 남편은 ‘엄마니까 어쩌겠냐’고 했어요.

아이들도 ‘엄마가 돌보는 게 당연하지’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어요.”


시어머니가 힘들게 하던 말보다,

가족 모두가 나의 희생을 ‘당연한 일’로 여기는 것이 더 잔인했다.


“도와주지 않으면서, 모두 저를 찾았어요.

친정엄마, 형제, 교회, 이웃…

누가 힘들다고 하면 늘 제가 불려 갔죠.

돈이라도 받는다면 모르겠어요.

하지만 아무도 고맙다는 말 한마디 하지 않았어요.

그게 제일 서러웠어요.”


그녀는 씁쓸하게 웃었다.

“집안에서 제가 하는 일은 사실상 무료 봉사예요.

밖에서 자원봉사했으면 적어도 표창장이라도 받았을 텐데,

집안에서 하는 건, 아무도 몰라줘요.

마치 제 삶이 ‘집안의 가사도우미’처럼 느껴졌어요.”


그녀의 말엔 쓴웃음보다 깊은 체념이 배어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결국 집을 나왔다.

“숨이 막혀서요. 일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았어요.”

마트 계산원, 반찬가게 포장, 간병 보조 아르바이트.

“아르바이트하면서 조금씩 제 세상이 생겼어요.

누군가가 저에게 ‘수고하셨어요’라고 말해주니까,

그 한마디가 그렇게 고마웠어요.”


그러나 몸은 점점 상해 갔다.

새벽부터 밤까지,

집에서도, 일터에서도, 그녀는 여전히 누군가의 필요를 채우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결국 쓰러졌다.

그리고 며칠 후 다시 나를 찾아왔다.


“선생님, 이제 제 몸도, 제 마음도 다 망가졌어요.

하지만… 아직도 포기할 수는 없어요.”


3. 상담 - 돌봄에도 경계가 필요하다


나는 조용히 물었다.

“그 긴 시간 동안, 당신 자신은 어디 있었나요?”


그녀는 한참을 침묵하다가 눈을 감았다.

“없어요. 그냥, 없어졌어요.”


그녀의 대답은 슬프지만 너무나 솔직했다.


혜성쌤의 상담노트


돌봄은 사랑의 한 형태지만,

사랑이 자신을 파괴하기 시작할 때, 그것은 더 이상 사랑이 아닙니다.


돌봄에는 경계가 필요합니다.

그 경계는 차가운 벽이 아니라, 자신을 지키는 울타리입니다.


1. 자기 시간을 확보하라


처음엔 하루 10분이라도 좋습니다.

그 시간이 쌓이면 20분, 30분으로 늘어납니다.

차 한 잔, 짧은 산책, 필라테스(운동), 글쓰기,

아무것도 하지 않는 ‘멍’의 시간도 괜찮아요.

그건 게으름이 아니라 회복의 기술입니다.


2. 가족과의 균형을 다시 세워라


남편에게 이렇게 말하세요.


“어머니를 돌보는 건 제 몫만이 아니라,

우리 가족 모두의 일입니다.”


가족의 돌봄은 한 사람의 헌신으로 유지되지 않습니다.

효도는 함께 짊어질 때 완성됩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도 알려주세요.


“엄마가 누군가를 돌보는 건 고귀한 일이지만,

그만큼 힘든 일이기도 하단다.

엄마에게도 ‘고맙다’는 말이 필요해.”


그 한 문장이 아이들의 마음을 바꿉니다.

감사와 존중이 회복되는 순간,

가정의 공기가 달라집니다.


3. 자존감의 근육을 다시 세워라


그녀가 마트에서 일하며 느꼈던 ‘수고하셨어요’ 한마디는

단순한 인사가 아니었습니다.

그건 잊고 있던 존재의 증명이었습니다.


“나는 가족의 그림자가 아니라,

나 스스로를 지탱하는 사람이다.”


이 문장을 하루 한 번, 거울 앞에서 말해보세요.

자존감은 마음이 아니라, 습관으로 단련됩니다.


4. 그녀의 현재 - 여전히, 진행형


몇 주 뒤, 그녀는 다시 스튜디오를 찾았다.

조금은 여윈 얼굴이었지만, 그 눈빛에 온기가 돌아왔다.


“선생님, 오늘은 어머니가 제 이름을 불렀어요.

‘며느리’가 아니라 ‘OO야’라고요.”

그녀는 눈물을 머금은 채 웃었다.


그리고 덧붙였다.

“남편도 요즘은 어머니 병원에 같이 가요.

‘자네 수고 많다’고 하더라고요.

그 말이 그렇게 낯설고 따뜻했어요.”


그녀의 회복은 완벽하지 않다.

아직도 가끔은 시어머니의 말에 상처받고,

남편의 무심함에 울컥하지만,

이제는 숨이 트인다.

필라테스 수업이 끝날 때마다

그녀는 매트 위에서 잠시 눈을 감고 숨을 고른다.


“이제는 조금 알겠어요.

제가 저를 돌보는 일이, 죄가 아니라는 걸.”


그녀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는 더 이상 무너지는 사람이 아니다.

이제는 조금씩, 다시 살아가는 사람이다.


혜성쌤의 한마디


“누군가를 돌보는 일은 아름답지만,

그보다 먼저 자신을 돌보는 일이 필요합니다.


사랑에도 체력이 필요하고,

관계에도 산소가 필요합니다.


당신의 30분은 이 세상 그 어떤 효도보다

더 소중한 ‘회복의 예배’입니다.”


무너지지 않게 챌린지


오늘의 연습:

• 하루 30분, 나를 위한 시간을 확보하기

• 가족에게 “오늘은 내 회복 시간이에요”라고 말해보기

• 감사받지 못한 일을 스스로 칭찬하기

• “나는 나를 존중한다’는 문장 필사하기


독자에게 드리는 마지막 인사


이 글은 여기서 끝나지만,

무너지지 않게 사는 법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녀의 회복처럼, 우리의 삶도 ING입니다.


우리는 매일 무너지고, 다시 일어납니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숨이 이어지는 한, 회복은 계속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당신의 사연이 또 다른 누군가의 숨이 될지도 모릅니다.

힘들었던 하루, 버텨낸 순간, 회복의 이야기.

메일로 보내주세요.

cometyou@naver.com

제목에 “무너지지 않게 사는 법 – 독자 사연”이라고 적어주세요.


당신의 사연이 모이면,

<무너지지 않게 사는 법 시즌>가 시작됩니다.

그때, 그녀의 그 이후 이야기도 함께 전하겠습니다.


에필로그


어쩌면 우리는 모두,

누군가를 돌보다가 나를 잃어버린 경험이 있는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버티는 법보다 중요한 건,

숨 쉬는 법이라는 걸, 안다.


당신이 오늘 깊게 내쉰 한 번의 숨,

그게 바로 다시 살아가는 기술이다.


그리고 나는 믿는다.

당신은 이미, 무너지지 않게 사는 법을 배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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