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의 기후학 - 비와 당신의 이야기

비가 멈춘 뒤의 마음 - 다시 사랑할 용기

by 유혜성

비가 멈춘 뒤의 마음 - 다시 사랑할 용기


갑자기 쏟아진 비에
우산도 없이 뛰는데
너는 미친 듯 웃었어.
나 때문이라고.

그 순간
심장이 젖는 소리가 들렸지.

아, 끝났구나.
좋아해버렸구나._By유혜성

몸의 기후학, 마지막 장


비는 온다.

예고 없이 오기도 하고,

기다린 끝에 오기도 하고,

이미 젖어 있는 마음 위로

다시 겹쳐서 오기도 한다.


우리가 이 책에서 말해온 비는

이별이 아니었다.

비는 언제나 사랑이었다.


몸이 먼저 알아차리고,

마음보다 앞서 반응하고,

일상의 온도를 조용히 바꿔놓는 것.


함께 비를 맞았고,

같은 공기 속에서 젖었고,

서로의 몸에 남은 습기를

말없이 공유했던 시간들.


그래서 비는

따뜻하기도 했고,

아프기도 했고,

떠나간 뒤에도

몸 어딘가에 오래 남았다.


젖어 있는 동안에는

사랑이 영원할 것 같고,

슬픔이 내 이름을 바꿔놓을 것 같고,

사랑이 떠난 자리에

아무것도 다시 피지 않을 것만 같다.


그런데도 우리는 살아간다.

아주 사소한 변화부터 시작해서.


어느 날,

커피가 다시 맛으로 느껴지고

비 오는 날에도 괜히

집에만 있고 싶지 않아 지고

예전 같으면 피했을 음악을

다시 틀어보게 되고

누군가의 이름을 떠올려도

숨이 막히지 않는 순간.


그게 회복이다.


드라마틱하지도 않고,

눈물로 닦아내지도 않는다.

다만 몸이 먼저

“이제 괜찮다”라고

알려주는 상태.


머리는 아직 조심스러운데

몸은 이미

다음 계절 쪽으로

조금씩 방향을 틀고 있는 때.


사람들은 <몸의 기후학:비와 당신의 이야기>를 읽고

이런 질문을 많이 했다.


“정말…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요?”


나는 늘 이렇게 대답하고 싶었다.


사랑은 끝났지만,

사랑을 할 수 있는 몸은

끝나지 않았다고.


사랑은 언제나

이별을 동반한다.

이별 또한

사랑을 전제로 한다.


그래서 이별이 있었다는 건

사랑이 있었다는 뜻이고,

아팠다는 건

몸이 제대로 반응했다는 증거다.


우리는 사랑 때문에 망가진 게 아니라,

사랑을 통과하면서

조금 다른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그 변화는

다음 사랑을 위한

몸의 준비 과정이 된다.

비가 멈춘 뒤의 마음이란

아무 일도 없었던 상태로

되돌아가는 게 아니다.


젖었던 기억을 안고

조금 다른 방식으로

다시 열리는 상태다.


그래서 다시 사랑할 용기란

대단한 결심이 아니다.

그건 아주 작은 움직임이다.


우산을 꼭 쥐고 있지 않아도

다시 젖어도 괜찮겠다고 느끼는 마음,

젖을까 봐 도망치지 않고

잠시 서 있어도 되는 몸.


“다시는 안 해” 대신

“이번에는

다르게 해 볼 수 있을지도”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게 용기다.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비는 멈추기도 하지만,

다시 온다는 걸.


사랑도 그렇다.

어떤 사랑은 길었고,

어떤 사랑은 짧았고,

어떤 사랑은 끝났는데도

한동안 나의 감각에 남아 있었다.


하지만 그 모든 사랑은

지금의 나를 만든

몸의 기후였다.


가볍게 스쳐 간 사랑도,

나를 완전히 바꿔놓은 사랑도

전부 헛되지 않았다.


그 모든 비가 지나가

지금의 나라는 날씨를 만들었다.


그래서 이 책은

사랑을 미화하지도,

이별을 부정하지도 않는다.


다만 이렇게 말한다.


당신은

이미 한 번 사랑을 견뎌냈고,

다시 젖을 수 있는 몸으로

돌아오고 있다고.


비가 멈춘 뒤에도

몸은 멈추지 않는다.

계속 반응하고,

계속 자란다.


그게

몸의 기후학이 말하고 싶은

가장 조용한 진실이다.


몸은 이미 다음 비를 견딜 준비를 하고 있다.


다음 계절에 대하여


몸의 기후학 - Season Preview


이 책은

<몸의 기후학: 비와 당신의 이야기>로 시작했다.


하지만 몸의 계절은

비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이어가 보고 싶다.

• Season 1 | 비와 당신의 이야기

젖고, 스며들고, 사랑을 몸으로 겪는 계절

• Season 2 | 눈과 당신의 이야기

차가움 속에 저장된 감정, 멈춤과 응축의 계절

• Season 3 | 바람과 당신의 이야기

떠남과 이동, 마음의 방향이 바뀌는 계절

• Season 4 | 햇살과 당신의 이야기

회복, 일상, 다시 몸이 열리는 계절


아직은 가제이고,

아직은 예고다.


그래서 묻고 싶다.


당신은

어떤 계절의 이야기를

먼저 읽고 싶은가.


댓글로 남겨주면,

나는 그 계절부터

몸의 언어로

다시 써 내려갈 생각이다.


김광석 ‘사랑했지만’

참고문헌

• 제임스 W. 페니베이커, 《글쓰기 치료》, 이봉희 옮김, 학지사, 2007.

감정의 표출과 회복이 몸과 마음에 미치는 영향을 다룬 심리학 고전


https://www.instagram.com/comet_you_

https://www.threads.com/@comet_you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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