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당신에게 닿는 빗소리
하필 비 오는 날이었다.
너를 좋아하게 된 것도,
너를 잃은 것도.
그날의 기후가 몸에 남아
이렇게까지 나를 데려올 줄은
그때는 몰랐다.
갑자기 쏟아진 비에
우산도 없이 뛰는데
너는 미친 듯 웃었다.
나 때문이라고.
발목까지 차오르던 물보다
네 손이 더 뜨거워서
그날의 목적지는
아무래도 상관없어졌다.
그 순간,
심장이 젖는 소리가 들렸다.
아, 끝났구나.
좋아해 버렸구나.
그건 고백도 아니고
약속도 아니었지만
몸은 이미 알고 있었다.
이 감정이
나를 오래 데려갈 거라는 걸.
그래서 나는
비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정확히 말하면
비와 당신,
그리고 나 사이에서 일어난
몸의 변화를.
여름밤의 소나기,
우산을 반씩 나눠 들던 골목,
가로등 아래서 번지던 물빛,
비를 피해 들어간 카페의 온기,
젖은 옷 사이로 전해지던 숨결.
우릴 적신 게
비였는지 설렘이었는지
끝내 구분하지 못한 채
마음의 날씨는
조용히 바뀌어갔다.
그렇게
몸의 기후학은 시작되었다.
그리고
이 책을 읽고 있는
지금의 당신에게로
이야기는 흘러왔다.
프롤로그에서
첫 빗방울을 맞고,
소리를 따라 기억을 열고,
그리움을 배우고,
페트리코르 앞에 멈춰 서고,
몸의 리듬을 느끼고,
감정의 기후를 이해하고,
언어 속에 내리는 비를 읽고,
사랑의 장마를 통과하고,
사람의 기후를 해석하고,
다시 사랑할 용기까지.
툭툭 장을 넘기며
우리는 어느새
작가와 독자가 아니었다.
같은 비를
함께 건너온 사람들이었다.
장마든,
가랑비든,
소나기든.
서로의 마음결을
조용히 스치며
같은 계절을 통과한 사이.
나는 이걸
관계라고 부른다.
당신은 이미
이 책의 어딘가에서
나와 나란히 걸어왔다.
우리는 이미
함께 젖었다.
이 책은
비를 이야기했지만
사실은
당신을 이야기한 시간이었다.
비는
감정의 모양을
가장 닮아 있는 언어라
나는 그것을 빌렸을 뿐이다.
당신이 젖었던 날,
흐렸던 날,
잠겼던 날,
도망치고 싶었던 날,
그리고
조금씩 그쳐가던 날들.
그 모든 순간을
부르기 위해
비를 불러왔다.
이 책은
빗방울을 빌린
당신 마음의 기후 보고서이자,
마음이 곧 몸이 되는 순간을 기록한
조용한 일기장이었다.
이제 우리는
어디쯤 와 있을까.
장마의 끝일까,
가랑비의 초입일까.
확실한 건 하나다.
이 여정을 시작했던 마음과
지금의 마음은
같지 않다는 것.
처음에는
비가 싫다고 말하던 사람들도,
몸이 아파서,
기억이 겹쳐서,
괜히 우울해져서
비를 피하던 사람들도
이 여정을 함께 걷는 동안
조금씩 비를 다시 바라보게 되었다
좋아하게 되지 않아도,
기꺼이 받아들이는 쪽으로.
책 한 권이
사람의 계절을 바꿀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그렇다고 대답하겠다.
우리는 이미
조금 바뀌었으니까.
비를 다뤘으니
다음은 눈일 것이다.
조용히 쌓여
마음의 결을 드러내는 계절.
그다음에는 바람.
떠나고, 돌아오고,
흔들리며 방향을 바꾸는 관계의 계절.
그리고 언젠가는 햇살.
우리를 말리고,
다시 걷게 하는
삶의 에너지.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우리는
다시 만날 것이다.
마음의 날씨를
함께 탐험하는
다음 계절에서.
지금 이 문장을 읽고 있는
당신의 창가에도
어딘가에서
작은 빗소리가 닿고 있을 것이다.
기억의 비일 수도,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비일 수도.
하지만 분명한 건,
그 비가
지금
당신에게 도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비가 그치는 소리를 듣는 순간
사람은
다시 걸을 용기를 얻는다.
다시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
아주 조금씩,
몸 안쪽에서
조용히 움직이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이제
창밖의 비가 그쳤다.
곧
눈이 온다.
당신의 다음 계절에서
우리는
천천히,
다시 만날 것이다.
마치
처음 비가 내리던 날처럼.
함께 비를 맞았던 사람들에게
이 책을 쓰는 동안
나는 예상하지 못한 편지들을 받았다.
비가 오던 귀갓길,
병원에서 지하철로 가는 길에
가랑비가 내려
우산을 접고 잠시 걸었다는 이야기.
비 오는 날 다쳐
계단에서 굴러
실밥을 꿰매고,
다시 풀어야 했던 날에도
이상하게 화가 나지 않았다는 고백.
예전에는
비가 오면 몸이 먼저 아파서,
관절이 쑤셔서,
기억이 겹쳐서
무조건 피하던 사람이
“이제는 비가 오면
작가님이 떠오를 것 같다”라고
조심스럽게 적어 내려간 문장들.
그 편지들을 읽으며
나는 이 책이
비를 좋아하게 만든 책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다만
비를 조금 더 관대하게,
조금 더 넓게
받아들이게 만든 책이었다는 걸.
어떤 독자는 말했다.
이 연재를 읽으며
자신이 늘
감정을 따라 뒤늦게 글을 쓰고 있었음을
처음으로 자각하게 되었다고.
감정은 이미 지나간 자리에서
조심스럽게 문장을 놓고 있었다는 고백.
또 다른 독자는
“비는 예보할 수는 있어도
막을 수는 없고,
없던 일로 만들 필요도 없는 것”이라는 문장이
자신을 안심시켜 주었다고 했다.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글이
생각보다 드물다는 말과 함께.
어떤 이는
이 책이
감정을 분석하거나 재단하지 않고
그저
“그럴 수 있다”라고
옆자리를 내어주는 느낌이었다고 적어주었다.
그래서
이 연재가
자신에게는
작은 피난처가 되었다고.
나는 그 편지들을 읽으며
확신하게 되었다.
<몸의 기후학: 비와 당신의 이야기>는
작가만의 책이 아니라
함께 기록된 책이었다는 것을.
독자들은
자신의 기억을 꺼내왔고,
비와 함께 있었던
사랑과 이별과 회복의 장면들을
댓글이라는 형식으로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비와 관련된 첫사랑의 한 장면,
은밀했던 관계의 기억,
떠나보낸 순간의 공기,
그리고
다시 걷기 시작한 어느 날의 몸 상태까지.
그 모든 이야기가
이 책의 여백을 채웠다.
그래서
만약 이 이야기가
언젠가
한 권의 책으로 다시 태어난다면,
그 책의 가장 중요한 부록은
이 문장들이 아니라
당신들이 남긴 편지와 댓글일 것이다.
우리는
같은 비를 맞았고,
같은 계절을 건넜고,
서로의 이야기를
조용히 받아주었다.
그건
독자와 작가의 관계라기보다
함께 젖었던 사람들의 관계에
더 가까웠다.
비는 여전히 온다.
그리고
여전히 어떤 날에는
아프고,
피하고 싶고,
우울할 것이다.
몸은 이미 알고 있다.
비를 싫어해도 괜찮고,
우산을 꼭 쥐지 않아도 괜찮고,
잠시 젖었다가
다시 마를 수 있다는 걸.
이 책이
당신의 삶을
선명하게 바꾸지는 않았을지 모른다.
다만
흐린 날을
흐린 날답게 보내도 된다는
작은 허락이 되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이제
창밖의 비는
조금씩 그치고 있다.
당신이 남긴 편지들은
내 마음에 남아
다음 계절로 이어질 것이다.
우리는
이미 한 번
함께 비를 맞았으니까.
그리고 그 기억은
쉽게 마르지 않는다.
https://www.instagram.com/comet_you_
https://www.threads.com/@comet_you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