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제이의 밤토키

출장 가는 남자와 쿨한 여자, 그런데 밤이 되면

by 유혜성

<출장 가는 남자와 쿨한 여자, 그런데 밤이 되면>

밤토키 연작 5: 쿨한 여자와 유치한 남자의 연애


“나 이번 주에 출장 많아.”


제이가 말했다.

조금 미안한 얼굴로.


“이번 주 좀 빡셀 것 같아.

시간이 될지 모르겠어.”


토랑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 그래.

일 열심히 해.”


그게 다였다.


제이는 잠깐 멈췄다.


“… 안 서운해?”


토랑이는 어깨를 살짝 으쓱했다.


“나도 바빠.

난 네가 바쁜 게 좋아.”


낮의 토랑이는 늘 그랬다.


쿨했고, 단단했고,

쉽게 흔들리지 않는 사람처럼 굴었다.


제이가 웃으며 물었다.


“왜 좋아?”


“일하는 거 멋있잖아.”


제이는 웃다가

표정이 아주 조금 내려갔다.


“너 너무 쿨해서…

좀 서운해.”


토랑이는 눈을 깜빡였다.


“그럼 내가 뭐라고 해야 돼?”


제이는 장난처럼 말했지만

눈은 진짜였다.


“출장 가지 마.

그딴 거 왜 가.”


“나랑 같이 있어.”


“돈 벌지 마.”


“아무 데도 가지 마.”


“… 넌 내 거야.”


말은 유치했고

어린애 같았지만


그 안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그 순간

토랑이의 심장이 몽글하게 풀렸다.


아,


사랑은 가끔

이렇게 유치해지는 거구나.


어른이지만

어린애처럼 붙잡고 싶어지는 순간.


“중간중간 전화할게.”


“바쁘면 안 해도 돼.”


“그래도 할게.”


“… 그래.”


“사랑해.”


토랑이는 잠깐 숨을 고르고 대답했다.


“… 고마워.”


낮에는 늘 이렇게 말한다.


쿨한 척.

아무렇지 않은 척.


하지만 그날 밤.


출장 가기 전날 밤,

토랑이는 아무 말 없이 제이에게 다가갔다.


낮에는

“잘 다녀와.”

라고 보내놓고도


밤이 되자

몸이 먼저 기억해 냈다.


이 사람의 온도.

이 사람의 심장 소리.

내가 기대도 사라지지 않는 자리.


토랑이는 말없이

제이의 셔츠 끝을 움켜쥐었다.


“왜 이렇게 조용해.”


제이가 낮게 물었다.


토랑이는 잠깐 망설이다가

작게 말했다.


“… 말하면

가지 말라고 할까 봐.”


그 한마디에

제이의 숨이 잠깐 멈췄다.


그는 아무 말 없이

토랑이를 끌어안았다.


더 가까이.


가슴에 얼굴을 묻자

심장 소리가 그대로 들렸다.


쿵.

쿵.

쿵.


토랑이의 손이

제이의 셔츠를 더 깊이 쥐었다.


“나 가지 말까.”


붙잡히길 바라는 목소리.


토랑이는 눈을 감았다.


“… 갔다 와.”


잠깐 멈춘 뒤

아주 작게 덧붙였다.


“근데 빨리 와.”


말 끝이

조금 떨렸다.


제이는

그 떨림을 놓치지 않았다.


그의 손이

토랑이의 등을 천천히 따라 내려왔다.


서두르지 않는 손.

확인하듯 머무는 손.


낮에는

그렇게 쿨하던 사람이


밤이 되자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다.


호랑이 같던 여자가

어느 순간


토끼처럼

그의 품 안으로 더 깊이 파고들고 있었다.


“시간 나면 바로 올 거야.”


“무리하지 마.”


“무리해서라도 올 거야.”


“왜?”


제이는

조용히 웃었다.


“보고 싶어서

미칠 것 같을 테니까.”


토랑이는 웃었지만

귀 끝은 이미 뜨거워져 있었다.


그날 밤


둘은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누가 붙잡은 것도 아닌데

자꾸만 가까워지는 밤.


손이 닿고

숨이 닿고


말보다

조금 더 솔직해지는 시간.


토랑이는

제이의 가슴에 얼굴을 묻은 채


조금 더 가까이

몸을 기대었다.


출장 전날 밤은

이상하게도


서로를

더 오래 붙잡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

토랑이는 깨달았다.


낮에는

아무렇지 않은 척하던 마음이


밤이 되면


이 사람의 품 안으로

조용히 돌아오고 있다는 걸.


제이는 출장을 떠났다.


토랑이는 낮 동안

호랑이처럼 지냈다.


메시지가 늦어도

조급해하지 않았다.


일하는 제이를 떠올리며

오히려 조금 자랑스러웠다.


하지만 밤이 되자


침대 위

작은 빈자리가 느껴졌다.


평소엔 아무렇지 않았던 공간이

괜히 커 보였다.


토랑이는 그 자리를

잠깐 바라보다가


아주 작게 중얼거렸다.


“… 보고 싶네.”


혼잣말처럼 흘린 말이

조용히 방 안에 맴돌았다.

휴대폰이 울렸다.


제이였다.

영상통화.


토랑이는 잠깐 망설이다가

전화를 받았다.


“뭐 해.”


호텔 방에서

제이가 웃으며 물었다.


셔츠 단추 하나 풀린 채

침대에 기대 앉아 있었다.


토랑이는 괜히 시선을 피했다.


“… 그냥 있어.”


제이는 한참

화면을 바라보다가


작게 웃었다.


“토랑이.”


“응.”


“지금… 토끼네.”


토랑이는

말이 없었다.


대신

베개를 더 끌어안았다.


제이가 낮게 말했다.


“… 거기 가고 싶다.”


심장이

조금 빨리 뛰었다.


“왜.”


“안아야 될 것 같아서.”


잠깐의 침묵.


그리고 제이가 말했다.


“나 돌아가면…”


토랑이는 숨을 멈췄다.


“… 응.”


“가만 안 둘 거야.”


토랑이는 결국 웃었다.


“빨리 와.”


영상통화가 끝난 뒤


토랑이는

휴대폰을 가슴에 끌어안았다.


그리고 아주 작게 말했다.


“… 진짜 보고 싶네.”


그날 밤


토랑이는

조금 더 오래


제이 생각을 했다.


그리고 제이가 돌아온 날.


현관문이 닫히자마자

토랑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곧장 그의 품으로 들어갔다.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그런데도

몸이 먼저 기억했다.


아,


이 온도.


제이의 팔이 자연스럽게 허리를 감싸자

토랑이의 숨이 조금 흔들렸다.


“이렇게 반겨주면…”


제이가 웃으며 말했다.


“… 또 출장 가고 싶어지는데.”


토랑이는 고개를 들었다.


“가지 마.”


이번엔

장난이 아니었다.


제이는 웃다가 멈췄다.


그리고

토랑이의 이마에

천천히 입을 맞췄다.


“다녀와도

결국 여기로 돌아오잖아.”


토랑이는

그의 셔츠를 더 깊이 쥐었다.


“… 보고 싶었어.”


그 한마디면 충분했다.


토랑이는

조금 더 가까이 몸을 붙였다.


떨어져 있던 하루가

둘 사이의 거리를 더 좁혀 놓고 있었다.


제이의 손이

등을 따라 천천히 내려왔다.


급하게 끌어당기지 않는 손.


대신

놓치지 않겠다는 듯

조용히 붙잡는 손.


토랑이는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돌아온 밤은

생각보다 조용했고


그래서

더 가까워졌다.


그날 밤


토랑이는

제이의 셔츠를 놓지 않았다.


낮에는

호랑이처럼 보내주고


밤이 되면

토끼처럼 안긴다.


그게

토랑이의 사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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