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제이의 밤토키

곧 만나자, 나의 사랑

by 유혜성

<곧 만나자, 나의 사랑>


밤토키 연작 12: 부조리 속에서도 사랑


“곧 만나자, 나의 사랑.”

A bientôt, mon amour.


토랑이의 손끝이

그 문장에서 멈췄다.


알베르 카뮈가

마리아 카사레스에게 남긴

마지막 인사.


그는

그 편지를 주머니에 넣고

길을 나섰다.


그리고 그날,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세상에 돌아오지 못했다.


곧 만나자.


그 말은

약속이 아니라,


영원히 닿지 못한

인사가 되었다.


햇살이 길게 드는 창가.

식어가는 커피.


책 위로

눈물이

조용히 떨어졌다.


남의 사랑인데,

이미 끝난 이야기인데.


왜인지

숨이 막혔다.


만약,


우리도.


아직 오지 않은 이별을

사람은 왜

먼저 슬퍼할까.


아직 헤어지지도 않았는데,


잃어버린 것처럼

아픈 걸까.

저녁,


토랑이의 목소리가

조금 젖어 있었다.


“괜찮아.”


제이는

그 한마디로 알아챘다.


“… 울었지.”


“… 카뮈 책 읽다가.”


잠깐의 침묵.


“문 열어.”


그는 이미 집 앞이었다.


현관이 열리자마자


토랑이는

말도 없이

제이에게 안겼다.


전쟁 같은 하루를 지나

안전한 품 안에서만

드러나는 토끼의 심장.


제이가

그녀를 꽉 안았다.


숨이

조금 거칠어졌다.


“무슨 생각했어.”


토랑이는

대답 대신

셔츠를 더 세게 쥐었다.


“… 갑자기 무서워졌어.”


“왜.”


“… 이렇게 있다가”


“갑자기 없어질까 봐.”


잠깐의 정적.


제이의 손이

등을 천천히 쓸어내렸다.


“그런 일 안 일어나.”


낮게,

거의 숨처럼.


“안 떠나.”


“아프지도 마.”


“오래 있어.”


말이라기보다,

확인하는 것처럼.


토랑이의 숨이

조금 무너졌다.


“왜 그렇게 말해…”


제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머리를 더 깊이 끌어안았다.


“겁나니까.”


잠깐의 숨.


“네가… 사라질까 봐.”


조금 더 가까이.


이마가 닿았다.


“지금은 있잖아.”


“이렇게… 내가 닿을 수 있는 데.”


그 말에


토랑이는

더 깊게 안겼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이별이

이미 마음을 건드리는 밤.


그래서,


지금의 체온이

조금 더 뜨거워졌다.

사람은


사랑을 할수록

불안해진다.


잃을 게

생기니까.


그래서


아직 오지 않은 이별을

먼저 떠올린다.


창가의 불빛이

천천히 흘렀다.


제이의 손이

등을 따라

조용히 내려갔다.


숨이 닿고


체온이

겹쳤다.


토랑이는

잠깐 눈을 감았다.


아침이

오지 않기를.


조금만 더

이대로 있고 싶어서.


조금만 더

안심하고 싶어서.


토랑이의 손이

그의 옷자락을

가볍게 잡았다.


제이는

그걸 느꼈다.


말없이

조금 더 가까이 끌어당겼다.


말보다 먼저,

체온이 답했다.


그 순간


토랑이의 심장이

조금 느려졌다.


불안은

사라지지 않았지만,


안길 곳은

분명해졌다.


그래서


사랑은


조금 위험하고,


조금 더

달콤해진다.


제이의 품은 따뜻했고

토랑이의 심장은 빨랐다.


두 개의 불안이


조용히

같은 박자로 맞춰졌다.


토랑이의 숨이

조금 흔들렸다.


“우리…”


“헤어지면 어떡해.”


제이는

잠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손끝이

조금 더 단단해졌다.


“그런 생각하지 마.”


“그래도…”


토랑이의 눈이

천천히 젖었다.


“나는 그게 무서워.”


잠깐의 정적.


제이는

고개를 조금 숙였다.


그리고

더 가까이 다가왔다.


“그럼.”


숨이 닿을 만큼.


“그 생각 들 틈도 없이 같이 있자.”


토랑이의 눈이

가늘게 흔들렸다.


“이상한 위로네…“


제이는

눈을 떼지 않은 채 말했다.


“그래도 널 놓을 생각은 없어.”

그 순간


토랑이는 알았다.


사랑은


영원을 약속하는 게 아니라


지금을

놓치지 않는 일이라는 걸.


제이의 이마가

토랑이의 이마에 닿았다.


숨이

살짝 흔들렸다.


입술이

거의 닿을 듯 멈춰 있다가


참지 못하고

천천히 겹쳐졌다.


심장이 먼저 안기고

몸이 그 뒤를 따랐다.


토랑이의 손이

그의 목을 감싸고


제이의 손이

허리를 더 깊게 끌어당겼다.


조금 더 가까이.


조금 더 느리게.


망설임 없이.


서로의 숨이

같은 리듬으로 포개졌다.


그 밤


둘은


말 대신


서로의 온도에 기대고 있었다.


밤토키 세계에는 마법이 없다.


다만


낮에는

호랑이처럼 버티다가


밤에는

스스로 토끼가 되는 법을 아는 사람만 있다.


사랑은


사람을

조금 낯설게 만든다.


아직 아무 일도 없는데도


괜히

마음이 먼저 흔들리고,


이대로면 충분한 순간에도


이상하게

끝을 떠올리게 한다.


“곧 만나자.”


그 말은


영원을 믿어서라기보다


지금 이 순간을

조금 더 붙잡고 싶은 마음에 가까웠다.


토랑이는

제이의 목에 얼굴을 묻었다.


제이는

아무 말 없이

더 끌어안았다.


창가의 그림자가

천천히 하나로 겹쳤다.


그리고


말하지 않아도


둘 다 알고 있었다.


이 밤이


영원하지는 않을 거라는 걸.


그래서


조금 더 오래


서로를 안고 있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문득


불안해지는 밤이 있다.


사랑은


그런 순간을


가끔,


데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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