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제이의 밤토키

난 네 편이야

by 유혜성

<난 네 편이야>


밤토키 연작 11. 삶의 매니저가 되어주는 사랑

“나를 좀 케어해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토랑이가

툭 던지듯 말했다.


농담처럼 웃었지만


눈은

전혀 웃고 있지 않았다.


“나는…”


잠깐 말을 멈췄다.


“빈 구석이 너무 많아.”


짧은 침묵.


“근데 이상하게”


토랑이가

조금 웃었다.


“늘 그 빈 구석을

내가 채워주는 쪽이었어.”


제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회사에서도, 집에서도…”


“누군가의 빈틈을 메우는 역할.”


토랑이는

어깨를 가볍게 으쓱였다.


“그래서인지

내 옆에 있던 사람들은 다 괜찮아졌어.”


“나는 그냥…”


“그게 내 자리인 줄 알았거든.”


조용한 정적.


제이가 말했다.


“그럼 이제 내가 할게.”


토랑이가

눈을 깜빡였다.


“뭘?”


제이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았다.


“토랑이 매니저.”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나 연예인이야?”


제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내 연예인.”


“빈틈 있으면 내가 채우면 되지.”


제이의 말은

너무 당연하다는 듯 나와서,

오히려 더 진짜처럼 들렸다.


“바쁘면 옆에 가만히 있어 줄게.”


“아프면 병원 데려가고.”


“울면…”


잠깐 멈췄다가


조금 더 낮게 말했다.


“안아주면 되잖아.”

토랑이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제이는

시선을 피하지 않고 이어 말했다.


“그리고”


“토랑이가 얼마나 괜찮은 사람인지”


“옆에서 계속 말해줄게.”


“잊어버리지 않게.”


토랑이의 시선이

천천히 아래로 떨어졌다.


누군가가


자기를 이렇게까지

확신하듯 말해준 적이 있었던가.


조금 늦게,


토랑이가 입을 열었다.


“…그럼 제이도 지치잖아.”


“나처럼.”


제이는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나는 쉽게 안 지쳐.”


그리고


조금 웃었다.


“이건 힘든 게 아니라”


“좋은 거라서.”


토랑이가

그를 바라봤다.


제이는

한 박자 천천히 말했다.


“토랑이 채워주는 거.”


“그거 하면…”

“내가 더 괜찮아져.”


잠깐의 정적.


“그래서”


“이건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거야.”


토랑이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가슴 어딘가가


조용히

무너져내리는 것 같았다.

그날 밤.


말보다 먼저

손이 서로를 찾았다.


제이는

뒤에서 토랑이를 안았다.


붙잡는 힘이 아니라,

기댈 수 있는 온기.


“이렇게 안고 있으면… 괜찮아?”


“응.”


“놓지 않을 거야.”


제이는

대답 대신

손을 더 단단히 잡았다.


그걸로 충분했다.


토랑이의 귀가

천천히 길어졌다.


토끼.


토랑이는

얼굴을 숨기듯 웃었다.


“이 모습… 이상하지 않아?”


제이는

고개를 저었다.


“내 앞에서만 그러는 거잖아.”


“그럼 괜찮아.”


손이

등을 천천히 쓸어내렸다.


숨이 가까워지고,


이마가 닿고,


말이 필요 없어졌다.


그날 밤,


둘은


말 없이

서로를 채우고 있었다.


“사랑하고, 사랑할게.”


제이가 낮게 말했다.


토랑이는

눈을 감았다.


“예뻐해 주고,

아껴주고,

옆에 있을게.”


그 단순한 말이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가슴을 부풀게 했다.

사랑은


요란한 약속으로

시작되지 않는다.


누군가의 하루를 먼저 떠올리고,


가방에 약을

조용히 넣어두고,


힘들어 보이면

묻지 않고

그냥 안아주는 일.


말 대신


온도를 건네는 일.


삶의 매니저가 되어주는 마음.


서로의 빈틈을


드러나지 않게


조용히

채워주는 일.


토랑이는

제이의 품에 얼굴을 묻었다.


“너만 있으면 돼.”


제이는

작게 웃었다.


“넌 이미 내 거야.”


유치한 말인데,


심장이 먼저

흔들렸다.


어른이 되고 나서도


이런 말 앞에서는

여전히 속수무책이다.


사랑에 빠진다는 건


평생을 약속하는 일이 아니라,


이렇게


사소한 한마디에


세상이

조금 달라 보이는 순간을


몇 번이나

겪게 되는 일인지도 모른다.


“사랑해.”


“괜찮아.”


“내가 옆에 있을게.”


이 세 마디면


버티고 있던 하루가


잠깐,

풀린다.


어른의 사랑은


불꽃보다


조금 더 오래가는

온도에 가깝다.


화려하진 않지만,


곁에 두면


살아낼 힘이 되는 것.


그래서 우리는


다시


사랑을 믿어보게 된다.

월, 수,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