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너면 돼
비가 왔다.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오늘따라
조금 더 가까웠다.
토랑이는
그 소리를 듣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 나, 원래 이런 사람 아니야.”
제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조금 더 가까이 있었다.
“좋아하면 안 되는 사람.”
“들키면 안 되는 사람.”
“그래서… 계속 숨었어.”
비가
조금 더 깊어졌다.
“… 내가 좋아했던 사람들은…”
숨이
조금 끊겼다.
“… 다 없어졌거든.”
설명 대신
조용한 공기가 남았다.
사라진 사람들.
남겨진 시간들.
혼자 견뎌낸 밤들.
토랑이는
웃으려 했다.
하지만
이번엔
잘 되지 않았다.
“… 차 안이었어.”
비.
“그날도… 이렇게 비가 왔어.”
눈이
천천히 감겼다.
“나는 살았고,”
“…그 사람은 못 나왔어.”
차 문이
끝까지 열리지 않았어.
말이
끝까지 가지 못했다.
“그래서…”
“… 나는 사랑하면 안 되는 사람 같아.”
그 순간,
제이가
천천히 다가왔다.
급하지 않게.
도망치지 않아도 되게.
“토랑아.”
이름을
부르는 방식이 달랐다.
“그건…”
아주 낮게.
“… 네가 살아남은 이야기지.”
토랑이의 눈이
흔들렸다.
“결론 아니야.”
손이 닿았다.
따뜻하게.
“혼자 지나온 시간이야.”
손을 잡았다.
이번엔
놓지 않겠다는 힘이 아니라,
“여기 있어도 된다”는 온도로.
“그걸로 너를
정해버리지 마.”
조용해졌다.
“나는…”
조금 더 가까이.
“… 그냥 너면 돼.”
조건이 없는 문장.
그래서 더 깊게 내려앉았다.
토랑이가
작게 말했다.
“… 나 가끔 사라질 수도 있어.”
“응.”
“… 갑자기 밀어낼 수도 있고.”
“그래도 괜찮아.”
“… 이상해질 수도 있어.”
이번엔
조금 더 가까이.
“알고 있어.”
손이
조금 더 단단해졌다.
“다시 돌아오면 되잖아.”
그 말은
붙잡는 말이 아니었다.
돌아올 곳을
만들어주는 말이었다.
토랑이 안에서
버티고 있던 것들이
조용히,
천천히,
무너졌다.
“… 무서워.”
이번엔
제이가
망설이지 않았다.
끌어안았다.
조용히.
“알아.”
비가
더 크게 내렸다.
“그래서…”
숨이 가까워졌다.
“… 더 혼자 두고 싶지 않아.”
토랑이의 손이
힘없이 떨어졌다가,
다시
제이의 옷을 잡았다.
이번엔
스스로 선택한 방향으로.
그 순간,
토랑이의 머리 위로
아주 조용히,
작게,
토끼의 귀가 드러났다.
비밀처럼.
세상에는 보이지 않는 모습.
오직
제이만 아는,
밤토끼.
토랑이는
얼굴을 숨겼다.
“… 이거… 이상하지.”
“아니.”
제이의 손이
그 귀를 스쳤다.
아주 조심스럽게.
“이건…”
숨이 닿았다.
“… 네가 얼마나 버텨왔는지
보여주는 거야.”
토랑이가
미세하게 떨었다.
“나한테는…”
조금 더 가까이.
“… 그냥
내 밤토키야.”
그 말에
어깨가
천천히 내려앉았다.
완전히.
“… 나 이렇게 약해져도 돼?”
대답 대신,
더 깊게 안았다.
이마가 닿았다.
숨이 섞였다.
“이미 충분히 잘 버텼어.”
“이제는…”
“… 같이 있어도 돼.”
그 말은
위로가 아니라,
허락 같았다.
토랑이의 눈이
천천히 감겼다.
이번엔
도망치지 않았다.
그리고
제이가
조금 더 다가왔다.
망설임 없이.
입술이 닿았다.
짧지 않았다.
확인하듯,
안심시키듯,
“여기 있어도 된다”라고 말하듯.
그 밤은
조용했지만,
깊었다.
누군가는
사랑을 시작했고,
누군가는
처음으로 도망치지 않았다.
그리고
그 둘은
같은 사람이었다.
사람은
불안할 때
도망치려 한다.
하지만
사랑은 조금 다르다.
밀어내는 말은
떠나라는 뜻이 아니라,
“그래도 남아줄 수 있냐”는
조용한 질문이다.
그걸 알아보는 사람.
그리고
그 순간에도
한 걸음 더 다가오는 사람.
그게
사랑이다.
사랑은
완벽한 사람을 만나는 게 아니라,
무너지는 순간에도
옆에 남아 있는 사람을 만나는 일이다.
그래서
진짜 사랑은
소란스럽지 않지만,
깊게 남는다.
그날 밤,
비는 계속 내렸지만,
그 안은
처음으로
따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