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까지가 어디인가요
작가님께.
저는 올해 서른여덟입니다.
싱글입니다.
결혼은 하지 않았고,
오래 만난 남자친구가 있습니다.
이 나이에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게 맞는지 모르겠지만,
이건 분명히
지금의 제 이야기입니다.
그를 만난 건
회사 회의실이었습니다.
그는 이미 결혼한 사람이었고,
저는 그저
그의 팀원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업무로만 말을 나눴습니다.
보고를 하고,
수정을 받고,
다시 정리해서 올리는
그런 관계였습니다.
어느 날,
회의가 끝난 뒤
그가 말했습니다.
“오늘은 말수가 적네요. 평소랑은 좀 다른데요.”
그 말에
대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날 하루를
설명해야 할 것 같았고,
설명하면
무너질 것 같았습니다.
그날 이후로
우리는 조금 더 말을 나누게 됐습니다.
업무가 아닌 이야기,
그날의 기분,
그때는 말하지 않았던 것들.
우리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았습니다.
손을 잡은 적도 없고,
선을 넘는 행동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퇴근길 엘리베이터 안에서
나란히 서 있던 몇 초,
사무실 불이 거의 꺼진 뒤에도
같이 남아 있던 저녁 시간,
짧게 남겨진
“수고했어요”라는 메시지.
그런 순간들이
몸보다 먼저
마음을 가까이 두었습니다.
그는 늘 말했습니다.
“선을 넘지는 말자.”
저도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우리는
지켜야 할 것이 있는 사람들이니까요.
하지만 작가님,
선을 지키고 있는데
왜 마음은 점점 더 깊어지는 걸까요.
우리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았는데,
저는 이미
이 관계 안에서
많은 것을 건 사람처럼
하루를 보냅니다.
그는
아무것도 약속하지 않았고,
그래서 더
확실한 이름이 없는 관계였는데,
저에게는
가장 선명한 사람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그가 말했습니다.
“여기까지야.”
그 말은 짧았고,
설명도 없었습니다.
작가님,
여기까지가 어디인가요.
저는 아직
시작도 하지 못한 것 같은데,
왜
이미 끝난 사람처럼
남아 있는 걸까요.
이건
사랑이었을까요.
아니면
사랑이 되기 전에
멈춰버린 감정일까요.
저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 걸까요.
-이름을 밝히지 못하는 독자 드림
익명으로 편지를 보내주신 당신께.
당신의 문장을 여러 번 읽었습니다.
특히 이 문장 앞에서 오래 멈췄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모든 걸 다 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보통
선을 ‘행동’으로 생각합니다.
손을 잡았는지,
안았는지,
키스를 했는지.
하지만 더 깊은 선은
행동보다 먼저
마음에서 넘어갑니다.
아무 일도 하지 않았는데
이렇게까지 깊어지는 이유는,
어쩌면
멈추기로 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선을 넘지 않겠다고 말한 순간,
사람은
더 오래 바라보게 됩니다.
다가갈 수 없기 때문에
더 또렷해지고,
잡을 수 없기 때문에
더 선명해집니다.
그래서 어떤 관계는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더 크게 남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여기까지야.”
그 말은
관계를 정리하는 말처럼 보이지만,
어쩌면
관계를 더 깊게 만드는 말이기도 합니다.
끝을 정해버린 말은
이상하게
사람을 더 붙잡아두니까요.
당신이 묻고 싶으셨던 건
아마 이것일 겁니다.
여기까지는
어디인가.
감정의 끝일까요.
행동의 끝일까요.
아니면
책임의 끝일까요.
당신은
아직 시작도 못 한 것 같다고 했지만,
어쩌면 이미
가장 깊은 지점까지
다녀온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더 어렵습니다.
이 관계는
잃었다고 말하기도 어렵고,
가졌다고 말하기도 어렵기 때문입니다.
저는 당신에게
그만두라고도,
계속하라고도 말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히 묻고 싶습니다.
그 사람이 아니라면
당신은 괜찮은가요.
아니면
그 사람이어야만
당신이 괜찮은가요.
사랑은 때로
상대가 아니라
내 마음이 머무는 자리일 수도 있으니까요.
그리고
어떤 감정은
시작하지 않았기 때문에
끝나지 않기도 합니다.
손을 잡지도 않았고,
선을 넘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미 깊이 빠졌습니다.
이 관계는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까요.
사랑일까요,
착각일까요,
아니면
애초에 시작하지 말았어야 할 감정이었을까요.
그리고 더 묻고 싶습니다.
“여기까지야”라는 말은
끝일까요,
아니면
책임지지 않겠다는 선언일까요.
어떤 분들은
이 말이
오히려 사람을 더 붙잡는다고 말합니다.
1. 지금 멈춘다.
2. 솔직하게 고백하고 끝을 본다.
3. 선을 지키며 계속 이어간다.
4. 감정까지 끊어내기 위해 완전히 떠난다.
또 하나.
아무 일도 없었는데
이렇게까지 마음이 가는 관계,
여러분은
경험해 보신 적 있으신가요.
“여기까지”는
여러분에게
어디인가요.
댓글로 남겨주세요.
이번에는
여러분의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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