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학교에 가지 못 하고, 집에만 하루 종일 있는 날들이 많아지면서 첫째 딸이 살이 찌기 시작했다.
처음엔 배 둘레가 커지기 시작하더니 점점 앞으로 나오는 게 아닌가....
예정일보다 3주나 빨리 태어나는 바람에 2.56kg으로 태어났던 작은 아이.
이유식도 밥도 너무 적게 먹어서 항상 다른 아이들보다 조금씩 작았던 아이.
1학년 때도 키 번호 1번, 몸무게는 그냥 보통이었던 아이.
정말로 이렇게 살이 찔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아이가 점점 살이 찌고 있었다.
마른 체형의 나와 어릴 때부터 항상 통통했던(지금은 뚱뚱한) 남편.
둘 중에 우리 첫째는 당연히 날 닮았을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살이 찌면 뭐 어떠냐 싶지만 이 땅에서 살기엔, 크면서 스트레스를 받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것뿐 아니더라도 아이들은 에너지를 발산해야 하는데
집에만 있으면서 너무 힘들었을 거란 생각이 들어 바깥활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집은 소위 말하는 빌라촌에 있다.
가장 가까운 놀이터는 근처에 있는 아파트 놀이터인데 매일 저녁에 쉽게 나가지 진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온 가족이 일주일에 두세 번 저녁 산책을 하기로 했다.
하지만 8월 저녁은 너무 습하고 더웠다.
날씨가 조금 선선해질 때까지 일단은 집 앞에서 줄넘기라도 하기로 했다.
줄넘기만 하기에 아이들은 심심해해서
선을 정해두고 달리기와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 얼음땡 따위를 하며 2-30분씩 놀이 겸 운동을 했다.
아이들은 저녁놀이를 굉장히 좋아했다.
깜깜해진 밖에 나가서 노는 것이 새롭고 흥분되는 일인 듯했다.
너무 늦은 시간은 이웃에게 폐가 될 수 있을 것 같아 8시에서 8시 반까지.
그 시간이면 저녁식사 후 대부분은 TV를 보고 있을 것 같아 아이들이 조금 떠들어도 괜찮을 것 같았다.
놀이터를 가려면 옷도 갈아입고 준비해야 할 것들 있는데
집 앞이라 그냥 편하게 내복 입고 나가도 되니 꾸준하게 할 수 있을 것 같아 좋았다.
밖에서 너무 흥분해서 집에 있었던 남편에게 물어보기도 했다.
애들이 너무 시끄럽지 않으냐고.
에어컨을 트느라 창문을 닫고 있어서 그런지 거의 들리지 않는다고 했다.
어느 날은 나가지 못하는 날도 있었기에 일주일에 세 번 정도.
그렇게 한 지 2주 정도 됐을 때였다.
횟수로 따지자면 다섯 번 정도 됐을 때였나.....
그날도 아이들과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하고 있었는데
옆 빌라에서 60대 중후반 정도 되어 보이는 할머니 한 분이 나오셔서
“애엄마예요?” 하고 물어보셨다.
“네, 그런데요.” 하니
“아니, 왜 여기서 놀아.” 이러시는 게 아닌가...
“많이 시끄러운가요?”
“너무 시끄러워. “
“아, 죄송합니다. 조용히 시킬게요.”
솔직히 너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애들이 신나서 좀 꺅꺅거리기는 했지만 잘 시간에 그런 것도 아니고,
매일 그런 것도, 1시간 넘게 그런 것도 아닌데 고작 2-30분을 참지 못 하고,
잠깐 창문만 닫아도 됐을 일을....
내가 대화하는 동안 아이들은 내 옆에서 눈치 보며 서 있었고,
나는 연신 죄송하다는 말을 했다.
그렇게 사과를 하고 애들한테 들어가자고 말을 하려는데
“아니, 놀이터 놔두고 왜 여기서 놀아.” 하며 들어가는 게 아닌가.....
순간, 그 뒤통수에 대고
“놀이터가 없으니까 여기서 놀죠.
코로나 때문에 애들이 아무 데도 못 가고 있는데 그 잠깐을 못 참아주나요?”
하고 말하고 싶었지만 소심한 나는 그 말을 내뱉지 못했고, 할머니는 들어가 버렸다.
그 시간을 좋아했던 아이들은 서글픈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며
“이제 여기서 놀면 안 돼?” 했고,
나는 설명해야 했다.
잘 시간도 아니고, 이 시간에 잠깐은 괜찮을 거라고 엄마는 생각했지만
세상엔 그 정도도 참아주지 못하는 사람도 있는 거라고.
불편해하는 사람이 있으니 들어가자고.
너희들이 잘못한 것은 아니라고.
아쉬워하는 아이들을 데리고 들어오며 아이들 앞에서 죄송하다고 사과만 한 내 모습에 화가 났다.
우리 아이들이 그렇게 눈치 볼 만큼 잘못한 건 아닌데.
왜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나.
내 아이들 또래의 손주가 있을 것 같은 분들이 그 조금도 이해 못 하느냐고.
한창 에너지를 발산해야 할 아이들이 코로나 때문에 집 안에만 있는 게 불쌍하지도 않으냐고.
이런 시기에 그 정도도 참아주지를 못 하느냐고.
그 할머니에게 하고 싶었던 말들을 집에 들어와 남편에게 억울해하며 마구 내뱉었다.
나 어릴 땐 동네에서 더 늦은 시간까지 얼음땡도 하고 사방치기도 하며 놀아도 아무도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었는데....
지금은 집 앞에서 노는 것도 눈치 봐야 하는 그런 시대가 되었다.
세상은 점점 개인적이고 불편을 조금도 참지 못 하는 시대가 되어가고 있다.
이래저래 너무 서글픈 시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