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금이, <알로하, 나의 엄마들>
동전의 양면과 같은 이야기가 펼쳐진다. 동전의 앞과 뒤는 서로 같은 방향을 바라보게 하자면 모순적일지 모르지만, 같을 수 없는 그 앞과 뒤가 뗄 수 없이 하나이자 둘인 것처럼 이 책의 여자들은 매 순간 선택의 기로에 놓이고, 선택을 할 수밖에 없지만, 한편으로 혹은 동시에 선택을 한다. 사진신부. 일제에 핍박받고 있던 조선의 세 여자는 하와이로 떠난다. 지금으로 말하자면 결혼이주여성으로서의 길이다. 하와이에 이주노동을 하러 간 수많은 조선 남자들은 말이 통하고 문화도 다르지 않을 조선의 여성들을 ‘아내’로 맞이하고 싶어 했다. 그리고 하와이로 떠나는 많은 여성들 중 버들, 홍주, 송화가 있었다.
가난하기 때문에 더 나은 삶을 상상하기 어려운, 공부가 하고 싶었지만 멈춰야했던 버들은 공부 할 수 있다는 소리에 생각에도 없던 결혼에 마음을 갖는다. 그가 가난이란 이름에 갇히지 않고 살아가고 싶은 삶의 모양을 마음껏 상상하고, 살아갈 수 있었다면 낯선 곳으로 떠나는 선택을 했을까. 그가 하고 싶던 공부를 타의에 의해 멈추지 않았다면 생각해보지 않았던 결혼을 쥐려 했을까. 결혼을 하자마자 배우자가 사망하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 홍주는 ‘과부’라는 이름에 쌓여 조선에서 험난하게 살아가지 않기 위해 나이가 제 나이만큼이나 더 많은데도 사진 신부로 떠난다. 그의 결혼 경험이 여성이란 이유로 수치심이 되지 않았다면, 그가 ‘남자 잡아먹은 년’이 되지 않았다면 포화로 사진신부가 되어 떠났을까. 무당의 손녀라는 천대받는 계급이 아니었다면 송화는 조선을 떠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송화의 의사는 없이 할머니의 선택으로 이루어진 사진 신부, 그리고 하와이로의 결혼 이주는 송화가 아무렇지 않게 놀림 받아온 인생이 아니었다면 다른 모습이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 어쩔 수 없다고, 서글프다고 생각되는 모든 것에는 다른 생각의 관점이 자란다. 조선에서는 아무리해도 가능하지 않을 것 같았던 버들은 공부를 하고, 가난이 아닌 삶을 위해 새로운 삶을 선택했다. ‘과부’로 늙어죽는 것이 아니라 좀 더 자유롭게 살고 싶었던 홍주는 그렇게 나이가 많은 남자였지만, 하와이로의 결혼이주를 선택했다. 그리고 무당의 끼를 버텨내지 못하고 조선으로 돌아갔지만, 책에서처럼 조선으로 돌아가 무당이 되기로 결정한 것은 송화가 처음으로 자신의 삶에 있어 자신이 결정 내린 주체적 모습이자 또 다른 삶을 위한 모습이기도 하다.
사실 이 책을 무척 재미있고, 흥미롭게 읽었음에도 어떤 글을 써야하지? 고민이 되었다. 스스로도 조금은 놀랍게 글이 써지지 않을 것 같은 마음으로 며칠의 시간을 보냈다. 그런 와중에서 마음속엔 여러 그림들이 하늘에 뜬 작은 구름처럼 피어있었다. 그러다 무슨 글을 쓰나, 갸웃하며 써내려간 것은 ‘선택’이란 것이었다. 우리는 인생에서 매 순간 선택을 한다. 그리고 그 선택이란 것이 내가 원하지 않았던 주변 환경과 시대 등의 상황 속에서 펼쳐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상한 말일지 모르지만, 또 그런 와중에 선택이란 것은 명백히 다른 누구도 아닌 나의 선택이란 것이다. 사람들은 오늘 절망하고 내일은 희미하게 웃을지 모르지만, 각자의 삶에 최선이 되는 선택들을 해 나가고, 오늘을 살아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나의 엄마들’은 그랬던 것이다. 낯선 하와이에서 아시아인으로서 차별을 경험하며 조선보다 나은지도 모르겠는 힘든 삶을 살아갔지만, 자신을 한 번도 놓지 않고 그때그때 스스로, 그리고 그것을 넘어 ‘우리’를 위해 살아왔다고 나는 오늘도 지금-여기를 살아갈 어떤 이들을 떠올리며 생각한다. ‘바다가 있는 한 없어지지 않을 파도처럼, 살아 있는 한 인생의 파도 없이 끊임없이 밀어닥칠 것(334)’이고, 그 파도 앞에서 넘어지고, 울더라도 결국 넘으며 살아갈 것이라고. 무지개를 보며 빌던 소원을 마음에 담으며 오늘도 우리 그렇게 말이다.
그래서 당신에게 건네고 싶다. ‘알로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