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노래는 끝날 수 있을까.

최진영, <끝나지 않는 노래>

by 수수

2020년이 되어도 완전히, 가 아닌 건 이 세상에서 여성으로 살아가는/살아가게 되는/길러진, 그 이름을 부여받은 사람들의 것들, 그 속에 담긴 것들, 담겨 버린 것들. 두자의 쌍둥이 딸들은 너무 달랐는데, 수선은 한 번도 엄마한테 제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지 못한 채 그냥 고개를 내린 채 묵묵히 받아들였다. 그것이 받아들이는 것인지 흘러 사라지는 것인지도 모른 채. 매일같이 맞고, 욕을 먹던 딸들은 세대를 건너서도 너무 취약하고, 또 너무 질기기만 하다.
그러나 그것이 계속해서 이어져 왔다. 평생 이렇게 고생하며 일만 하는 게 아니겠지, 란 마음으로 할머니가 언니들을 강제로 시집 보내고 두자 역시 얼굴도 모르는 남자를 만나 결혼을 했다. 그런 두자는 아들밖에 모르는 시어머니와의 생활 속에서 딸을 낳아 그 딸을 다시 아들 지킴이로 ‘갖다 쓰고’ 다시 또 그건 돌고 돌아 평생 이렇게 고생하며 살지 말라는 의미로 시집이라도 잘 가라고 한다. 그런데 그건 정말 해결책이 맞을까. 그렇다면 할머니도, 새엄마도, 두자도, 수선이도 봉선이도 그리고 결혼을 하지 않은 은하도 이렇게 가난 속에서 힘이 부치고 물속에 갇힌 것처럼 삶이 먹먹할까.


나는 차라리 “시키는 대로 일만 하다가 엄마가 짝지어주는 남자랑 무조건 결혼하는 거 정말” 싫다고 한 봉선이 잘했다고 생각했는데, 수선과 봉선이 동하와 은하의 ‘엄마들’로 늙어가는 걸 보면서 이 사회에서 여성, 가난한 여성, 이혼한 여성, 남편 없이 아이를 낳은 여성, 여성을 좋아하는 여성으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험난한 길로만 자꾸 빠지게 하는 일이 되기 쉬운지, 아무리 어렵게 살아가도 말이다. 그리고 ‘엄마들’의 딸인 은하에게도 말이다. 그 슬픈 노래는 어디서 왔을까. 그런데 아직도 이 노래는 끝나지 않는 것 같으니 마음에 물이 맺힌다.


어린이가 어린이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의견도 시선도 질문도 몸도 마음도 생각도 빼앗기지도 부러지지도 않고서. 단 한 번도 어린이인 적 없었던 여자, 두자처럼 어른들에게 필요에 의한 존재가 아닌. 집이 폭력의 공간으로 숨 막히는 것이 아니라 안전한 공간이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자기의 인생을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 오빠들의 인생을 대신 살 듯 돈 벌어 갖다 바치는 ‘여동생’들이 아니라.


그리고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이 숨겨야 하는 존재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혜순에게 두근거린 수선이 마음에도 없는 남자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지 않아도 되면 좋겠다. 혜순에게 아무 말 하지 못하고 혼자 우는 수선이 비록 혜순과 이뤄지지 않더라도 그 존재가 투명하게 지워야 하는 존재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봉선만이 아니라 그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세상이면 좋겠다. 좋아서 살아가면 좋겠고, 좋았던 그 순간을 쥐고 사는 여성들의 삶을 목도하고 싶고, 내 삶이 그러면 좋겠고, 내가 모를 많은 여성들의 삶이 그랬으면 좋겠다.


‘시선으로부터,’와 같은 가부장제에 포섭되지 않는 기세 있는 여성들의 이야기들을 만나는 반가움 속에 ‘끝나지 않는 노래’와 같이 가부장제 속에 묶여 제 살 뜯기는지도 모르고, 그것이 삶이라 살아간 여성들의 이야기를 만나는 것은 설움이 짙지만, 외면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이다.

이 노래는 끝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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