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오필리아>
“드디어 내 입으로 내 이야기를 들려줄 때가 왔네요.”
사람들은 실연과 복수에 가득 차 길을 잃고 미쳐버렸다고 하는 오필리아. 영화 속 오필리아는 말한다. 길을 잃지도 않았고 미치지도 않았다고. 언젠가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거란 희망을 가졌다고. 나는 그런 오필리아를 보며 말하고자 한 여성들, 쓰고자 한 여성들을 생각했다. 오필리아 말대로 “모든 이야기는 결투로 끝날 필요는” 없으니까.
<스토너>를 읽으면서 좋으면서도 아쉬웠던 건 그 속의 여성들이 왜 그 모습의 현재인지에 대해 좀 더 다루고 또 지금 그 여성에게 더 집중해주는 갈망 때문이었다. 어쩌면 이 영화, 오필리아가 그런 갈증을 해소해주려는 영화로 등장한 걸지도 모르겠다. 그 이야기 속 여성의 관점으로, 그녀를 중점적으로.
여성의 적은 여성이라는 틀은 누가 만들었는가.
여성의 모습이 어때야 한다고, 여성은 글같은 건 배울 필요 없다고 누가 통제하고 억압해왔는가.
규율이란 이름은 누가 누굴 위해 만들었는가.
교육권은 왜 평등하게 주어지지 않았는가.
책을 좋아하던 소녀, 교육권은 박탈 당했지만 그녀 자신으로 자라오고 지켜온 오필리아. 그리고 여성들의 연대.
원작과 다른 내용이라고 폄훼하는 이야기들이 있다고 들었다. 알겠어. “내 명예는 내가 알아서 지킬게.” 라고 오필리아가 전해주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