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여름 제주의 시간은 ‘수치와 용기의 역사’라 명명하겠다.
불현듯 잠에서 깼다. 다시금 빗소리가 두두두둑 들려오는 새벽. 밖은 이미 어둡지 만은 않은 시간. 확신 없듯 떠진 눈꺼풀이 무겁다.
이번 제주에서 나는 ‘용기’라는 것에 대해, ‘용감한 사람’에 대해 많이 많이 생각했다. 용기에 대해 생각하게 되니 버티는 사람들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고마운 마음과 사랑하는 마음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보다 더 많이 한 생각은 나에게 아직 없는 용기에 대해. 내가 가지고 싶은 용기에 대해. 내가 되고 싶은 용감한 사람에 대해. 그러니까 용감할, 한 발자국 미래의 나에 대해. 그러다보니 아름다운 빛깔만이 아니라, 용기를 바라보며 손 내미는 현재 나의 안전을 위한 잇속과 구질구질함을 바라보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그만큼이라 할 수 있게 남사스러움들, ‘수치’에 대해 이야기했다. 나 아닌 누군가에게 꺼낼 거라 생각하지 않았던 감정과 마음에 대해. 너무 별 것 아닌 게 아니라 내가 그렇게 여기고만 싶어진 것들에 대해. 너무 못난 마음 같아 나를 편협하게 그릴 것만 같은 내 시기와 질투에 대해. 나를 힘들게 했던 시절들과 고통들에 대해. 누군가에게 꺼내면 안 되고, 그럴 필요도 없다 여긴 것들에 대해. 무심한 이와 그리하여 내가 불편한 감정과 인내한 마음에 대해. 그러니 구태여 사랑하는 친구들에게 들려주고 싶지 않다 여긴 나의 비밀스런 수치들에 대해. 그러니까 역시나 나의 그 구질구질한 구석들에 대해 말이다.
그러나 쓰고보니 이제 안다, 고 할 수 있겠다. 내가 나눈 수치와 용기, 이 모든 것이 좋건 싫건 사랑에 대한 것임을. 편협하고 편애하는 그 모든 것도, 넓고 짙은 그 모든 것도 모두 사랑으로 인해 내 안에, 네 안에, 우리 안에 존재했을 것임을. 나를 기쁘게 하는 것도, 나를 고통스레 울게 하는 것도 너무 다른 색깔이라 섞일 수 없다 생각했지만, 사랑 때문에 내 인생에 수치와 용기는 공존하며 서사를 만들어낸다는 것을. 우리가 울고 또 울면서 그리고 따뜻한 시선을 서로에게 보내고 어깨며 머리를 쓰다듬어 준 것들은 모두 그 사랑을 알아차려서임을.
수치를 외면하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 수치를 외면하지 않는다고 그냥 뚫고 지나가는 게 아니라 직면하고 내 곁에 잘 두어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 나는 그것에 대해서도 용감함이라 이름 붙이고 싶다. 나를 위한 사랑을 가꿔나가는 용기 있는 사람이 되어야지. 당신을 향한 사랑을 잘 가꿔나가 당신의 손에 쥐어줄 수 있는 용감한 사람도 되고 싶다. 뒷걸음질치지 않고 다가오는 것들을 똑바로.
인생에 다시 없을 순간이 아니라, 언제고 또다시 반복될 수치들을 꺼내어 서로의 곁에 얹은 용기가 서로의 삶에 남긴 비행선처럼 남을 흔적의 시간이 연극의 막처럼 지났다. 그러니 오늘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커튼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