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은 밤

최은영_밝은 밤

by 수수

1. 기다리고 기다리던 최은영 작가의 신간이 나왔다. 단편소설집 2권으로 아니 이미 첫 번째 단편소설집인 ‘쇼코의 미소’만으로 나를 사로잡고 사로잡았던 작가의 장편소설이 나왔다. 나는 그의 첫 번째, 두 번째 단편소설집을 읽으면서 단편이 하나 끝날 때마다 울었고 울면서 소설을 읽었는데 이번 장편 소설은 그렇지 않았다. ‘누가 툭 치면 쏟아져내릴 물주머니 같은 것’이었던 작가가 이 소설을 쓰면서 ‘다시 내 몸을 얻고, 내 마음을 얻어 한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이었던 것이 이 소설 속에서 단단하게 느껴져서일까. 뭉클하고 울컥하면서도 엉엉 울면서 이 소설을 읽지 않을 수 있었다. 역시나 줄곧 그래왔듯 사랑에 빠질 것 같은 책은 쉽게 열어보지 못한다. 이 책도 얼마나 그랬는지 모른다. (그래서 얼마나 시간에 임박하며 읽어 나가 새벽밤 잠 못 들었는지) 350페이지 정도의 책을 40페이지쯤 읽어갈 때 왈칵해서 내가 이 책을 또 너무 사랑하게 될 것을 알았다. 읽어가는 게 아까워 책을 그만 덮어버릴까 하다가도 그 마음을 누르고 책을 이어 읽어나갔다.


나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내 할머니의 역사는커녕 부모의 역사도 잘 모르는데, 이 소설은 증조부에 고조부 이야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거슬러 올라갈 뿐 아니라 증조모 삼천과 새비 아주머니의 이야기가 중심을 이루며 소설을 끌고 간다. 그 이야기에 우선 질투가 나지 않았다. 얼마나 다행인가. 내가 그런 마음 하나 없이 이 소설을 읽어나갈 수 있다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건, 엄마와 엄마의 엄마에 대해 질문할 수 있는 것이구나 생각했다. 명자는 엄마가 보고 싶을까, 기억이 날까, 보고 싶은 사람일까. 나는 한 번도 본적 없이 그것도 명자가 간직하는 겨우 사진 한 장으로 만난 그녀에 대해 명자에게 물은 적이 없다. 생각하면 할수록 나는 얼마나 오만스럽게 명자의 딸이 되어주고, 친구가 되어주고, 엄마가 되어주고 싶다 생각했나. 그녀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제 혼자 얼마나 잘난 척 했던 것일까. 항상 어디인지, 뭘 하는지 묻는 사람은 명자였다는 것을 새삼 생각한다.


이 소설의 여성들에게 비슷한 세대로 이입하자면 나는 지연과 가까울 것이고, 명자는 지연의 엄마인 미선, 그리고 지연의 할머니인 영옥은 명자의 엄마일 텐데, 우리는 한 번도 같이 영옥과 같은 할머니 얼굴을 본 적 없이 살았다. 삼천과 새비의 역사까지 가기도 버겁게 우리는 서로를 잘 모르고, 서로를 만난 적 없고, 서로가 서로에게 각자의 이야기이자, 연결되는 이야기임을 모르고 살았다. 그래서 명자는 어떤 별 것 아닌 듯한 마음을 받아왔고, 자신을 살게 했을까 지금 나는 모른다. 알아야 할 것이 분명 너무 많은데도 나는 너무 많은 것을 모른 체 살아왔음을 느끼며 산다. 엄마 나는, 엄마를 살게 했던 그 아무 것도 아닌 마음들이 너무 궁금하다, 라는 말을 오늘도 나는 명자가 아닌 글에다 쓴다.


명자에겐 엄마가 없다. 일곱 남매의 막내딸인 명자는 태어나서 얼마 되지 않아 엄마를 잃었다. 엄마가 없이 살아온 명자는 엄마란 게 뭔지도 잘 모르고 원치 않게 엄마가 되어 나를 길렀고, 동생을 길렀다. 그런 엄마에게 내 기억에도 존재하는 할머니가 있는데, 그는 엄마에게 그때 엄마가 되어주었을까? 궁금하다. 우리가 교회 밖이라도 그는 우리에게 할머니가 되어주고, 방을 내어주고 했을까. 분명 나는 한 번도 가져본 적 없던 명절의 기운을 그 집과 그 할머니를 통해서 가져보았는데, 만두를 빚고 아랫목에서 몸을 데우는 시간을 가져보았는데, 그 할머니의 아들 새끼는 결국 엄마를 등쳐먹었으니 내가 이 기억에 대해 좋지 않은 정리뿐일 수밖에. 그런데 엄마에게도 과연 그럴까. 엄마가 그 가족에게 딸처럼 마음 내어주고 나에게 할머니와 삼촌들이 생겼다고 생각했던 그 시절에 대해 엄마는 어쩐지 원망만을 가지고 있을 거라 나는 도저히 생각이 들지 않는다.


모두 현실 속에서 결혼을 하면서 딸들에게는 더 넓고, 자유로운 세계로 날아가라 하는 여자들. 좀 더 나은 남자를 만나 결혼을 하고 잘 살길 바라며 자신처럼 살라고 하고 싶지 않았던 여자들. 그 여자들 틈에 명자가 있다. 어떤 면에서 새아버지는 나의 엄마를 구했다. 그래서 나는 사람이 사람을 구하는 것만으로는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러니 삼천이를 구해준 이도, 영옥이 떠밀리듯 결혼한 이도, 미선이 평범해지고 싶어 결혼한 이도, 지연이 혼자 사는 삶은 꿈도 꾸지 못했던 결혼 생활의 이도 모두 그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 애당초 누가 누구를 구했다는 것이 얼마나 시혜적일 것인가.


명자는 나이 들어가는 제 딸에게 결혼하라고 원성을 보내지 않는 사람. 제 이혼이 제 딸들에게 어떤 부정적 영향을 주었을까봐 마음속에서는 여전히 끌어안고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티 내지 않는 사람. 바라는 게 많았던 제 큰 딸이 살아가는 모습이 마음에 들지도 이해되지도 않을 거면서도 어느새 마음에 들지 않음과 이해되지 않음을 지워버리고 나를 그대로 두는 사람. 나는 명자를 어떤 사람이라고, 그 사람의 삶을 이야기해줄 수 있을까. 내가 여전히 명자에 대해서 알아야 할 것이 참 많다. 그리고 나는 누군가에게 그 이야기를 해줄 것인가. 딸이나 손녀 같은 관계가 아닌 누군가들에게. 나는 명자의 이야기를 딸이나 손녀에게 해주고 싶지는 않다. 그러니 당신들이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었으면 좋겠다. 나의 다짐이 깨지지 않게.


2. ‘새비 아주머니의 시선은 증조모의 몸을 지나서, 마음을 지나서, 어쩌면 영혼이라고 부를 수 있는 장소에까지 다다랐다. 그곳에서, 아직 다섯 살도 되지 않은 어린 증조모는 햇볕에 따뜻하게 데워진 돌멩이를 안고서 내 동무야, 내 동무야, 말을 걸고 있다.’


늦은 밤, 친구는 메시지를 보내고 ‘잔잔한 호수에 돌을 던진 것 같아’ 미안하다고 했다. 나는 그 메시지를 읽으며 생각했다. 잔잔한 호수에 돌을 던져도 그 파동이 호수를 뒤엎지 못하고, 그 호수의 잔잔함을 이기지 못할 거라고. 그리고 소설의 데워진 돌멩이를 읽으며 생각했다. 어쩌면 호수에 던져지는 돌멩이는 동무를 찾고 싶은 행위일 거라고. 그러니 네가 던지는 돌멩이는 나를 무너지게 하지도 않고, 나를 혼란스럽게 하지도 않으니 염려치 말라고. 너는 그렇게 ‘내 동무야, 내 동무야’ 말을 걸고 있는 것이라고. 그러니 이것은 얼마나 우리에게 기쁘고 고마운 일이겠냐고.


이 소설 속에는 하나하나 외롭던 사람들이 나온다. 그러나 그 곁엔 누군가 있었다.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내가 누군가가 있다’는 감각과 속삭임을 껴안고 살아온 이들이, 그리고 그들을 만나 그렇게 살아감을 이어갈 사람들이 나온다. 그들은 서로에게 등을 토닥여주는 사람들. ‘사람의 노력을 알아보고 애쓴 마음을 도닥여주는 사람. 겨울에 빨래를 하고 있으면 손이 시리지는 않은지 물어보고, 장을 봐오면 다녀오는 길이 힘들지는 않았는지 물어보는 사람.’들이다. “내 얘기를 들어줘서 고마워”라고 건네주는 사람들이다. 누군가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봐주는 사람들이다. 내 잠을 쪼개가며 돌아가며 불침번을 서가며 그것을 지키는 사람들이다.


좋아하는 뮤지션이 친구의 죽음을 친구들과 마주하고 보내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는 다 같이 동시에 죽어버리자고 말하며 그럼 아무도 아프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그것이 자신의 사랑이라고도 말한다. 오늘을 살아낸 우리, 그런 서로를 향한 사랑으로 다 같이 죽어버리자고 말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나는 이제 조금은 알 수 있다. 세상을 떠난 동료이자 가족이자 친구인 이를 위해 그의 이름을 건 마지막 페미니즘 캠프를 한 이들을 알고 있다. 그들은 서로가 가족이고 친구이고 동료인 덕분에 서로의 삶이 경계 없이 나눠질 수 있었을 것이다. 이것이 너무 분리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가. 하지만 애석하게도 내가 꿈꾸는 삶은 여전히 그런 것이다. 한 살 한 살 나이가 들어가고, 결혼 아닌 모양으로 살아가고 싶어 하는 가난한 여성인 나는 더욱 절실하게 생활동반자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다양한 가족의 모양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가난해도 평등하고 안전하게 살아가는 삶을 꿈꾸게 되고, 그러니 거리에 나와 자꾸만 싸우게 되고, 이제껏 수없이 만나온 죽음이나 장례식과는 다른 모습을 상상하게 된다. 어느 날부터인가 그런 것들을 새로이 준비해야하는 날이 우리에게도 오겠지. 그것을 너무 슬퍼하기보단 지금 우리가 필요한 삶을 고민하고 곁에 있어주듯이 그것 역시도 함께하는 삶의 조각이라고 생각하면 좋겠다고 아직 먼 미래를 바라보듯 생각해본다.


그러니, 아직은 여전히, ‘내 어깨를 빌려, 네가 울 수 있게.’


<밝은 밤>, 최은영 장편소설,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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