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훈_어느 날, 죽음이 만나자고 했다
내가 정상훈을 만난 건 2015년이었다. 그때 그는 국경없는의사회 활동가로서 시에라리온에서 에볼라 바이러스 질환을 마주하고 온 의료인이었다. 그리고 그는 내가 일을 하는 단체가 만들어질 때 함께한 의료인이자, 단체에서 상근대표로 활동한 활동가이기도 했다. 말로만^^; 듣던 그가 한국으로 다시 돌아왔을 때, 나는 대구에서 그를 만나는 강연 사업을 만들었다. 6년 전, 그를 처음 만났을 때 가슴이 뛰었다. 내가 일을 하는 단체에서는 봉사활동이 아닌 자원활동이란 언어로서 보건의료인들을 만나고자 한다. 다양한 이유와 마음을 가지고 있지만, 많은 경우 선한 의지와 마음으로 활동을 만들어가는 의료인들 속에서 기쁨과 유의미를 물론 갖지만, 그럼에도 별 수 없이 활동의 숙명처럼 고민이 계속되지 않을 수 없는데, 그런 마음에 또 다른 두근거림을 전해주는 의료인을 만났던 순간이었기에. 어떤 행동이 남을 선하게 생각하는 것만으로 할 수 없고, 하지 않았으면 하는, 다른 지향의 존재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에게 그것을 더 품을 수 있게 하는 의료인인 동료를 만났기에.
그는 의료인으로서도, 정치적 인간으로서도 사회운동을 엮으려 하는 의지가 있었고, 전지구적 시대를 살아가는 사회의 의료인으로서 한 국가만이 아닌 그것을 넘어선 누구나의 건강권과 안전한 삶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이었다. 루크의 새 책을 읽으며 영화 ‘사마에게’ 속 열악한 의료기관과 그 속에 놓지 않으려는 의료인들이 생각이 났다. 물론 내가 활동하는 단체가 위험하고 엄청 커다랗고 거창한 무엇들을 하고 있다고 말하긴 어렵다 하더라도, 우리도 우리가 놓지 않는 것, 또 지향하는 것들이 있다. 그것을 여전히 놓지 않고 품을 수 있도록 하는 내 곁에는 루크도 있다. 그와 함께 네팔로 해외진료활동을 갔을 때, 그는 그것이 하나의 이벤트로 마무리 되지 않도록 고심했고 나는 오랜만에 가슴이 뛰었다. 내 곁에서 나의 가슴을 뛰게 하는 의료인들 중에는 루크도 있다. 루크가 있다.
나는 죄책감을 갖는 것과 별개로 죄책감만을 스스로에게 휩싸이게 하며 살아갈 순 없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부끄럽다고 말하는 사람에게는 자주 마음이 동한다. 그리고 루크는 그런 사람이다. 그는 엄마에게, 그녀의 마음을 모르는 아들이자 사람이었다. 어쩌면 그는 자신의 마음도 잘 모르는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 이 책은 그가 삶에서 사무친 무언가를 더 이상 밀어내는 방식이 아닌, 받아들이고 반성하고 다시 바라보는 과정이기도 했을 거라고 상상되었다. 그러니 루크가 이 이야기를 멈추지 않고 끝까지 써내려갈 수 있어서 반갑고 감사한 마음이 든다. 그가 죽음이 일상인 곳에서, 안전이 디폴트가 되지 못하는 곳에서 의료인이자 활동가로 살아가며 만난 자기 자신과 자신의 지난 삶과 원가족과의 경험의 성찰과 지난 운동 경험의 바라봄은 그를 성장하게 했다. 그는 좌절하고 절망했지만, 끝내 놓지 않았고 담담하게 분노할 줄 아는 법을 배운 것 같았다.
의료인이 자신이 아프다고, 우울증을 앓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어려운 인정이었다고 그도 말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그 말하기를 시작했고, 이 책은 그 분투 속에서 만들어졌다. 죽고 싶었던 사람이 자신이 가진 의료인이란 정체성으로 누군가를 살리고자 매일 싸우고 뛰며 자신도 숨 쉬어온 일에 대하여 이 책은 써내려가고 있다. 이 책에서 만난 마리암의 이야기로 나는 라오스에서 만난 그녀 생각이 났다. 물론 상황은 달랐지만, 아직도 얼굴이 기억이 나는 그녀가 여전히 잘 살아가고 있을지, 건강한 상태가 되었는지 알지 못한다. 힘없이 파리한 얼굴로 멍하니 있던 그녀. 진료하던 수니랑 이야기하며 울던 그녀를 나는 기억한다. 그리고 우리가 그녀의 손에 주었던 6개월 치의 영양제도. 나는 그때를 아마 잊지 못할 것 같다. 나와 그녀의 일상이 같지 않은 상황에서 우리가 그녀에게 할 수 있는 것이 고작 그런 것이었다는 것에 대해, 그러나 누군가 그녀의 이야기를 들었다는 것에 대해. 우리는 무엇을 하며 살아갈 것인가. 루크의 책을 읽으며 그런 생각을 또다시 가슴에 담는다. 부끄러움과 두근거림과 눈물을 입술을 깨물 듯 품고 이 책을 읽었다.
오랜, 벗으로서 이후에도 루크와 마주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고마워요.
<어느 날, 죽음이 만나자고 했다>, 정상훈, 웅진지식하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