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가워, 사랑스런 고양이를 부탁해

정재은_고양이를 부탁해

by 수수


20년 만에 재개봉만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


개봉하자마자 보러가야지! 생각했지만 일정이 나지 않아 보지 못한 채 있다가 어제 친구가 준 배지를 받고, 시간을 찾아보니 어쩐지 당분간동안 오늘 외엔 짬이 나지 않을 것 같아서 오오극장에 다녀왔다. 배지가 없고, 오늘부터는 포스터를 배부하고 있었고.(둘 다 받을 줄 알고 설렜었지…)


“고양이를 부탁해”는 늘상 봐야지, 봐야지 하고 마음에 몇 년을 두다가 결국은 이번에 재개봉으로 보게 된 영화. 이 영화가 개봉한 2001년이면 열여섯살이었고, 극장 하나 없는 시골마을에 살았으니 그때 이 영화를 만날 리가 없었겠지. 배두나 배우는 학교때부터 좋아했고, 옥지영 배우도 꽤 좋아했어서 그런지 지금의 옥지영 배우 연기를 계속 보지 못한 게 아쉽고, 배두나 배우 연기를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만날 수 있는 게 새삼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생각했다.


영화 첫 장면부터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울컥했다. 교복을 입고 고무줄 놀이 노래를 부르며 꺄르르 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고, 그 시절이 나에게도 있었고 그것이 이젠 이미 오래전 지난 ‘시절’임을 알고 받아들인 시간이 있기 때문에. 그리고 영화 속 그들에게도 더 이상 다섯이지 않은 시간이 펼쳐질 것임이 너무나 당연하게 예상되어서, 그리고 그것은 또 너무 당연함에도 별 수 없이 오는 서글픔들이 있는 것임을 나 역시 수 차례 경험해서.


영화를 보면서 태희라는 캐릭터에는 지금의 나의 모습으로 더 많이 이입하며 보았다. 물론 태희의 환경들은 내가 가져봄 적이 없으니까 지영에게 어떤 사고 없이 바로 이입해버리게 되어서 지영을 바라보게 되고, 자꾸 한숨을 쉬고 울고 싶어졌지만 말이다. 태희가 뿜어내는 에너지가 좋았다. 지영과 같은 이들에게 태희는 속 없는 사람일지 모르지만, 나는 태희가 놓치지 않으려는 시선의 관점이 좋았고, 가난만으로 인생의 고통이나 소수자성, 그리고 다양성과 연대감을 말할 수 없고 그것이 생성된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부족하더라도 그 부족한 상태의 자신 그대로 계속 함께 해보려는 태희가 좋았다.


영화 속 장면에서 가장 좋았고, 가장 놀라고, 가장 슬프고 아름다웠던 장면은 태희가 지영을 기다리며 그 추운 겨울날 밖에서 담배를 태우며 랜턴에 비춰 책을 읽는 씬이었다. 집을 나오며 가족사진에서 자신의 모습을 가린 태희는 소박한 짐에 비해 과한 듯한 책 한 뭉텅이를 챙겼는데 이것 역시 내겐 사랑의 모먼트. 그런 태희가 랜턴을 비춰 책을 읽는다. 그리고 그 장소가 어딘지 나타난다. 거리에서, 지영이 있는 곳 너머에서. 나는 이 장면에 감독이 무엇을 말한 건지 네가 알게 뭐야 싶어도, 담겨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태희가 혼자 떠나는 것이 아닌, 혹은 자신의 짐을 지영에게 주어 자유롭게 네가 떠나라고 하는 것도 아닌, 함께가자는 것이, 그 알 수 없는 미지의 시/공간에 ‘함께’하자는 손 내밀어줌이 그리고 그것을 지영이 받아안아서 기뻤다.


그래서 엔딩이 너무 좋고, 기쁜데도 너무너무 눈물이 나고 울고 싶다는 마음이 계속 드는 걸 어찌할 수가 없었다. 내리기 전에 다시 극장에서 보고 싶네! 아, 정말 태희는 배두나 배우가 아니면 생각을 전혀 할 수가 없게 너무 배두나, 였다.


2001년 스무살이 된 그녀들. 청소년이었던 내가 공감한 감성과 또 미처 알지 못했던 것들, 그리고 지금 2021년 서른이 훌쩍 넘은 나에게 이 영화가 처음/새로이/다시 주는 것들. 너무 좋아하게 될, 좋아하고 말 영화를 20년이 지나 만났다.


고마워, ‘고양이를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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