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정은_일기
소설가, 라고만 쓰인 작가 소개. 황정은 작가의 첫 에세이가 얼마 전에 출간되었다. 한동안 연재했던 글이라고 하니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글이 아닐지도. 작지만, 아니 작고 단단하게 무언가가 담긴 책이 나왔다. 그러니 연재의 글과는 또 달리 새로운 책이다. 이미 그것으로도.
작가의 소설, <디디의 우산>과 이 에세이의 일기는 서로의 연장선상에 있다. 혹은 동시적인 시공간을 지녔기도 하다. 그 발견은 나에게 그것이 소설이지만은 않음을 이미 그전에도 알았지만, 새삼 그 소설만이 아닌 현실과 또 현실은 늘 소설 같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슬펐고, 그 잠시의 슬픔 너머로 그보다 더 단단한 힘이 되었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황정은 작가는 늘 내게 그렇다. 사실 이 책도 읽기를 마치고 덮고 나자 기분이 개운하지 않았다. 그 개운치 않다는 것은 뭐랄까, 그가 이 작은 책에, 몇 권의 에세이에 담아둔 이야기가 너무 많고 깊어서, 너무 짙고 여운이 남겨져서 나는 자꾸만 눈물이 났다.
책을 읽자마자 얼마 되지 않아 “이 책은 교차성, 그 자체야!”라고 혼자 내적 소리를 지른 뒤 만나는 친구들에게 이 책을 알리고 있다. 사실 한 독서모임에서 민뎅이 좋아하는 황정은 작가 에세이 나온다면서 그거 할까?라고 했을 때, 괜찮다고 다른 책을 권했었다. 너무 좋아하는 작가의 산문집은 나도 처음 만나는 거라서(연재를 읽어왔던 것이 아니어서) 선뜻 좋다고 할 수 없었다. 혹여 나조차 그에게 실망할까봐, 혹은 누군가 그럴까봐, 그럼 내가 견딜 수 없을 것만 같아서. (그치만, 읽자마 알았지. 너무 사랑하고, 마음에 콕- 담은 책이라서 너무너무 추천하고 싶어. 만나는 사람들마다, 그게 누구라도. 퀴어페미니즘을 고민하며 함께 지낸 친구들도 모두.)
그렇게 만난 그의 <일기>는 너무나 그다운 제목이기도 했다. 적당히 사사로운 기록이기도 하니 그것이 궁금하지 않은 이들은 잘 피해갈 수 있도록 지은 제목, 일기. 나는 그의 사사로운 기록이기에 그것이 어떤 제목이든 상관없이 궁금했던 사람. 일기를 읽고 일기이지 않은, 그러나 일기인 글을 읽고 바뀌지 않은 신호등 앞에서 머리를 긁적이며 울었다. 사실 별 것 아닌 이 끄적임을 하면서도 나는 울고 있다. 나는 이 글들을 읽으면서 내내 울고 싶었다.
작가의 책을 읽으며, 어린이와 서로 사랑을 주고받는 관계가 되거나, 내가 어떤 어린이를 양육하는 일은 만들지 않을지라도(만들지 않을 것이다), 형편없지만은 않은 동료시민이 되어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것에 대해 다시, 또, 많이 생각했다. 내가 자라온 환경에서 있었던 일들 중 어떤 것들은 평생 누구에게나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들이다. 그러나 그것은 돌이킬 수 없고, 나는 그것으로 특정한 사람들을 미워하며 나의 삶을 보내고 싶지 않다. 지금의 나와 원가족의 가난, 혹은 우리의 이전 관계는 구원할 수 없지만 앞으로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은 있다. 보잘 것 없을지라도, 나의 삶과 내가 사랑하고 지키고 싶은 사람들과 미움만으로 뭉쳐지지 않는 삶을.
200페이지 가량 되는 이 작은 책에는 어린이 학대, 가정폭력, 세월호 사건과 같은 참사, 코로나 팬데믹과 같은 재난 상황, 가난, 성소수자를 향한 혐오와 차별, 여성, 여성을 향한 성적 폭력, 트랜스젠더 혐오 차별, 용산 참사, 미투 운동, 친족 성폭력, 기후위기, 동물권, 몸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의 써내려간 일기는, 그의 산문은 너무나 정치적이고, 너무나 교차적이다. 그는 페미니즘이란 말이나 퀴어라는 말을 한 글자도 쓰지 않고도 횡단하는 글쓰기를 하고 있다. 아, 나는 어쩌면 아주 오래전부터 이 사람을, 이 소설가를, 이 작가를 사랑할 수밖에 없었구나. 지난 시간 그가 써온 소설들을 만나올 수 있어서 너무 다행이다. 내가 그의 세계관들을 만날 수 있어서 너무 좋았구나. 내가 그런 시절을 살아가고 있어 너무 좋다.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고, 눈물 흘리면서도 좋다는 것이 무엇인지 말할 수 있고, 고통을 흘깃 바라만 보지 않는 사람이 쓴 글을 만날 수 있다는 게 행복이란 것으로도 표현할 수 있구나. 너무 정치적인 황정은이라서, 너무 정치적인 작가여서, 너무 정치적인 소설가여서, 너무 정치적인 그라서 나는 너무 좋다. 그의 책을 좋아하는 독자로서 나도 너무 정치적이지 않을 수가 없다. 도리가 없는 것이다.
작가의 책갈피 이야기에 공감이 너무 돼서 신이 막 나서 읽다가 뜨끔하며 웃기도 했다. 책갈피에 대해서도 한 수 위지만, 책에 대한 마음은 너무너무 한 수 위라서 책을 빌리지도 않고, 빌려주지도 않는 이의 마음에 대해 상상해보았다. 나는 대체로 물건을 거칠게 다루는 편인데, 책도 아끼진 않는다. 그런 내겐 책도 그래서 내 책을 누군가 빌려 읽는 건 너무너무 환영하는 일이다. 오히려 나는 내가 읽은 책을 누군가 읽는 게 좋아서 권하는 사람에 가깝고. 나 역시 빌려 읽기를 잘 하는 사람이기도 하고. 책에 대한 태도는 다양할 수 있지. 그러나 그 어느 것도 책을 아끼지 않는다는 게 아냐. 암 그렇고말고, 하는 저녁 시간도 보냈다. 황정은 작가에게 참을 수 없었던 일들이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일이 되지 않아지고, 그런 것들이 늘어가는 것처럼 우리에게도 그렇겠지? 나는 내가 그럴 수 있다면 좋겠다. 참을 수 없는 것에 대한 시선이 일상의 사람들과 나의 독서 습관 같은 것에 얽매이지 않고, 다른 시선으로 향해질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니까, 당신은 황정은 작가가 사랑이 천성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나요? 그의 소설들을 읽으며 그것을 알아차리고 있었나요?
그리고 나를 아는 당신은, 나에게 사랑이 인생의 전부라고 할 만큼 내가 사랑이 천성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나요? 사랑한다고 말하는 나의 마음과 당신의 마음을 나는 앞으로도 사랑하며 살아가고 싶습니다. 살아내고 싶습니다, 오늘도.
<일기> 황정은, 창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