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다른 것을 바라보고,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다.

대슈카 슬레이터_57번 버스

by 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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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윤쌤 추천으로 <57번 버스>를 읽었다. 350여 페이지 정도 되는 책이지만, 술술 읽히고 그 뒤 이야기가 알고 싶어서라도 빨리 읽게 된다. 저널리스트인 저자 대슈카 슬레이터는 사건 이후 굉장히 상세하게 이 사건과 사건 이후 그리고 사건 전 맥락 파악까지 함께 훑어볼 수 있게 해준다. 짧은 단락들로 구성된 이 책은 어렵지 않게 이 상황들을 고민해볼 수 있엇고, 소설 같이 푹 이입되는 구성인 장점도 있었다. 그의 디테일한 글에는 가/피해자로만 나뉘는 이분법적 사람들과 현상들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둘러싼 친구들, 지역사회와 공간들과 사람들이 나온다. 우선 이 책을 만들기까지 그가 얼마나 많은 수고를 들였을 지를 상상하며 고마움의 마음이 들었다.

영화 <넌에게 가는 길>을 앞두고 읽은 <57번 버스>로 나는 이미 영화를 보기 전, 사샤의 부모와 또 리처드의 엄마를 만나며 한편으론 부럽기도 하고 어떤 지점들을 배우기도 하면서 울었다. 이건 슬퍼서는 아니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주 양육자 혹은 부모가 자녀와 어떤 관계를 맺어갈 것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고(<젠더프리>와 함께 이 책도 추천), 거기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돌봄을 주고받는 관계, 생활동반자들, 친구들 그리고 나아가 마을과 지역사회까지 서로가 서로의 관계에 어떤 영향을 끼치면서 서로의 세계를 함께 구축해나갈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했다. 우리가 서로에게 어떤 곁들이 되어줄 수 있고, 그 곁들과 함께 어떤 사회를 만들어갈 수 있을지에 대해서. (그러니까, 우리의 사회 구성원 여러분아, 우린 차별금지법을 만들 수 있고, 만들어야 하고, 그러한 사회에서 새로 시작해야 해요오!!)


또한, 이 책을 같이 읽고 있던 한 친구는 나에게 <용서의 나라> 책을 언급했다. 그러니까 그 책의 주인공처럼 리처드도 사회에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은 아니며, 사샤도 자신의 정체성과 표현하는 방식 때문에 피해경험자가 되어야 하지 않다. 하나의 사건은 이 서로 다른 상황 속 당사자들에게 여러 생각을 하게 한다. 리처드가 어떤 처우를 받으며 살아왔는지, 그의 행위가 잘못이다, 혹은 아니라고 두둔하거나 지우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처해왔던 상황과 그리고 지금 가해자가 되어 그가 받은 상황이 어떤 식으로 인종적 구분으로 다르게 처우 되고 있는지를 고민하진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건 피해경험자인 사샤에게도 마찬가지다. ‘정상성’의 규정 누군가를 가르고 있었는지에 대해 바라보게 한다.(물론 이 책에서는 존중하는 동료시민들이 많이 나오지만) 이런 이야기들은 어떤 잘못을 저지른 사람을 그 잘못을 지우면서 편을 들자는 것이 아니다. 물론 많은 상황에서 가해자/가해지목인의 친구라고 하는 이들에게서 그 잘못까지 두둔하며 그를 감싸는 행위를 많이 만난다. 수도 없이 많이 만나 와서 진절머리 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조금 다른 힌트들을 전하게 될 것이다.


나에게 ‘공동체 해결’은 늘 염두하고 있으면서도 아니 그래서 대체 공동체 해결이란 뭔데? 라는 고민을 끊임없이 들게 하면서 놓을 수가 없는 문제인데, 이 책을 읽으면서도 개인적으로는 그 부분을 계속 생각하게 했다. 우리 사회에서 원치 않는 피해경험이 일어나지 않도록, 그런 것들이 만들어지지 않도록 다른 사회를 만들어야 함은 분명하다. 그런데 하루에도 수도 없이 전국 각지에서 일어나고 있는 다양한 문제들에서 이것을 해결해나가는 방식을 어떻게 다양하게 만들어가고, 또 함께 해나갈 것인가. 이건 사실 정말 우리 문제다. 내게도 너무 어렵고, 잘 모르겠는 투성이지만 분명한 건 그렇다는 거다. 나와 당신 우리 모두의 문제이고 그 속에서 뺄 수 없다는 것. 우리 삶은 모두 동일할 수 없지만 우리는 함께 살아가야 할 테니까. ‘그런 애들은 어쩔 수 없어.’, ‘그럴 줄 알았어,’가 아닌 방식을 안고서 치유와 회복을 함께 만들어 거야 할 테니까.

이 책에서 나온 카프리스를 기억하고 싶다. 물론 이 책의 당사자들과 주 양육자, 그들의 친구들 모두 인상적이었지만. 마약을 팔고 갱단 속에서 살며 20대에 이미 한물간 사람이 되어 그저 멈추고 싶었던, 아이나 낳아 복지수당 받으며 살지 뭐- 라며 제 곁의 사람들이 모두 그래왔던 걸 보아온 카프리스를 공부하도록 만든 릴 제리 역시. 릴 제리의 죽음을 그리고 할 수 있는 돕기-를 멈추지 않고 실천하며 살아가는 카프리스를.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이들이 많은 사회이지만, 더 나은 사회로서 새로운 보편을 만들고자 한다면 그것은 국가의 법제도와 성차별에 의한 불평등과 가난이 만들어내는 균열들을 바꿔나가야 한다. 카프리스를 기억하는 것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 역시도 분명히 기억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개인의 문제로 협소하게 들어가 어떤 개인들의 후회로만으로는 해결해갈 수 없을 테니까. 이 책을 읽고 만나기로 한 구성원들을 생각한다. 상담가가 되고자 하는 이를, 사회에서 이탈이라 이름 붙인 청소년들을 만나는 이를, 사회학과 페미니즘을 공부하는 이를, 학교에서 어린이들을 만나며 획일화된 교육을 고민하는 이를. 자신의 위치에서 차별을 고민하고 차별에 맞서는 이들을.


<57번 버스: 두 명의 십대와 그들의 삶을 바꾼 그날의 이야기>, 대슈카 슬레이터, 돌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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