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사랑이 아니고서야 무엇이겠니.

장영은_쓰고 싸우고 살아남다

by 수수

작년 봄에 나온 책을 작년 가을에 선물 받았는데, 1년이 훌쩍 지나서야 읽었다. 제목이 매우 다른 것 같으면서도 비슷한 모임인 ‘읽고 쓰고 말하고 사랑하라(읽쓰말사)’의 다음 책으로 이 책을 함께 읽자고 추천했다. 책에 담긴 25인의 작가들은 모르던 작가들도 꽤 많았다. 세상엔 이토록 쓰기적 삶을 살아온 여성들이 늘 존재했다. 한 번도 없었던 적 없이 언제나. 다만 허락할 수 없다고 여겨졌을 뿐. ‘이 세상에 멋진 여성 작가들이 너무나 많았다.’ 누군가들이 인정하지 않으려 했고, 기억되지 않고자 했을 뿐. 그러나 지우지 않고 이렇게 기억하는 작업들이 있어 멋진 25인의 작가들이 나에게 왔다.


잘 알지 못했던 작가 중 ‘나딘 고디머’에 대한 글이 인상 깊었다. 그가 한 실천들이 지금의 나에게도 고스란히 적용되어 고민할 수 있을 만큼. 당사자성을 획득해가는 연대자, 그리고 그 행위자가 운동가가 되어 연대의 물결을 만드는 것에 대해서. 나딘 고디머는 빈곤, 범죄, 에이즈, 난민 문제 등에 적극적으로 연대했고, 자신이 운동가가 되어 작가라는 방식으로 표현하고, 함께했다. 글쓰기 동료들과 함께 글쓰기를 하고, 책을 만들어, 에이즈 예방 운동에 함께 해왔던 것처럼. 무엇을 쓸 것인가. 무엇을 담을 것인가. 무엇을 안고 살아갈 것인가에 대해 생각한다. 그리고 이 책을 읽던 한 자리를 기억한다. 14년 간 유예되어온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제정하자는 요구를 담는 집중농성 공간이었다. 전국에서 모인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 여기는 당연히 극장 공연을 보며 그것이 공연으로만 존재할 수 없어서, 공연이 공연으로만 기억되든 공연이 아닌 것으로 기억되든 현실의 어딘가에서 그 문제는 사라지지 않고 지속되고 있어서. 우리는 어떻게, 무엇을 안고, 어떤 삶의 모양으로, 누구를 지키며 살아갈 것인지를.


앞서 말한 모임, 그러니까 읽고 쓰고 말해온 나의 친구들. 나의 읽기와 쓰기의 동료인 이상하고 똑똑하고 유쾌하고 다정한 여자들. 당신들이 읽기를 지나 쓰기의 시간을 가지면서, 그리고 그것을 ‘감히’ 말해오면서 당신 그 자체가 되어가는 시간을 우리는 서로 목도해왔다.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우리는 우리 스스로가 누구인지 생각하는 시간을 경험하고 있었다고, 우리에게도 그래왔다고 기꺼이 말해주고 싶다. 저자의 표현대로라면 우리는 글을 써서 서로의 앞에 발표하는 사람들이잖아. 그러니 우리는 서로를 ‘작가’의 공간에 초대하고, 초대받으며 함께 흐르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 그리고 그것은 우리가 이렇게 지금 함께 살아남아 가능한 것이라고도. 그러니 이것이 사랑이 아니고서야 무엇이겠니.


<쓰고 싸우고 살아남다>, 장영은,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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