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물질의 사랑

천선란_어떤 물질의 사랑

by 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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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집 속의 소설들은 낙태죄 폐지를 외쳤던 시기에, 환경 문제를 생각하며, 자본주의의 기괴함에, 기계도 직장을 잃게 되는 시절에, 세상을 알아갈수록 엉망진창인 지구에 살아가는 천선란은 자신이 옳다고 믿는 방향으로 노를 저어가기 위해 소설을 써내고 있다. 그리고 그 사실이 작가의 다른 책인 <천 개의 파랑>을 읽으며 이 작가의 책을 읽는 독자에게는 그것이 얼마나 다행이고 기쁜 일인가 생각했던 것처럼 이번에도 역시 그러한 마음이 든다.

아주 짧은 소설인 <너를 위해서>는 읽으면서 낙태죄 폐지 운동을 생각나게 했다. 작가의 글을 읽으니 역시 작가도 검은 시위가 펼쳐지던 2019년에 이 소설을 썼다고 했다. 정작 필요한 책임에 대해 방관하거나 보호가 아닌 학대하는 일이 비일 비재하는 현실 속에서 원치 않는 임신 중지를 금지하던 목소리들이 허공에 가득 차던 것들. 이 소설은 전혀 다른 가상의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그러니 보아야할 이들이 있다고 생각했다.


<어떤 물질의 사랑>은 정말 사랑에 대한 이야기임에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이 소설은 너무 사랑스러워서 감격할 지경이었는데, 한편으론 정세랑 작가의 <지구에서 한아뿐> 소설의 후속 작품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정세랑 작가의 소설을 따라했다는 의미 등 부정적 의미로 그런 말이 아니라 뭔가 한아와 경민이 생각나게 하고, 그 이후의 이야기를 그려본다면 이런 이야기들로도 상상해 나가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져서. 그 ‘이상하고 사랑스러운’ 이야기가 생각나게 이 소설이 사랑스러웠단 의미이기도 하다. “한아를 위해서라면, 우주를 횡단할 만큼 전 확신이 있어요.”라고 경민처럼 라오는 우주를 가로질러 왔다. 자신의 사랑을 찾으러. 그리고 경민이 가로질러온 2만 광년이란 엄청난 거리를, 망설임 없이 올 수 있는 사랑이란 것에 대해 생각했던 한아처럼 이들도 그러했다. 그 가능하지 않을 것 같은, 그러나 가능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눈앞에 펼쳐진 사랑에 대해, 그들은 기꺼이 선택하기로, 서로가 함께 하기로.


그리고 또 하나의 다른 소설, <그림자 놀이>. 도아도 우주를 가로질러 왔다. 그는 지구인으로 지구에서 우주로 나갔지만, ‘어떤 물질의 사랑’처럼 말하지 못했던, 그러나 사라지지 않은 사랑을 품고 ‘네’가 있는 지구로 돌아온 것이다. 한 줌으로 남은 목숨일지라도. 우주를 가로질러서라도. ‘정의 내리지 않고 묻어둔 관계’는 서로에게서 결국 지워지지도 못했고, 너무 늦어버렸지만 결국은 돌아온 도아와 이라를 보며 조금 울었지만, <마지막 드라이브>의 한나와 해리를 만나며 조금은 붙잡고 싶어졌다. 뜨겁지 않다는 것이 차갑다는 것과는 분명히 다른 것이라는 걸, 정의 내리지 못한 것이 아무것도 아닌 것은 아니라는 걸. 해리와 있을 때 느끼는 평온함을 사랑하는 한나의 마음이 어떻게 사랑이 아니라고 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 이 소설집에서 이야기하는 사랑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편안함과 평온함을 갖게 하는 존재와의 사랑 혹은 그 사랑의 평온함.

이 책을 읽으면서 자우림의 stay with me를 듣곤 했다. 내일은 너무 머니까 지금 바로 여기 있어달라는 노래를 얼마가 걸리더라도 결국은 돌아온, 우주를 가로 지르는 어떤 사랑과 함께 듣고 읽었다. 기분이 묘해졌고, 조금 설렜다가 조금 서글퍼졌다. 내가 우주를 가로질러서라도, 일지는 나도 아직은 잘 모르겠어. 하지만 나는 ‘너’의 지금이 궁금해.

<어떤 물질의 사랑>, 천선란 소설집, 아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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