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이브 마이 카

하마구치 류스케_드라이브 마이 카

by 수수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를 보았다. 언젠가부터 하루키 책은 읽지 않았기 때문에 원작이라던 그의 소설은 모른 채 영화를 보고 왔고, 영화를 보면서 하루키의 원작 소설은 어떨까, 어떤 지점을 감독은 자신의 스타일로 만들었을까 궁금증이 일었다. 또 영화에서 나온 연극의 원작도. 그랬던 걸 보니 영화는 나에게 잘 들어왔다, 싶다. 영화가 좋아서 원작이 궁금해진 것이다.

최근 이 영화에 대한 이야기들이 여기저기 존재해서 보기에 앞서 <아사코>와 <해피아워>를 보고 극장에 다녀왔다. 3시간이라는 시간은 집에서 5시간의 영화를 보는 것과는 너무 다른 체감이기에 각오해야겠네 싶었는데 무색하게도 지루할 틈 없이 채워졌다. 영화를 먼저 본 친구 말론 아사코&해피아워파와 드마카파가 있다던데, 나는 그렇다면 확실히 <드라이브 마이 카> 선호였다. (그 친구는 아사코와 해피아워파다) 그 전 두 작품처럼 이 영화도 아쉬움부터 아리송한 물음표부터 공감이나 와 닿은 것들 이야기를 하자면 여러가지를 나눌 수도 있겠지만, 영화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던 연극이, 특히나 연극의 대사 자체와 그것이 이루어진 수어 연기가 너무 커다랗게 와서 다른 이야기를 잠시 멈추게 된다.

유나역의 낯선 배우의 눈빛과 한국인이지만 음성언어로 소통하지 않는, 수어로 이야기를 전하는, 그리고 음성을 들을 수 있지만 일본어를 모르는 그를 통해 만난 음성언어 중심의 수어하는 연극 장면은 너무 .. 좋았다. 소냐가 바냐를 뒤에서 안으며 소냐와 바냐의 몸을 통해 나오는 듯한 수어와 그 장면이 클로즈업 되는 것이 영화를 보다 마치 이동을 하여 연극을 보는 관람객이 된 듯했다. 수어를 하는 소냐와 소냐의 대사를 자막으로 만나면서 조금 울었다. 빨간 차 안에서도 들었던 대사인데도 완전히 다르게 다가왔다. 우리는 살아간다. 살아가기로 하자. 살아가기로 한다. 긴 낮과 긴긴 밤의 연속을. 그 시간들을. 그리고 죽음이 오면 얌전히 죽고 저 세상에섳말하자. 고통 받았다고. 괴로웠다고. 그것이 내가 살아가는 삶에 관통했다고 느꼈다. 시궁창같은 인생을 울고 좌절하고 죽고 싶다고 울부짖는 대신, 죽어버리겠다고 어떤 행위를 하는 대신, 오늘도 친구들과 살아가는 하루가 다정하구나, 우리가 꿈꾸는 비록 미래가 보이지 않지만 같이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있어 살아가보는구나, 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조금 더 안전할 수 있게 작은 무엇들을 멈추지 않으면서. 욕심이라면 그런 욕심 내어보면서. 나에게 삶은 그럼에도 살아가는 것. 살아가보는 것. 나아가보는 것. 대단치 않더라도. 그치만 마냥 행복과 대단한 만족이 있는 건 당연히 아니잖아. 그러니 나도 죽음 그 이후 말하고 싶다. 좋았지만 고통 받았다고. 견디는 게 때론 너무 힘들기도 했다고. 용기도 힘도 하나도 없을 때 눕고만 싶었다고. 그러니, 오늘도 살아간다.


“바냐 아저씨, 우리 살아가도록 해요. 길고 긴 낮과 긴긴밤의 연속을 살아가는 거예요. 운명이 가져다주는 시련을 참고 견디며 마음의 평화가 없더라도, 지금 이 순간에도 나이 든 후에도 다른 사람을 위해서 일하도록 해요. 그리고 언젠가 마지막이 오면 얌전히 죽는 거예요. 그리고 저 세상에 가서 얘기해요. 우린 고통받았다고 울었다고 괴로웠다고요. 그러면 하느님께서도 우리를 어여삐 여기시겠지요. 그리고 아저씨와 나는 밝고 훌륭하고 꿈과 같은 삶을 보게 되겠지요. 그러면 우린 기쁨에 넘쳐서 미소를 지으며 지금 우리의 불행을 돌아볼 수 있을 거예요. 그렇게 드디어 우린 편히 쉴 수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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