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국어는 차라리 침묵

목정원_모국어는 차라리 침묵

by 수수

올해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너무 아름다운 책을 만나서 남은 올해가 조금 무섭기도 하고 기대되기도 한다. 이런 책을 또 만나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면 어떡하나 싶어서, 하지만 그런 책들을 만날 거라 생각하니 가슴이 너무 두근대는 걸 막을 수가 없어서 말이다. 이 책을 읽는 이들이 몇몇 있었던 터라 손에 들었는데, 처음엔 수욱- 읽히지 않아 오래도 품에 들고 있었다. 그리고 제주에서 대구로 돌아오기 전 책의 남은 부분들을 읽어나가는데, 너무 좋아서 자꾸만 울고 싶어졌다. 책의 몇 페이지 글을 읽으며 조금 울었다, 고 기록한 메모를 다시 보며 수정했다. 그 이후 읽은 글을 읽고도 울었기 때문에. 글을 읽고 눈물이 난 행위의 기록은 계속해서 갱신될 수밖에 없었다.


나는 모국어의 공간에서도 때론 낯설음이 일어 도망치고 싶었다. 도망칠 수 없고, 도망칠 곳 없는 나는 책을 편다. 소란스러움에 집중이 흩어지기 쉬운 내 몸은 쉽지 않지만 이내 그 소란에서 살아남아 쥘 수 있을 고요를 얻었다. 공연예술이론가 목정원의 산문집 <모국어는 차라리 침묵>는 이끄는 제목만큼, 이 아니라 그를 훨씬 넘고 그 너머로 이끌어가 마음을 사로잡고 휘어잡았다. 아름다움이 넘쳐나는데, 나는 그것이 때론 생경하였고, 때론 너무 익숙하고 슬퍼서 눈을 감고 싶었다. 그러나 결국 다시 눈을 뜨고 만난 글을 여전히 아름답고 생경하고 슬펐다. 삶은 그런 걸지도. 구질구질하고 지루한 것이 이어지지만 모순적이게도 그 속엔 늘 생경한 것 그러나 곁에 두고 싶은, 만질 수 없는 아름다움이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런 글을 써내지 못해서 우는 것이 아니라 이토록 아름다운 글을 읽으면서 울 수 있는 사람으로 앞으로도 살아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아름답다는 자각은 어여쁨이 아니라 슬픈 것이 동반되는 것. 찬란하고 반짝 사라질 무엇을 찰나 사라지고 말 것으로 만들지 않도록 애써보는 마음. 모든 아름다움이 세계와 불화하면서도 세계에 등 돌리고 마는 것이 아니라 이내 그 세계를 끌어안으면서 울 때, 나는 내 편에 선 그를 바라보고 같이 부둥켜안아 울고 싶은 사람이 되고 싶다. 함께 웃지 못하는 그 사람의 편에. 아름다움이라 칭해져야 하는 것을 놓치지 않고 목도하는 사람이 되고 싶기에. 그리고 이 책은 그 아름다운 것들 중 일부이다.


장 끌로드 아저씨 이야기를 읽으며 동화 같다고 생각했다. 나는 새로 쓰이는 동화는 이러해야 한다고, 이러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연극이나 뮤지컬, 무용, 오페라를 잘 알거나 좋아하는 이가 이 책을 만났으면 또 얼마나 가슴이 쿵- 떨렸을까. 나는 그러지 못한 사람이지만, 그럼에도 그것이 불행이지 않다. 그것과 상관없이 이 책은 나에게 아름다웠기에. 누군가가 아니라, 내가 아는 모든 사람에게 이 책을 알리고 싶다는 마음으로 책을 덮는다. 언제나 이 책을 읽을 수 있게 되었지만, 어쩌면 자꾸만 울고 싶어지는데 너무 아름다워서 마음이 동동거렸던 그 시간처럼은 안 될지도 모른다. 아니 그 시간은 다시 오진 않을 것이다. 이미 그 시간은 이 세상에 없고, 바스러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름다움이 변하지 않고, 나의 기억의 마음은 사라지지 않는다.


<모국어는 차라리 침묵> 목정원 산문, 아침달


p5-6 작품을 다 본 순간 그것은 이미 세상에 없다. 그것은 사라졌다. 남는 것은 기억뿐이며, 기억도 금세 바스라진다. 그러므로 대게 공연에 대한 글을 쓰는 일은 가쁜 호흡으로 이루어진다. 흐릿해지기 전에. 영영 지워지기 전에. 그러나 아무리 현재적이어도 그 글쓰기는 공허를 면할 수 없다.


p6 이제 한 시절이 덮였으니 문득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겠다. 어째서 어떤 슬픔은 발화됨으로써 해소되는지. 나는 그것이 늘 슬펐다. 그러나 그럼에도 말이 되지 못하고 남는 것들이 있을 것이다. 우리들의 모국어로만, 침묵으로만 호명되는 것들.


p17 사랑은 인간을 나약하게 하므로, 인간은 사랑에게 지고 말 것. 사랑하기 때문에 기어이 서로의 눈을 응시함으로 서로를 죽게 만들 것.


p28 우리가 실체가 있는 것만을 사랑할까. 혹여 본 적 없는 얼굴을 더욱 사랑할 수도 있는 걸까 그럼에도 무언가에 마음을 기대야 한다면, 계속 사랑하기 위해 어떤 흔적이 더 필요할까. 조립될 수 없는 파편들, 그럼에도 당신의 것인 조각들이 남아 있다면, 그것으로 족할까. 아니면 그것을 붙들고 우리는 울까.


p45 나는 어디에서도 살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그 기분은 무척 낯선 것이었다. 논문을 마무리하고 일 년짜리 비자를 추가로 받게 되면, 나는 그곳에서 하고 싶은 일이 아주 많을 줄 알았다. 허나 어째서 우리는 가장 사랑할 수 없는 시절에 이미 아낌없이 사랑을 해버렸던가. 기진한 내가 더 꾸려가고픈 일상의 풍경이 거기 없었다. 마음속에 풍경이 펼쳐지지 않았다.


p46 그 숨김이 애틋하여 나는 날마다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p47 동시대인이라는 말의 가장 적합한 정의란 ‘함께 죽음을 지켜본 사람들’이 아닌가 생각한 적이 있다. 우리는 시대를 견디며, 시대를 견디지 못한 이들의 죽음을 지켜본 사람들. 그리하여 어떤 죽음들에 대한 기억을 설명 없이 나누는 사람들. 함께 웃는 사람들이기보다, 함께 웃지 못하는 사람들. 무언가가 좀처럼 웃기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p48 우리는 모르는 것이 너무 많고 그것은 전ㅂ누 타인의 아픔에 관한 일이다. 그리하여 우리가 모르는 동안, 어떤 이들은 멀리 떠나버리기도 했다. 남겨진 편지가 해독되지 않을 곳으로. 잊히지 않는 것들을 잊은 곳으로. 그 먼 곳에서 안식이라도 하면 좋으련만, 기어이 진실을 품고 돌아오는 것이 또한 그들의 몫인지. 그 귀환을 증언하는 것이 많은 비극의 몫인지. 배삼식의 <먼 데서 오는 여자>는 2014년에 쓰였다. 2014년. 우리가 기억하는 4월이 있던 해에. 그해 가을 나는 잠시 한국에 갔었고, 지금은 사라진 한 극장에서 그 연극을 보았다.


p54-55 극장이란 무엇보다 보는 곳이었고, 그곳의 제1주체는 관객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극장에서뿐 아니라 매일의 삶 속에서도, 우리의 주체성은 관객의 주체성과 다르지 않다. 우리는 매순간 무언가를 바라보고, 이미 본 것과 지금 본 것을 연결하며, 그렇게 펼쳐가는 의식의 지형도로 생을 꾸리고, 자신을 구축한다.


p65 그랬으면 우리는 그날 기어이, 어떻게든 만나고 말았을까요. 그랬다면 물어보셨겠지요. 어떻게 지내는지, 무엇을 공부하는지, 그즈음은 어떤 주제에 마음이 기우는지, 어떤 아름다움을 사랑하고 어떤 추함을 불편해하는지, 이제는 누군가를 사랑도 하고 연애도 하는지, 그래서 더 깊고 쓸쓸해졌는지.


p66 오늘은 그 커피점 중 한 곳에 가서 선생님을 만나고 싶었어요. 글쎄 선생님의 추모제 공연을 보았는데 말이에요, 하고 시작하면 남은 생애 내내 이어질 수다를 떨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선생님이 가장 보고 싶어지게 했다는 측면에서 이 공연은 일종의 소임을 다했는지도 모르겠네요. 그 얘기를 하면 우리는 웃겠지요.


p81 그토록 허약한 시절에 조금 더 살 용기를, 잊지 않고자 하는 힘을, 지켜낼 사랑을 주었던 비극의 인물들. 유령들. 갔지만 미처 못 떠난. 우리를 위해 다시 오는. 지금도 세계 속에 가득한. 죽임 당한 동물들과 함께 우는. 끝끝내 기대 살아갈. (...중략...) 그때, 나는 문득 당신을 생각했다. 화장실에서 아기를 낳은 당신. 동굴에서 겁탈당한 당신. SOS를 남긴 당신과 그것을 발견하는 당신. 기계가 움직이고, 나는 당신에게로 가는 거야, 생각하니 안심이 되었다. 모든 것이 시작된 자리. 우리들의, 비극의 기원으로.


p83-84 가까운 이들의 장례를 치를 때마다 알게 된다. 슬픔의 더께와 무관하게 계속되는 의식의 절차 속에서 우리는 때로 비통한 애도를 잠깐씩 쉰다. 그러나 잊어서는 안 될 것이 있다는 듯, 울음을 유발하는 특정 순간들은 꼬리를 물고 되돌아온다. 그 장치들 앞에 사랑했던 우리가 무력해지는 것은 자명하다. 왜냐하면 그것이 잔혹하고 명백하게, 사라짐을 지시하기 때문이다. 빳빳한 삼베가 죽은 이의 얼굴에 씌워질 때. 그 몸이 관에 들어갈 때. 화장장 문 뒤로 그를 떠나보낼 때. 곧 불길이 치솟을 단단한 철문 너머로 화면 속 관이 사라질 때. 돌이킬 수 없는 소멸을 목도하는 마음들이 거듭 우는 일.

공연예술의 가장 큰 특징은 사라짐에 있다. 회화와 같은 공간예술이 한번 완성되고 나면 공간 속에 지속적으로 존재하는 것과 달리, 연극과 같은 시간예술은 시간에 깃들어 발생했다가 그 흐름과 더불어 종결된다. 작품의 존재는 그것이 발생하고 있는 오직 그 시간 속에서만 유효하다. 관객은 사라짐의 목격자가 되어 영영 혼자만 알아볼 흐릿한 여운을 안고 극장을 나선다. 더 이상 존재가 없으므로 점차 기억은 희미해진다. 그중 어떤 기억은 되바꿀 수 없는 무언가가 되어 몸에 기입된다. 그렇다 해도 흔적이 남는 것과 존재가 남는 것은 아득히도 다른 일이다. 시간예술의 근본에는 슬픔이 있다.


p84 끔찍한 고통은 몸에 각인되므로 쫓으려 해도 영원히 돌연한 소스라침으로 우리를 깨우는 반면, 아름답고 행복한 것들은 아무리 붙잡으려 해도 끝내 잊히고 만다. 나는 삶으로부터 그것을 배웠고 그리하여 되도록 많은 것을 기록하는 사람이 되었다.


p98 그러나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단지 테라스에 나가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망자를 애도함은 마땅하며, 그 죽음들은 발생하지 않았어야 함이 자명하지만 단지 자유로운 유럽인의 삶을 침해하는 절대악의 행위로 테러를 간주할 만큼 세상의 선악은 자명하지 않다. 어떤 밑바닥까지 가보면 모든 진실은 모순적이게 마련이지 않던가. 우리는 그 모순적이고 혼탁한 것들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테러와 같이 광폭한 무언가가 마침내 세계를 뒤흔들었을 때는 특히나 말이다.


p104 모든 가려진 것들에 대한 완강한 편애가 좋았다.


p118-119 여성혐오란 여성의 존재 가치에 대한 멸시를 의미한다. 가부장제는 여성혐오에 기반하며, 그 작동 과정에서 강간이라는 전략을 효과적으로 사용했다. 제 의지와 관계 없이 몸을 겁탈당할 가능성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는 삶을 살 때, 우리는 남성과 동등한 인간이 아니었다. 우리는 사람으로 셈해지지 않았다. 무가치했다. 그리고 바디우에 따르면 한 존재를 무가치하게 여기는 생각과 그 존재를 말살해버리는 행위의 실천 사이는 무섭도록 가깝다. 그렇게 여성은 죽임당했다.


p119-120 그 세계 속에서 우리는 무력했다. 열등의 조건을 스스로 체화하며 살았다. 세계가 가르친대로 겁탈당한 내 몸을 치욕스러워했다. 스스로를 미워하고 스스로의 자유를 결박했다. 그렇게 가부장제의 명예 남성이 되어 제 목을 조르고 있었음을 깨닫는 일은 그 자체로 또 한 번 트라우마가 된다. 깨닫는 순간부터 눈에 보이는 것들, 귀에 들리는 말들이 너무도 뼈아프기 때문이다. 한때 사랑이라 믿엇던 많은 것들을 부인해야 하기 때문이다. 무지했기에 방관했고 무감했기에 동조했던 순간들 속에 나 자신이 또한 가해자였음을 인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p122 스페인의 하 노래에서 뱃사공이 말하길, 예쁘고 어린 여자들은 돈을 내지 않아도 된다 하였다. 여기서 아름다움과 젊음에 관한 가치 평가는 여성을 대상으로 전락시킨다. 그리하여 리델은 스스로 예쁘지 않을 것을 택했다. 이는 돈을 내는 주체가 되겠다는 뜻이기도 하고, 더 나아가 그 배에 아예 타지 않겠다는 결단이기도 하다. 배에 타지 않겠다는 말은 세계의 질서 바깥에 있겠다는 말.


p124 이곳, 우리의 현실 속에서, 모든 여자는 서로를 대신해 유린되고, 강간당하고, 살해당한다. 울고 있는 저 존재는 나의 얼굴이다. 이토록 뼈아픈 이입이 이루어지는, 현실은 연극보다 더 연극적이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의, 유가족이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할 수 있다. 이 연극을 끝까지 올리는 일을. 이 연극을 끝까지 보는 일을.


p132 그 풍경을 함께 나누는 사람이 그리운 때가 내게도 있다. 약속을 하고, 기다리고, 만나고, 함께 표를 찾아 나누고, 어쩌면 극장에 가기 전 맛있는 밥을 먹기도 하고, 서로의 근황을 이야기하고, 객석에 나란히 앉아 불이 꺼지는 순간 “봉 스펙따끌르”라고 말하는 것. 먼 세계로 떠나기 전 현실의 끄트머리에서 인사하는 것. 돌아오면 제일 먼저 눈을 마주치는 것. 함께 극장을 나서는 것. 기분 좋은 날에는 술이나 차를 마시기도 하며, 작품이 건드린 내밀한 이야기를 슬며시 고백하는 것. 다음에 만나자 손을 흔들고 뒤돌아 걷는 것.


p135-136 선호하는 자리를 찾아 이동하는 습관은 사람의 본성에 내재하는 것인지. 강의실에서, 카페에서, 버스에서, 우리는 대개 두어 번의 경험만으로 자연스레 자리를 골라 이후로도 망설임 없이 그쪽을 향해 간다. 아마도 그곳이 우리 몸에게 즐겁고 안온한 질서를 주었을 것이기에.


p136-137 알고보니 미리 봐둔 빈자리를 먼저 가 맡아놓고 나를 데리러 온 것이었다. 여기가 공석이 맞느냐고, 그럼 여자아이 하나가 와 앉을 텐데 자리를 맡아줄 수 있냐고, 옆 사람에게 부탁하고 달려온 일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려왔다. 할 수 있는 한 더 좋은 시선을 내게 주려고, 시선을 주려고 한 일이기 때문이다.


p137 그리고 어느덧 내게도 세월이 생겨났다. 누군가 열어주었지만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나만의 시선, 나만의 이야기가.


p154 요컨대 어떤 것이 되돌아오는 자리에는 언제나 몸이 있었다.


p162 그렇게 미리 인정하고 나면 그 언젠가는 축복처럼 더 빨리 도래하곤 했다. 숨죽인 대상화의 폭력이 눈에 보이는 날. 기이한 기울이가 기이해지는 날. 그러면 세상은 조금 더 끔찍해지지만 나는 세계의 진실에 그만큼 다가갈 수 있다. 보지 못하고 듣지 못했던 그 모든 것은 나의 무지 바깥에서 늘 존재해왔으므로. 살아갈수록 고통에 대한 감수성이 더욱 깊어지는 것만큼 다행인 일이 또 있을까. 나는 아픈 쪽이 훨씬 좋았다. 나는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 아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p171 기타와 바보의 첫 노래들이 한창 쏟아지던 그 봄, 깊은 밤에, 나는 문득 노래가 편지인 것을 깨달았다. 나는 세상에 편지를 남기고 있었던 것이다. 언제일지 모를 우리의 죽음 앞에, 끝내 살아남을 말을.


p178 당신을 사랑한다고 내가 말할 때도 어쩌면 비슷한 일이 일어난다. 어떤 발화들은 세계를 변화시킨다. 우리는 우리의 말들이 물들인 세계로 손을 잡고 걸어 들어간다.


p181 모든 것을 알아도 생을 사는 이유는 살아야지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살아야지만 당신을 보기 때문이다. 그 모든 것이 삶을 바꾸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내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p184 나로부터, 우리의 진창으로부터, 멀리 있기 때문에 사랑할 수 있는 것들.

그리고 이 지점에서 그는 나와 다른 영혼이었다. 언젠가 파리의 사냥박물관을 구경하다가 한 유리 진열장 앞에서 나는 오래 슬펐다. 18세기 프랑스 사냥총의 자개무늬연구 같은 것을 왜 논문의 주제로 삼지 못했나. 명백하게 발생했고 아름답게 가두어진 한 시절에 대해 쓸 수 있다면 좋았을 것을. 카스텔루치와 달리, 나는 동시대적인 것만 다룬다. 그토록 가까운 것들로부터 나는 도망할 수 없다. 굳이 반복할 필요 없는 아픔에 대해 언제나 썼다. 그 책을 그에게 주고 싶었다.

두꺼운 논문 사이에 편지를 끼웠다. 허나 너무 명백한 사랑 앞에서는 할 말을 잃기가 쉬우므로. 마음 속으로 몇 편의 이야기를 썼다 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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