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은, <당신이 글을 쓰면 좋겠습니다>
쓰기를 위한 읽기라는 비밀 레시피 글이 있는데, 이런 문장이 있다. ‘그만큼 나는 내가 스치고 부딪친 수많은 누군가의 사유와 언어에 빚졌다. 세상의 모든 글은 콜라보이자 타인의 흔적이다. 사랑하는 작가를 만날 수 있는 건 운명적인 상대를 만나는 것만큼, 때론 그보다 더 큰 기쁨이다.’
<당신이 계속 불편하면 좋겠습니다> 책이 나왔을 때, 그 책을 읽고 위로도 용기도 같이 받았다. 같이 활동하던 친구들과 글쓰기를 해보자고 했고, 지역의 지원사업으로 대구에 거주하는 글을 쓰고 싶어 하는 다른 여성들을 만났고, 우리는 서툴지만 글을 썼고, 작은 책을 만들기도 했다. 그때 승은씨에게 연락했다. 글쓰기와 관련된 강연을 꼭 하고 싶었는데, 꼭 하고 싶었던 두 작가와 함께 할 수 있었다(은유 작가님과 홍승은 작가님). 그것은 우리에게도 특별한 시간이었지만, 홍승은 작가에게도 글쓰기 모임이 아닌 글쓰기와 관련된 첫 대중 강연이라고 했었기에 지금도 그 기억을 담는 특별함이 됐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홍승은이란 사람이 쓰는 글로 인해서 나도 빚을 지고, 빛을 나누고 있다는 것. 바지런히 누군가의 사유와 언어를 읽고, 타인의 흔적을 만난 어떤 사람인 ‘홍승은’이란 사람이 만들어낸 쓰기의 결과들로 또 다른 누군가가 된 나는 누군가를 배제하지 않으며 하고 싶은 말을 전하고 싶은 고민을 놓치지 않게 되고, 멀어지지 않도록 감각을 갖는데 도움을 받는다는 것. 읽기의 행위는 이런 것을 내게 만들어 줄 수 있지 않나 싶다.
페미니즘이 나를 수치심과 멀어져도 좋다며 나의 다채로운 면모를 바라보게 하고, 나의 과거의 경험들을 직면하며 재해석하게 해주었다면 그것을 잠시 잠깐으로 존재하고 휘발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글쓰기, 페미니즘적 글쓰기라고 생각한다. 모든 것을 분명하게 판단하고 흔들리지 않겠다는 생각이 얼마나 허상적이며 위험한 것인지, 우리는 오늘도 무수히 변화하고 또 그 속에서도 나를 찾기 위해, 너와 나누기 위해 얼마나 부단히도 흔들리면서도 노력하는지를 아는 이의 글은 확신으로 끝맺음 하지 않아도 흐릿하지 않게 마음에 안착된다. 뿌연 지금 속에서 흔들리는 것이 느껴지더라도 불안하지 않을 수 있다. 그것이 촘촘하게 사유하기 위한 망설임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쓰고 싶은 글이 생겼고, 나와 친구들은 또 글쓰기 모임도 하고 싶어지고 있으니 이 책이 얼마나 ‘성공’(^^)적인가, 생각해본다. 내게 와 닿는 문장이 이리 많아 고개를 끄덕이고, 때론 책을 잠시 덮고 어떤 생각에 빠지게 하는 이도 두려움이 존재했구나. 우리는 어쩌면 다들 잘나고 강해서 살아가는 게 아니라 그 약함 속에서도 서로를 향한 연결을 계속해서 시도하며 사는 것일지도 모르겠단 생각을 해본다.